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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달팽이 - 2

이부김 2010. 10.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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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집시(Gypsi) 바자우 빨라우족-2


바다의 달팽이


                                  별과달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그들을 보고 ‘바다의 집시’라고 했고 그들이 바로 빨라우족(Palau)이다. 그러나 빨라우족을 만나서 바다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본 나는 그들을 ‘바다의 달팽이’라고 말하고 싶다.

 

빨라우족은 뱃사람들이다.

조상들은 아기를 출산하면 작은 고깃배 세 척을 나란히 두고 갓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끊은 다음 아기를 그 배 밑 바닷물로 잠수를 시킨다고 한다. 잠수한 후 아기가 울면 빨라우족으로서 용감하지 못하다 하여 해변으로 보내고 울지 않으면 바다에서 살 운명이라고 데리고 살았다고 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바다를 믿고 신성시했다. 소변을 보더라도 바다로 향해 직접 싸지 않고 작은 통에 본 후 바다에 버린다고 했다.

그들은 바다를 신성시하여 배에서 아기가 태어나도 사람이 죽으면 수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님보라(Manimbara)섬에 묻었고 매년 그곳에서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한다. 그들은 장례가 끝나면 모두들 바다로 들어가서 악귀나 재앙을 씻어낸다 그것이 그들의 풍습이다.

 


104명의 빨라우족들은 14척의 배를 가졌고 그 배는 다목적용이었다. 집이고 교통수단인 것이다. 작은 배에는 방이 꾸며져 있고 부엌 벽 한 쪽에는 귀한 상어지느러미가 쓰다말고 걸어 둔 헌 수건처럼 몇 개 걸려 있었다. 부엌을 살펴봤더니 그릇으로 이가 빠진 접시도 몇 개와 유리컵, 밥 지을 땔감도 놓여있었다.

낮에는 거실 밤에는 방이 되는 다용도 공간 천정에는 아기가 탈 수 있는 그네까지 만들어 두었다. 비가 오면 피할 수 있도록 천막이 쳐 있어 지붕 역할을 했다. 햇볕이 쨍하면 지붕에는 잡은 생선들과 조갯살과 널어 말리고 빨래도 말렸다. 잡은 생선이 많고 지붕이 좁은 행복한 일이 발생할 때는 생선들에게 소금을 쳐서 절여 놓기도 했다. 

 

작은 어선 위, 앉기만 해도 엉덩이가 부딪힐 그런 좁은 공간에 엄청난 대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생선들이 많아 퀴퀴한 냄새들 때문일까 바퀴벌레들이 서식지라고 해도 악플처럼 얄미운 말은 아니다. 그들이 방으로 사용하는 마룻바닥에 염치 불구하고 앉았다. 천장이 높지 않아 구부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신발을 벗지 않았다. 아니 벗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교양과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다.

 

                                 [바퀴벌레가 있던 배 안 가족들의 모습]

왜?

앉자마자 바퀴벌레들은 스멀스멀 기어 다니다가 내 운동화 위로 청바지로 기어 올라왔다. 미치도록 징그러웠지만 그렇다고 고함을 지를 수가 없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고함을 질러도 바퀴벌레가 알아듣고 미안해하면서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일 모레까지 이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 많은 배가 그래도 제일 넓고 좋은 배였다. 그랬으니 일본인 연구가가 머물렀겠지.

 

다음 날 또 그 배를 탔다. 바퀴벌레가 아이들을 물지 않느냐고 물었다. 간 큰 바퀴벌레들이 아기들 잘 때면 보드라운 팔다리를 물어서 아기들이 자꾸 보챈다고 찡그리면서 말하는 아기엄마의 그 표정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떠나오면서 나는 우리 아이 키우던 그때 그 마음으로 바퀴벌레 잡는 약 한통을 사 주었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그들에게는 무엇을 나눠 줄 때도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 그곳에서는 진리처럼 여겨졌다. 착하다고 그냥 주면 질투와 시기가 생겨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꼭 공동분배를 해 줘야 한다고 아스뿔씨가 말했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나 없는 자가 쌀 한 톨 더 움켜잡으려는 것은 같은 이치인가 보다.


빨라우족이 모두 가난한 건 가뜩이나 가난한 살림에 한 사람이 아파도 온가족이 함께 배를 타고 가야하니 그 연료비와 시간낭비를 꼬집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을 달팽이라고 한 것엔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의 재산은 배 한 척뿐이다. 누가 아프면 바닷길을 걸어 갈 수가 없고 배가 육지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집이 움직이는 것이다. 집을 가지고 다니는 건 달팽이 뿐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을 ‘바다의 달팽이’라고 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공부하고 배워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바다를 잘 알기 때문에 따 먹어도 끝이 없는 바다의 해산물은 모두 그들의 것이니까. 그물만 내리면 예쁜 고기들이 잡혔고 싱싱한 바다풀을 뜯어서 밥과 함께 먹으면 간이 딱 맞고 좋았다. 또한 그들은 바위틈에 붙어 있는 대합조개(kima kerang)를 따서 생으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팔기도 했다.

 

생으로 먹는 조개살맛은 익힌 게맛살보다 더 맛있었다. 제작진은 바다풀도 조갯살도 안 먹겠다고 했다. 아마 젊고 신혼이라서 살아 갈 날이 많아 몸조심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나는 솟구치는 호기심을 떨칠 수가 없어 싱싱한 조갯살도 바다풀도 먹었다.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바다에는 배만 있고 학교는 없다. 그래서 빨라우 사람들은 수영도 잘하고 통통배도 잘 타지만 글은 모른다. 읽은 줄도 쓸 줄도 모른다. 그야말로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이라는 것 밖에는 그러나 그림은 알고 있었다.

지난 번 무국적 사건이 있고난 후 바뚜뿌띠면의 면장과 아스뿔씨가 그들은 보호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통신수단으로 핸드폰을 사 주었다. 그들은 글을 몰라 사용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핸드폰을 목걸이로 만들어 주고 울리면 버튼만 눌러 받는데 자동차그림이 뜨면 면장, 축구공이 뜨면 아스뿔씨라고 입력해 두었던 것이다.

 

                                  Kima Kerang/ 빨라우족들이 널어 놓은 조갯살

 

빨라우족들의 소망


빨라우족의 가장 큰 소망은 크지 않았다. 그저 비가와도 새지 않는 천막 칠 수 있는 배, 지난 번 육지로 보호되어 갔다가 25일 만에 돌아와 보니 삶의 터전인 배(집)들이 모두 부서졌고 침수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고칠 경제적인 능력이 모자라서 아들 집에 함께 살고 있다던 알라말씨. 하지만 아들의 배도 낡아서 세 시간마다 삼십분씩 펌프질하여 물을 퍼내야 하는데 그 일을 늙은 아내와 며느리가 해야 한다고 가슴아파 하며 한숨을 내몰아 쉬던 아저씨가 떠오른다. 


촬영 마치고 떠나올 때 우리는 그들에게 식량으로 고구마 한 포대기와 비스킷 담배 그리고 배에 사용되는 연료를 사 주고 또 아기 낳은지 한달도 안 되는데 천막이 찢어져서 비가 새고 아기들이 아프다기에 천막도 사 주고 돌아왔다.


나는 현장에서 직접 취재도 하지만 제작진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 촬영을 도와주는 현지 코디네이터다.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특히 MBC의 김혜수의 W 프로그램을 많이 사랑한다. 제작진들도 무조건 제작비를 아끼려고 하지 않고 어두운 곳의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 주고 용기를 이끌어 주는 역할도 한다.

현장에서 함께 하는 제작진으로서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취재하면서 진정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곧 폐지가 된다. 김혜수가 서운해 하더니만 나도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다. 그러나 곧 부활하든지 아니면 그런 프로그램이 빨리 하나 생겼으면 한다. 

 

장례가 끝난 후 바다로 들어가서 몸을 씻어내는 빨라우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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