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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만나야할 사람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지나 에 따라 사랑의 강도를 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위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누굴 챙길까, 준비할 겨를도 없이 화산폭발을 겪은사람들을 만났는데
바로 피를 나눈 가족들이었다. 어린 자식들은 부모가 챙겼지만 성장한 자식들은 부모를 챙겼다.
세계에서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인도네시아 족자 머라삐산의 폭발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대대로 너무 많다.
그 중에서 나는 젊은 남자와 여학생을 만나봤다.
젊은 남자 따우픽(26)은 2010년 족자 머라삐(Merapi)화산폭발 때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이다.
화산폭발이 시작되고 다친 부부가 집으로 와서 자신의 집에 대피시켜 주고 자신은 어머니를 찾으러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어머니를 찾으러 가다가 뜨거운 연기들이 몰려 와 탔던 오토바이를 놔두고 나무위로 올라갔다.
뜨거운 연기는 모든 걸 쓸면서 지나갔기에 따우픽이 올라가 있던 나무밑동마저 부러뜨르면서 지나간 것이다.
이때 따우픽은 나무에서 떨어져 도랑으로 빠졌다. 그 도랑에는 화산쇄설물이 고여 있어 따우픽의 하반신과 팔은 화산쇄설물에 첨벙거렸다.
뿐만 아니라 호흡할 때 먼지가 섞인 뜨거운 연기는 기도를 타고 폐로 들어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어떻게 집까지 갈 수 있었는지 따우픽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따우픽은 처음 폐를 X-ray 촬영하였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폐를 세척하고 촬영하기를 다섯 번 반복하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 폐를 세척하기 위해 목에 구멍을 뚫었던
흔적을 짚어 보이며 말했다. 따우픽의 하반신은 배꼽까지 화상을 입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발가락은 다 녹아 붙어버렸고 근육과 신경들이 감각을 못 느끼고 걸을 때마다 발뒤축이 당겨 깨끼발로 걷는다.
손과 팔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끼손가락은 잘려나갔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가늘고 알록달록한 피부로 감싸져 있었다.
이제는 걸을 수 있다며 잘생긴 얼굴의 그 싱그럽던 미소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잘생긴 얼굴에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칭찬밖에 할 말이 없었다.
따우픽은 올해 26살이다.
한 살짜리 아들과 아내가 있었는데 화상을 입은 후 아내는 이별을 선언하고 여자로 떠났다.
지금은 세 살 되었을 그 아들이 보고 싶다며 코를 찡그리며 말하는 그를 바라봐야 하는 나,
그럴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되는지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고만 싶었다.
따우픽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휠체어로 다녔지만 지금은 지팡이를 사용하며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수십 년을 걸어 다니면서 다리 아프다는 말을 했으면 했지 걸어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날 따우픽에게서 나는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행복을 알았다.
며칠 있으면 따우픽을 만나러 간다.
그땐 내가 또 얼마나 귀중한 걸 배워올까?
중학교 2학년인 리스까를 만나러 학교로 갔다.
교장실에 있는데 머리에 질밥을 쓰고 약간 기우뚱거리며 여중생이 들어왔다.
교장선생님께서 나에게 리스까를 인사 시켰다. 리스까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잡아야 하는데 순간 망설여졌다. 리스까의 손은 머라삐화산으로 화상을 입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리스까는 휠체어로 다니다가 지팡이 짚고 다니다가 지금은 그냥 걸을 수 있다.
리스까는 머라삐화산 폭발당시 밭에 나간 어머니를 찾으러 아버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어머니를 만나서 셋이서 함께 타고 오다가 뜨거운 연기를 만나 오토바이가 넘어져 어머니는 사망하고 리스까는 팔다리를 다쳤고
아버지는 두 발을 다쳤다.
리스까는 여자인데 왼쪽 볼에 화상을 입었고 왼쪽 귀도 다쳤다.
그래도 인터뷰하는 동안 리스까는 잠깐이라도 짜증나는 얼굴이나 신경질적인 표현이나 하지도 않았다.
화상으로 인한 자기를 촬영하여도 되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런 착한 리스까 옆에서 교장선생님은 “리스까를 촬영할 때 꼭 우리학교 이름을 알려 주세요”. 그런 말에도 리스까는 미소를 지었다.
긍정적인 생각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리스까는 손이 험상궂어도 볼펜으로 글자를 적을 수 있어 감사하며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또 감동했다.
나도 글 적는 걸 좋아한다.
한권의 책도 냈다. 그러나 글을 적을 수 있어 감사한다고 손에게 감사해 본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리스까에게 화산폭발 한지가 2년 되었는데 그 동안 집안일은 누가 하였는지 묻자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 어머니가 집안일을 한다고 했다.
리스까와 따우픽은 밝게 웃었고 작은 것에도 아주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화산폭발은 많은 걸 파괴하고 눈물과 아픔을 남겨주고 또 많은 걸 빼앗아 가기도 했다.
천재지변이 모든 걸 다 앗아간들 리스까와 따우픽의 미소만은 앗아 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내일 모레면 머라삐화산을 촬영하러 가는데 리스까와 따우픽을 만난다.
그들을 만날 것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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