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꽃으로 불리는 플로레스 섬
라마레라 아낙네들의 새벽행상-2
별과달
새벽 02:15분!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시간에 ‘새벽시장 갈 시간’이라며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어제 밤에 분명히 민박하는 집 앞으로 03시경에 버스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시간개념 없는 시골버스 운전수는 마음이 얼마나 급했으면 02시 30분인데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정말이지 일어나기 싫어 밤사이 모기에 물린 팔뚝만 긁적이고 있었다.
라마레라 사람들은 7일장에 간다. 그러나 중간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선 아낙네들이 행상나간다고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고 이웃마을로 행상 갈 때 나도 취재차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어제는 고래 잡으려고 바다로 돌아다녔고 오늘은 산 너머 새벽시장을 가야한다. 벌써 며칠 째인가, 피로가 온 몸에 더덕더덕 엉겨 붙은 느낌이다. 나는 모기에게 물려 가려운 곳에 물파스를 대충 찍찍 눌러 바르고 방문을 나와 운동화를 신었다.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서는데 직업의식 때문일까 몸에 붙었던 피로들이 가을날 단풍 떨어지듯 내 몸에서 후드득 떨어졌다.
지나치게 미리와 기다려준 얄미운 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는 이름만 버스지 사실 커다란 8톤 트럭이다. 짐칸에 긴 의자 마주보게 해놓고 천막으로 덮어씌운 차다. 내 보기에 아무리 ‘트럭’이라 해도 그곳 사람들이 ‘버스‘라고 말하면 나도 ’버스‘라고 해야만 한다. 그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래야만 그들과 말이 통하고 의사전달이 잘되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버스로 올라탔다. 차안에는 사람보다 짐들이 더 많았다. 한 아줌마는 살아있는 닭 한 마리와 빈 물통을 껴안고 있었다. 스리삐낭(Sri Pinang/여자들이 담배 대용으로 쓰리와 삐낭 열매와 분필가루를 입에 넣어 씹는 것)을 즐겨 씹은 탓으로 웃을 때마다 붉게 물든 치아들을 보여주는 아줌마, 그 옆의 젊은 여자는 가오리 몇 조각과 덜 마른 생선 두 마리 그리고 고래 고기 말린 것을 갖고 있었다. 나는 젊은 여자 옆으로 가서 비집고 앉았다.
차 안의 풍경이 다양하듯이 여러 가지 냄새 또한 풍부했다. 신경통 앓는 아주머니가 꺼내 바른 발삼(물파스 대신 바르는 연고)냄새, 아저씨의 담배연기와 생선들의 퀴퀴한 향기들이 차가 흔들릴 때마다 풀풀 날아 다녔다. 내가 제일 뒤쪽에 탔기에 망정이지 앞쪽에 탔더라면, 냄새를 피하려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아니, 차 지붕에서 꿀꿀거리는 돼지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트럭에 실려 팔려가던 소의 모습이 떠올랐고 마치 내가 그 소가 된 기분이라서 킬킬 웃음이 나왔다.
버스는 자갈길을 길게 두세 번 오르막내리막 하더니 멈췄다. 내가 따라다녀야 할 다섯 명의 아낙네들이 모두 내렸다. 나도 내렸다. 새벽 4시가 못 되었고 아직 사방이 컴컴하다. 보따리와 아낙네들은 흉가 비슷한 곳에서 날이 밝길 기다리며 토막잠을 잤다. 주인을 따라서 두 마리의 생선도 머리를 쳐 박은 채 잤다. 길섶 차가운 바닥에 몸을 대고 자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사십년 이상 기도 해오던 주기도문 중에서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는 말씀이 왜 있는지 그제야 이해하게 됐다. 또 그들이 고래 잡으러 갈 때 배 위에서 그 부분을 왜 그렇게 큰소리로 외쳤는지도. 그때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는 참으로 많은 횟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새벽이 먼저 눈을 떴다. 아낙네들도 눈을 떴지만 아직 잠이 덜 깬듯해 보였다. 아낙네들은 두 팔로 물건을 선반위에 올려놓듯이 보따리를 자신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바쁜 걸음으로 마을 골목길을 잘도 쏘다녔다. 골목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급한 발길을 멈춰도 보따리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머리위에 얌전히 붙어 있었다.
라마레라 지역은 논과 밭이 없어 논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채소와 쌀이 귀하다. 채소는 파파야 잎이나 나무 이파리를 따서 삶아 먹고 밥에는 옥수수나 고구마를 섞어 밥을 짓는다. 처음에 노란색 밥을 받고서 나는 좁쌀을 섞은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옥수수였다. 아낙네들의 물건은 주로 고구마와 옥수수로 물물교환 됐다. 귀하다는 고래 고기 한 점크기가 작은 옥수수 스물 개나 바나나 한 줄과 거래가 되고 있었다.
아낙네들 중에 아주 젊은 여자도 있었다. 그는 올해 스물아홉 살이었고 시어머니와 함께 행상을 다녔다. 태어나서 라마레라를 벗어나 본적이 아직 없다고 한다.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화장품을 발라보지 못했다는 여자, 미시족으로 멋 부리고 살아도 여자의 욕심으로 성이 차지 않을 나이다. 그런데 보따리 이고 시어머리 또래들과 이 마을 저 마을 행상 다니고 있었다.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나 같으면 한발자국도 걷지 못했을 터인데 그녀는 걷기도 잘했고 게다가 웃기(?)도 잘했다.
그 젊은 아낙네 머리 위의 보따리 부피가 빨리 줄어들면 그 만큼 그녀에게는 가족들을 위한 식량이 준비되고 보람된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여자의 눈으로 봐서 그럴까, 그녀의 보따리 부피가 빨리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젊은 그녀가 산 넘어 힘든 새벽 행상을 더 자주 다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 가슴 한구석이 짠하게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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