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는 여자이니까
2008년도 인연이 있어 2박 3일 동안 만난 분이 계십니다.
그 후 2014년 11월에 문학행사 때 만나게 되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
저에게로 오셔서 “진행을 재미있게 잘 했어요”. 하시더군요.
저는 고맙다며 인사드리고 자카르타로 돌아왔습니다.
지인들의 노모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막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게다가 타국에서의 생활은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향수에 허기진 듯 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버린 엄마를 다시 모시고 올 수도 없고해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사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어머니를 주세요"
그랬더니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어머니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급한 일에 대한 응답은 빨리 내려주시는데
어머니에 대한 기도는 큰 문제였던지 일년이 지나고 이 년 삼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노모를 만났습니다.
그분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으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대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면 대화의 소통이 아주 유쾌하였답니다.
그분이 저에게 꼭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왜 그렇게 오지로 다녀요?“
“저는 부모님도 그립고 외로워서 오지로 다닙니다.” 했더니
“ 그래,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도 많이 외로워”
저녁식사 때 아름다운 색 와인으로 마시면서부터 잠자고 있던 서로의 열정을 일깨웠고
밖이 어두워질수록 전등불빛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너와 내가 코드가 너무 잘 맞으니 내 딸 하자 응"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딸이 된 기념으로 우리는 '여자니까' 똑같은 영양크림을 하나씩 나눠가졌습니다.
밤이 깊고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저는 식탁에서 그분에게 '어머니'라고 불러드렸습니다.
오후쯤 집에 도착하여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분, 아니지 어머니의 말씀이
"방금 내가 잠 잤던 방에 가서 한참 앉아 있다가 나오는 길이다."
그 한마디에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고 어릴 적 구구단을 가르쳐 주셨던 나의 할머니 품이 생각났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를 종합적으로 대신해 주실 분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감동의 눈물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점심 냉수라면이라 하셨는데
저는 ' 사랑면'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머니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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