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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따이(Amuntai) 먼찐따이(Mencintai/사랑한다)

이부김 2010. 10. 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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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따이(Amuntai) 먼찐따이(Mencintai/사랑한다)


한국 남자 여자 두 사람이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국제공항에서 인도네시아지도 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아문따이, 아문따이’ 아느냐고 물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중에서 먼찐따이(Mencintai)는 모두 아는데, 알아도 아주 잘 아는데 아문따이(Amuntai)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찐따이는 ‘사랑 한다’는 말이었고 ‘아문따이’는 바로 출연자들이 미션으로 찾아가야 할 곳, 물소들이 살고 있는 깔리만탄 섬 남부 지역의 ‘자그마한 도시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주고받으면서 출연자들이 공항에서 미션 찾는 모습을 촬영해야 한다기에 어느 공항이 좋을까, 나는 잠시 생각해 봤다. 자카르타 국제공항은 너무 번잡하고 말랑 공항은 이름만 공항이지 공군비행장이니까, 그렇다면 수라바야 국제공항이 가장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제작팀들이 수라바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메라 두 대가 여기저기서 찍고 있다. 두 남녀가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한 사람이 바닥에 퍼질러 눕고 난리를 피우니까 공항에 배웅과 마중 나왔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방을 끌고 나가던 사람도 목이 빠져라 뒤돌아보면서 갔고 담배 불붙이려던 사람도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공항 바닥에 퍼질러 잠자던 사람들까지 벌떡 일어나 촬영하는 우리들을 에워싸 버렸다.

 

 

자바 섬 수라바야에서 국내선 타고 깔리만탄 섬 반자르마신에 도착했다. 반자르마신에서 아문따리로 가는 동안 자동차 안에서 몸이 뒤틀리고 허리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쉴만한 곳이 없어 5시간을 논스톱으로 달렸다. 그곳은 훌르 숭아이 우따라군(Kabupaten Hulu Sungai Utara) 아문따이의 군청관사였다. 우리가 간다고 연락했더니 숙소까지 제공해 주시고  축협소장님은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출연자들도 있고 숙소가 너무 허름하면 호텔로 옮기려고 내가 먼저 살펴봤더니 관사치고는 꽤 좋았다. 오지로 다녀본 내 경험에 의하면 그곳 관사는 웬만한 시골의 별달린 호텔보다 시설이 훨씬 더 좋았다.


짐을 가지고 올라가는데 여자출연자가 고함을 질렀다.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찌짝을 본 것이다. 하긴 나도 인도네시아 와서 처음에 찌짝 보고 놀란 가슴이 지금까지 벌렁거린다고 해도 그리 허풍은 아니다. 그런데 도마뱀처럼 생긴 것이 꼬물꼬물 거리며 기어 다니는 걸 아가씨가 봤으니........ 나는 ‘찌짝(Cicak)은 절대 사람을 헤치는 곤충이 아니다’라고 달랬다. 겨우 두 발자국 옮겼을까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개구리를 본 것이다.


그 광경을 본 현지인들은 한국에는 개구리가 없는 줄로 알고 쫒아내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괜찮은지 물어왔다. 나도 이 나이에 호들갑을 떨 수야 있겠지만, 그래도 어릴 적 개구리 잡아 뒷다리 구워먹은 추억을 왜곡하기는 싫었다. 아가씨의 엄살, 내 보기에는 개구리가 개처럼 짖어대며 신발을 물어뜯으려고 것도 아니고 그저 땅바닥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개구리를 보고 여자출연자가 괴성을 질러대니 오히려 개구리가 경기해 도망가려고 폴짝 뛴다는 것이 그만 여자 신발위로 갔다. 여자는 더욱 괴성을 질렀고 그 괴성은 그날 밤 아문따이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허름했지만 널찍한 포장마차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닭다리를 숯불에 구워 흰밥이랑 먹었다. 고추와 마을을 살짝 익혀서 돌로 버물려진 고추양념을 골고루 발라가면서 모두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출연자 둘은 너무 맛있었다고 했다. 배부른 것에 비해 식사 값이 아주 저렴하게 나왔다. 그런데 피디는 축협소장님의 가족들 밥값까지 지불한 것이 아까운지 왜 가족들까지 와서 밥을 먹냐고 내게 물었다. 호텔 요금 아끼도록 관사에 공짜로 재워주는 그들의 배려와 나의 그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준 나의 고마움도 모르고 밥값 몇 푼을 가지고 의문을 품는 피디에게 인도네시아 현실을 일주일 동안이라 설명해야 한다니.......


아침이 되었다. 자동차로 두 시간 더 갔다. 그 다음 스피드보트 타고 한 시간을 또 더 갔다. 수상가옥들이 밀집해 있고 수상외양간 있는 물소마을에 도착했다. 지나치면서 바라만 봤던 저 수상가옥들, 저 속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늘 궁금했었는데 내가 들어선 것이다. 배를 탄 기분이기도 하고 홍수위에 서 있는 난민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마을길이 나무로 깔아 놓은 것이 흡사 기찻길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서 우리를 구경했다. 동장님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과자도 내어주고 귀한 생수도 대접해 주면서 하룻밤 함께 묵을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했다.

 

 

우리는 강으로 갔다. 사람들은 물소 키우기도 하지만 물소가 없는 사람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간다고 했다. 우리는 작은 목선 3대로 나눠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나와 함께 탄 피디가 자꾸 출연자들이 개고생해야 하는데 짓궂은 걸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출연자들과 함께 탄 사공에서 강물을 마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더러워서 못 마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한번 마셔보라고 권하니 정말 손으로 여러 번 퍼 마셨다. 이걸 옆에서 본 출연자도 “이렇게요“ 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강물을 퍼 마셨다.

 

얕은 강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미리 놓아 둔 그물을 건져보고, 가져 온 투망을 쳐봤지만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가서 물장난하고 수영하고 떠들었으니 미리 알고 물고기들이 도망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잡지 못하고 어부에게 노래 불러 주고 물고기 한 마리 얻어서 돌아왔다.

 

처음에 스피드보트 타고 올 때는 흥분해서 그랬는지 물 빛깔을 몰랐다. 그러나 목선타고 천천히 가다보니 강물색깔은 인도네시아 강에서 늘 보던 황토색 물과는 달리 색깔이 진했다. 보는 이들에 따라 표현도 달랐다. 남자출연자 노숙자씨는 목이 말랐던지 콜라색이라 했고 여자출연자 이유하씨는 여자답게 홍차 색깔, 권피디는 초콜릿 색깔 선배인 주피디는 성씨에 맞게 흑맥주 색깔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에 외양간 뒤로 흘러나오는 물빛과 같은 색이라서 소똥물이라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출연자 노숙자씨가 말했다.

“ 선생님, 그럼 제가 아까 소똥 물을 마신 건가요?”

“ 아니요, 아까는 강물이었어요.”

“ 지금은? ”

“.......”

 

 

이건 비밀스러운 이야기지만 밝혀야겠다.

그날 밤 사실 우리 다섯 명은 아무도 목욕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수도에서 나오는 맑은 물이 강물 속의 지하수라고 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 맑은 지하수에 손발도 씻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소변보는 일도 어려웠는데 목욕까지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확 트인 대청마루 같은 곳에서 옷 입고 옷 속으로 손 넣어서 몸을 씻어야 한다는 그 야릇한 방법을 터득하기보다는 차라리 종일 흘린 땀 냄새 파스냄새 맡는다는 생각으로 옷만 갈아입었다.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더니 두꺼운 안경을 쓴 동장님이 컴퓨터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서류는 경찰서장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그 지역은 물고기 보호지역으로 선정되어 그물이나 일반 도구로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발전기로 약을 뿌려 물고기를 잡다가 두 사람이 경찰 단속반에게 잡혔던 것이었다.

 


윤슬처럼 빛나던 꺼르바우들의 눈망울


강에는 외양간들이 군데군데 지어져 있었다. 꺼르바우들은 아침 일찍 강으로 나갔다. 하루 종일 물풀을 뜯어 먹고 오후 늦게 목선을 탄 목동과 함께 외양간으로 돌아왔다나는 이제까지 동물들이 떼 지어 물에 다는 것은 물오리들 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데 커다란 꺼르바우들이 떼 지어 물속에서 유유히 다니는 걸 보니 수중발레 단체전 같아 보기 좋았다. 커대한 몸집을 물속에 숨기고 가지런히 얼굴만 내밀고 있는 꺼르바우들의 얼굴, 거무스름한 물속에서 태양빛에 비춰 커다랗게 빛나는 소들의 눈망울은 윤슬과도 같았다.


꺼르바우들은 고삐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만의 표시를 해 두었는데 귀를 잘라버리든지 아니면 코에 글자를 적어 넣던지 그도 아니면 귀를 두 번 자르던지 목에 색깔 있는 글자도 적혀 있었다. 꺼르바우들이 외양간에서 강물로 입수할 때는 저마다 달랐다. 다이빙하는 녀석 엉금엉금 기어가는 녀석, 멋지게 다이빙하려다가 익숙지 못해 첨벙거리며 물에 빠지는 녀석들, 내 보기에는 꺼르바우 수영학교 선수단 같았다.


자신의 소가 없는 사람들은 남의 소를 키워주는 월급으로 송아지를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키워주고 있는 소가 열 마리라면  처음에 송아지 낳으면 주인의 몫이고 그 다음은 소 키워주는 목동의 것이다. 꺼르바우를 키우는 사람들은 상당히 부자였다. 외양간 한 곳에 약 50-100여 마리씩 있었다. 게다가 그 많은 어미 소들이 일 년에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으면 얼마나 많은 식구가 늘겠는가.

그곳에서 물린 모기 자국이 가려워 긁다보니 지금도 윤슬처럼 반짝거리든 소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별과 달이 비추는 오지의 마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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