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꽃으로 불리는 플로레스 섬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섬 본명은 누사 니빠(Nusa Nipa)이다. 섬 모양이 뱀처럼 생겼다하여 섬사람들이 지방어로 부른 것이다. 그러나 16세기경 포르투갈 무역업하는 사람들이 플로레스 라랑뚜까 지역에 도착 했을 때 '짜보 다 플로레스'라고 외쳤다. 그때부터 포르투갈 사람들은 섬의 이름을 포루투갈어로 꽃을 뜻하는 플로레스(Flores)라고 정했고 후에 네덜란드 선교사에 의해 사용되면서 섬 주민들도 따라서 플로레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창살에 찔린 돌고래를 보면서-1
라마레라!
조용히 부르면 마을풍경이 내 가슴으로 파도처럼 스며든다.
라마레라! 라마레라!
주문을 외듯이 부르면 풀쩍 뛰어 오르던 돌고래 떼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라마레라! 라마레라! 라마레라!
큰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 커다란 고래가‘ "안 잡혀서 미안해" 꼬리 흔들며 사라지던 그 아쉬웠던 순간이 떠오른다.
라마레라 마을 풍경
라마레라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 럼바따(Lembata)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조상대대로 고래잡이 하여 생계를 이어가므로 유일하게 고래와 돌고래 잡이가 허용된 곳이다. 그 마을에 들어서면 온통 고래냄새와 흔적으로 마을은 스케치되어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고래를 빼놓으면 다른 대화꺼리가 없다.
내가 4년 전 라마레라 갔을 때 일이다. 사람들은 고래를 잡일 수 있다는 것에 아주 대단한 자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큰 배로 작은 멸치를 잡는 일이 아니라 막대기로 큰 고래를 잡는 일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수위를 넘어 유세떠는 것으로 이방인들에게 각인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양푼이 속에서 갖은 양념으로 콩나물 무쳐내듯이 여러 날을 그들과 함께 버물려 지낸 적 있었다. 마을을 떠나올 때“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와 보고 싶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는 메시지를 바다위에 띄워두고 왔던 그런 곳이기도 하다.
띠깜은 고래를 잡기 위해 창과 자신을 함께 바다로 던진다.
살면서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되는 것인가 보다. 올해 10월 중순 나는 그렇게 가기 싫다던 라마레라에 갔었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처음에 얻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전부 바다에 쏟아버리고 오히려 내 마음을 마을 앞 해변돌무더기에 묻어두고 왔다.
라마레라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는 지금가진 나의 언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대단했다. 어떻게 작은 목선타고 장대 끝에 쇠갈고리 하나 달랑 묶어서 집채 같은 고래 잡을 생각을 했을까.
어제도 오늘도 고래 잡으려고 목선타고 바다로 갔다. 목선이 한 시간 쯤 가다가 바다 중간에 멈췄다. 플로레스 섬의 90% 이상은 가톨릭 신자들이므로 모두들 기도를 드렸다. 나도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께 고래를 잡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기도가 마치자 한 남자가 뱃머리에 올라서더니 바다를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그 동작으로 사방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선원들은 그 남자에게‘띠깜’이라고 불렀다. 띠깜은 포수처럼 고래에게 창을 던져 고래 잡는 창살잡이를 말한다.
나는 띠깜이 왜 바다에게 경례를 하는지 궁금했다. 고래를 잡기위해 바다 신에게 인사를 하는 걸까. 물어봤더니 경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햇살이 눈부셔서 햇살을 받치고 고래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띠깜은 나와 이야기 하면서 장대 끝에 갈고리를 끼웠다. 장대 끝에 걸린 갈고리에 자신의 운명도 함께 걸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고 말했다.
“띠깜이 자격증을 거머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띠깜이 될 수는 없는 위험한 역할이다. 띠깜이 되려면 어릴 적부터 용맹스럽고 수영과 창던지기에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마을 사람들이 띠깜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또 띠깜은 흔들리는 뱃머리에서 고래와 싸울 용기가 있어야하고 선원들을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만일에 고래 잡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자신이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갑자기 띠깜이 ”발레오(Baleo)”하며 소리쳤다.
‘발레오’는 라마레라 사람들이 ‘고래를 봤다’는 신호다. 다시 말하면‘심봤다’와 같은 소리다. 선원들은 순간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일리베 일일베”라고 외치면서 노를 저었다. 목선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상황이 급박해졌다.
띠깜은 들고 있던 창을 바닷물 속으로 던졌다. 창과 함께 자신도 바다로 뛰어 들었다. 띠깜이 헤엄쳐서 목선위로 올라왔다. 창을 던지면서 자신도 함께 바다로 뛰어 들었던 이유는 창끝에 중력을 더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창살은 물에 떠 있었다. 바닷물 속에서 물체가 움직이자 언뜻 보이는데 돌고래 등에 창이 꽂혀 있었다. 선원들은 줄을 당겼고 뭔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목선 앞 지점에는 빨간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입이 가느다랗고 삐죽하게 나온 회색돌고래였다. 선원은 돌고래를 배로 끌어올리면서 아직 숨을 헐떡거리는 돌고래 주둥이를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 다음 배 위로 올려놓고 칼로 배를 마구 찔러서 생명을 완전히 끊어 놨다.
등에 창을 맞고서 선물로 잡혀 준 돌고래
언제였던가,
TV에서 봤던 돌고래 쇼가 자꾸만 죽은 돌고래 위에서 환영처럼 보였다. 라마레라 앞바다는 고래들이 이동하는 경로이다. 해마다 5월에서 10월까지가 고래들이 이동하는 철이다. 오늘 잡힌 이 돌고래도 친구들과 함께 떼지어가다가 창을 맞은 것이다. 등지느러미가 창에 찔렸
다. 좀 더 사납게 헤엄쳤더라면 상처 난 몸으로라도 도망갈 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다 아주 독한 마음으로 사납게 몸부림쳤더라면 친구와 함께 가던 길을 갈 수 있었을 터인데. 너무 온순한 돌고래인가보다. 그래서 선물로 잡혀주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내 마음은 띠깜이 아주 자랑스러워 보였다. 고래나 돌고래를 잡은 띠깜은 마치 영웅처럼 느껴졌다. 돌고래를 해변에 눕혀두고 사람들은 고기를 나눴다. 띠깜이 제일 좋은 부위와 많이 가져가고 목선 주인과 이런 방법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아주 공평하게 분배했다.
라마레라에서 떠나오던 날 목선을 타려고 해변에서 귀한 분을 만났다. 그 분은 창 던질 때 갈고리가 묶인 밧줄에 자신의 팔이 감겨서 한쪽 팔을 바다에 잃어버린 것이다. 외팔이가 된 모습으로 이제 더 이상 창을 던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바다마저 떠날 수는 없다며 해변에서 잔일을 도왔다. 그의 손등은 거북이등딱지처럼 두꺼웠고 세월의 지문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그분이야 말로 라마레라가 전통적인 고래잡이 마을이라는 산증인 노장띠깜이었다.
잡은 돌고래를 내려두고 목선을 모래위로 끌어올리는 라마레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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