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별과달
며칠 전 아들이 학교에서 2박 3일 캠프 갔었다.
학교에서는 반 전체를 데리고 캠프를 가면서도 버스를 타지 않고 몇몇 학부모 개인 승합차로 학생들을 태워
이동해 주길 원했다. 캠프 마지막 날은 태워 준 몇몇 학생을 또 학교까지 데려다 줘야 하기에 마치는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 들으며 나무 아래 있는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나의 아들은 안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살피다가 담임 선생님과 눈길이 마주치자마자, 오른 손을 번쩍 들어 나무 밑으로 알려 주셨다.
그 나무 아래는 학생이 쪼그리고 앉았고 수녀님은 학생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계셨다. 그러더니
수녀님은 학생을 데리고 텐트로 갔고 거리가 멀었지만 걷는 뒷모습만 봐도 나는 아들인 걸 단번에 알았다.
텐트에 도착해 속을 들여다 보니 창백한 얼굴 빛으로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담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 한솔이가 오늘 아침에 번지 점프할 때 어지러워서 그런 것 같아요. 어제는 컨디션이 좋아 축구도 하고
하루 종일 밥을 여섯 번이나 먹었어요.”
놀라고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여섯 번이란 말에 사실 부끄럽기도 했다.
“ 아니, 밥을 여섯 번이나 먹어요?”
“ 네, 아무튼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먹었어요.”
“ 한솔아 정말로 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니?”
아들은 대답 대신 ‘우 웩~’하고 텐트 밖으로 토했다.
담임의 이야길 가만히 들어 보니 운동하다가 배고파 급하게 먹어 체해서 소화불량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자신도
생각도 그렇다고 말했다. 수녀님이 약을 가지러 간다며 일어나 가셨다.
약으로 가져 온 것은 작은 오일 한 병, 그 이름은 ‘미냑 까유 뿌띠(Minyak Kayu Putih)’이다. 수녀는 아들에게
엎드리게 하고 그 오일을 등허리에다 발라 주었다. 또 바로 눕혀 놓고 배꼽 주위에도 발라서 문질렀다.

거 참, 이상하다!
체했거나 소화불량 같은데 왜 오일을 배나 등에 발라 주는지 물으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따는 방법을 사용한다며 바늘을 찾으니 없어 대신 옷 핀으로 아들의 손가락을 일단
찔러 피를 나오게 했다.
과식과 급체로 배 속이 아픈데 겉에 오일을 발라 주면 낳을까? 하고 신기해 하며 물었듯이 수녀님도 배 속이
아픈데 배와 거리가 아주 먼 손가락에 바늘로 찔러 피 내는 내 방식을 신기해 하며 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방법은 달라도 배 아픈 것을 치료하는 목적은 같았다.
오일을 피부 가려울 때, 모기에게 물렸을 때, 발라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만병통치약으로 쓰는 줄은 몰랐었다.
옆에 있던 다른 학부형이 감기 기운이 있어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목에다 발라주고, 코가 막힌 느낌이라며 코에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으면 막힌 코가 뻥 뚫린다고 한다.
몸살 기운이 온 몸에 돌면 ‘마숙앙인’이라 하며 오일을 배꼽 주위에 발라 주면 들어 간 바람이 배꼽으로 빠져 나와
몸살이 낫고, 감기가 심하게 들렸을 때는 등에 오일을 발라주고 동전으로 사선처럼 긁어 준다. 긁고 나면 피멍이
붉게 드는데 색깔이 검붉을수록 감기가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면 금방 없어진다.
그 날 인도네시아 식과 한국 식을 두 나라 요법으로 치료 받은 아들은 효과가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
잠시 만나고 오겠다며 나갔다. 저녁 때가 되어서 돌아 온 아들은 발을 절룩거렸다. 발을 살펴보니 세상에
아스팔트위에서 맨발로 축구를 했다며 발바닥에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 이 놈아, 요즘 멀쩡한 운동화 놔두고 맨발로 축구하는 한국 사람은 없다. 너 도대체 한국 사람이니 인도네시아
사람이니? "
약과 붕대를 찾으니 아들이 하는 말
“ 엄마 있쟎아, 미냑 까유 뿌띠 그거 바르면 금방 나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