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흔들릴 때,
글/별과달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맞았습니다. 어딘선지 이름없는 향기들이 내 텅빈 가슴속을 가만히 파고 들어왔습니다. 마음에는 까닭 모를 그리움이 일렁이고, 생각은 환상과 현실이 마구 뒤섞여 어지럽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무엇일까요?
'호의와 사랑'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고 착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꾸만 나도 알 수 없는 세상의 늪으로 나를 데리고 갑니다. 가라 앉았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어느 순간 '집착'이란 막대기로 휘저으며 흙탕물을 일으키더니 나를 어지럽게 합니다.
어린 시절놀이터에서 타던 지구본처럼 말입니다. 나의 이런 방황을 정지시킬 그 무엇인가를 잡아야한다는
깨우침이 고국에 계신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로 들려왔습니다.
화려했던 지난 날을 환각 상태로 되짚으며 나를 이대로 내 버려 둘것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판단 해야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심술이 났습니다. 마침 눈 앞에 돌멩이가 보니기에 구두발로 힘껏 걷어 찼습니다. 그 돌멩이가 '휭'하고 날아 가면서 아버지와 함께 자주 대국하던 바둑 돌처럼 보이더니, 내가 차 버린 만큼 길 모퉁이로
나가 앉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 하면서 바보가 '도' 터지는 소리를 내며 손뼉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 흰색돌은 바로 수녀님의 얼굴이였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내 또래 수녀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청했습니다. 알고 지낸지 2년이 되었지만
차나 식사를 한번도 같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그럴만한 여유와 기회가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지요.
6월이 지나 새학년 새학기인 7월이 되면서 다른 학교로 옮긴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우리 아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자 수녀님이였습니다. 항상 거룩한 생각으로 절제하고 겸손의 미덕을 갖춘 사람을 곁에서 보면
좀 나아질까요? 그런 마음으로 수녀를 바라 보았습니다.
저녁 빛이 빚어내는 나와 그의 긴 그림자를 보며,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만나려고 조촐한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갓등은 예쁘지만 그다지 밝지 않은 분위기, 몇 사람이 안 되는 홀안에 과일 그림의 탁자보, 아까
만난 야자나무는 창문에 와 걸터 앉았습니다. 시끄러운 팝송의 분위기는 지금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가져 온 음식, 소스가 스테이크위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스테이크를
처음으로 먹어 본다며 립스틱이 묻어 있지 않는 입술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녀는 연한 스테이크였는데도 마치 썰려지지 않는 고기에게 양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의 그런 모습은 바깥 세계와 차단되고 있는 한단면인 듯했습니다. 내가 스테이크 써는 것을 도와 주었을 때,
그 수녀는 겸연쩍은 웃음으로 대가를 치르며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때 나에게 무엇인가 언뜻 스쳐 지났습니다. 나의 때묻고 보잘 것 없다고 여긴 삶이 그래도 ......
그는 이곳의 사람이지만,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곳 시내 지리를 나 보다 더 몰랐습니다.
난 그와 만나면 항상 농담으로 그를 웃겼으며 장난을 많이 걸었습니다. 잠시만이라도 수녀를 벗어나 '여자와
여라' 라는 공감대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한국 인이지만, 인도네시아 인처럼 편안하고 소탈하며 사교성이 풍부한 나의 성격이 부럽다며 아주
진지하고 조용 조용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나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내게서는 꽃잎으로 꾸며진 교만들이 후두둑 떨어져 겸허함의 열매로 바꿔 달았습니다. 그는 나를 위해서 가끔씩 기도를 드린다며 내 어설픈 감정을 보듬고 두꺼운 심장을 노크해 뻣뻣한 나를 숙연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불빛이 살아 움직이는 밤이 되자. 나는 그를 학교 옆 수도원으로 바래다 주면서 수박 두 통을 사서, 한 통을 그의 하얀 품에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를 기다릴 "선배 수녀님들에게 드리세요" 하면서...
내가 운전하는 차의 작은 백미러에 다 들어 오지 못하도록 가까이 서 있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 그는 수박처럼 둥글게 웃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는, 이곳의 가난한 현지인들과 만나 포장마차에서 점심을 함께 먹습니다. 그들이 천진난만하게 자아내는 웃음을 분석하고 조금 가진 이들의 진실한 행복의 수치를 나름대로 재어 보고 했습니다.
웃는 만큼 행복하고 욕심없이 살아가는 내 이웃들의 진솔함을 살아 있는 교훈으로 깁어, 여름밤 홑이불처럼
내 전신으로 덮어 봅니다.
이것이 내가 타국에서 외로움에 뒤척여 질 때, 흔들리는 내 삶을 추스르고 제대로 살아가려는 한가지 방법의 처방전입니다. 그래도, 삶은 한번쯤은 살아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