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물어봐야지>
.................................별과 달
두 달 전쯤 어떤 분이 블로그에서 고향사람이라며 반갑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내 고향은 경북 의성에서도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독한 산골이다.
동네 이름도 ‘뉘실’이라 불린다.
그 사람은 나와 연락이 닿고자 메모도 남기도 메일도 보내왔다.
마을 이름은 언급하면서 정작 자신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 하였다. 나는 많이 궁금했다.
메모를 읽으면서 수구초심이 가득한 분이라는 것만 확실하게 느껴졌다.
궁금해 하다가 잊고 지냈는데 오늘에서야 연락처를 알려 와 통화했다.
가족들은 한국에 있고 이곳에서는 혼자서 지내며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서 고향 풍경 사진을 보는데 자신의 집이 보여 너무 반갑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집은 교회 아래였다며 이름을 알려줬다.
나보다 5년 정도 선배였다.
나는 물었다.
“저를 아세요?”
“그럼 알지요. 어릴 적 별명까지 아는데.......”
"네. 제 별명이 뭔데요?"
갑자기 고향이 영화필름처럼 지나가고 있다.
난 동장인 삼촌을 졸라서 또래보다 이른 만 6살 때 입학하여 십 오리 길을 걸어 다녔다.
겨울날 잠바를 입었지만 칼바람을 안고 걸어가는 게 너무 힘들고,
벙어리장갑 속으로 바람이 술술 통해 손발이 잘려나가는 것처럼 시렸다.
등굣길은 정말 고통스러워 학교 가기가 싫었다.
언니들 학교 갈 때 나도 가고 싶어 마을 어귀까지 따라 갔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이제는 학교 가기 싫어서 우는 입장이 됐다.
어떤 날은 중학생인 큰 언니에게 업혀서 등교하기도 했다.
전화통화가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은 내 별명을 말해주지 않았다.
과연, 어렸을 적 내 별명은 뭐였을까?
아마도 내가 알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생각하였을까? 그렇다면
『우는 아이』, 『왈가닥』, 『말괄량이』, 『코흘리개』 ........ ,
도대체 뭐였을까?
가물가물한 유년시절의 나를 누군가 기억해 주고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번 전시회 온다고 하였으니 그때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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