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기열, 동남아 특유의 병
글/ 김성월
아침에 자고 일어난 중학생 아들의 얼굴과 목덜미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엄마, 어지럽고 머리가 깨어지는 것 같아 걸을수가 없어 ”
아들은 두 손으로 깨어진 항아리를 부여잡듯 조심스럽게 머리를 붙잡고 화장실로휘청거리며 걸어갔다.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이는 붉은 색, 게다가 고열때문에
아무리 얼음물에 적셔 수건으로 여러 번 몸을 닦아 주어도 그 때 뿐이었고 아들은 앉아있지 못하고 픽,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나서 피 검사를 하러 갔다. 혈전구(thrombocyte)의 정상 수치가15만에서 45만인데 아들은 첫날 14만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열이 심하면 거의 ‘드람 버르다라(demam berdara)’ 즉. 다시 말하면 뎅기열에 걸렸다고 의심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뎅기열(Dengue Hemorrhagic Fever)은 모기(aedes aegypti)에 물려서 걸리는 열병인데 이 모기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흰줄무늬 모기는 주로 물이 고여였는 곳, 집안의 작은 연못이나 어항 또는 욕실, 특히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에 늘 물을 받쳐두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많이 걸린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주로 6~8월까지이며 주로 아이들이 많이 걸렸으나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어른들도 많이 걸린다.
열이 펄펄 끓어 오르는 둘째 날이었다.
아들의 피검사 결과는 12만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다. 부랴부랴 서둘러 우선 입원을 해 놓고 나니
그래도 안심은 되었다.
한국 같으면 소아과. 내과. 와과... 이런식으로 각 병동마다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아들이 입원한
사립병원에서는 병과 상관없이 병실은 환자측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혼자 사용하는 방, 쾌적한 환경으로 병실 앞에는 꽃들이 잔뜩 핀 정원이 있어 환자의 빠른 회복에
한결 좋을 것 같은 병실을 골랐다. 병원에서 환자복은 주지 않았지만 아침 저녁마다 간호원들이 와서
밝은 얼굴로 환자의 세수를 도와주고 따뜻한 물로 몸을 닦아 주었다. 참 좋은 간호사들이었다.
아들이 잠자는 동안 나는 병원 관계자를 만나 뎅기열에 관한 통계자료를 확인해 보았고 의사도 만나
보았다. 의사가 말하길, 처음에는 고열로 한 2~ 3일 정도 앓다가 땀을 흘리면서 갑자기 열이 뚝 내리는데 보통 사람들은 괜찮다고 안심을 하지만 사실은 그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뎅기열의 위험 수치인 혈전구(thrombocyte) 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몸 속에서 출혈이 되어 몸 밖으로
나오는데 코, 입, 눈 신체의 구멍으로 피가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듣기만 하여도 끔찍한 일이다.
뎅기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주로 6~8월까지이며 2007년의 경우에는 지금 나의 아들이 입원한 이 병원에서 6월에만 110명이 입원을 하였고 7월에는 107명의 뎅기열로 입원한 환자만 들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병원과 인도네시아 전국의 병원을 합치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발생하였겠는가?
해마다 의학이 발달되어 약이 좋아 나아지고 있지만 조기 치료를 놓치면 사망 율은 6% 라고 했다.
더구나 몸살처럼 느껴지는 티푸스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몸살이니 그저 약 한알을 먹고 괜찮으면 그냥 두고하다가 급기야는 변을 당한다고 했다. 그 예가 두어 달 전 이곳에 모 의사가
그렇게 하다가 결국 사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뎅기열은 주로 아이들이 많이 걸렸으나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어른들도 많이 걸린다.
잠을 자던 아들이 깨어났다. 이제 내 아들이 겪을 고통스러운 뎅기열의 진행 과정을 나도 함께 겪기로
마음 먹었다.

< 열이 올라서 온 몸이 붉어져 가려운 상태이기에 가루약을 발라 줌>
아들의 온 몸에 붉은 열꽃들이 계속 피어올랐다. 홍역같이 작고 붉은 반점들이 빽빽하게 피어올랐다가
더 퍼지기 시작하자 온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버렸다.
열이 심하게 나니 편도선까지 동반하였는지 입술은 말라가면서 아들은 물도 삼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링커를 맞으면서 약은 계속 투입되고 4일 정도 지나자 붉은 반점들이 삭아내리는지 이젠
가렵다고 몸부림을 친다.
가려울 때 긁게되면 피멍이 들게되고 딱지가 생긴다. 하지만 나는 온몸에 흰 가루약을 두 세시간
간격으로 계속 발라 주었다. 그렇게 하루 밤을 꼬박 지내고 새벽녘이 되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약간의 여유가 있고 정원 사이로 햇살이 아들을 얼굴을 비춰주었고 그 햇살속으로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아들 학교 친구들이 문병을 왔는데 한 아이가 말린 대추를 여러 봉지에 넣어 가지고 왔다. 자신도 뎅기열에 걸린 적 있어 대추 삶은 물을 마셔서 빨리 완쾌하였다며 한솔이도 빨리 낫길 바란다고 했다. 아들은
처음 열났을 때부터 입원 퇴원까지 합하면 일주일이 걸렸고 의사는 완전 정상까지는 보름이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그 동안 학교도 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뎅기열에 걸렸을 때 주로 푸른 야자수를 마시거나 포카리스웨트 스포츠음료를 권장하였고 또 말린 대추를 씨 빼고 물에 끓여서 마시면 혈전구(thrombocyte) 수치를 올리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입원 후 일주일이 지나던 날 혈전구(thrombocyte)의 수치가 조금씩 올라 정상에 가까지고 있었다.
구정을 집에서 보낼 겸 나는 의사에게 퇴원을 부탁하였고, 아들은 밖에 나가 놀고싶은 마음으로
시간 맞춰 약을 꼬박꼬박 먹고 움직이지 않고 쉬기만 했더니 고맙게도 아들의 건강 상태는 금방 좋아지고 있었다.
햇살이 더욱 눈부시던 오후 그 동안 아들 때문에 심심이 피로한 나는 마당에 앉아 화초를 보고 있었다.
이웃집 기사가 헐레벌떡 지나가기에 우리 집 기사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 보았더니 한국 사람이 사는 그 집에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뎅기열에 걸려 어제밤에 입원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동남아 여행 가시는데 뎅기열이 두려우시면 그 나라에서 파는 야자수를 많이 마시고,
말린 대추를 조금 가져가서 삶아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