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분 거리 되돌아갈 때 23시간 걸려
새벽 3시 집을 나섰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 타고 깔리만딴섬 발릭빠빤에 내렸다.
그곳에서 경비행기 타고 버라우로 오는데 45분 걸렸다.
버라우에서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오후 4시였다.
지금 당장 버라우(Berau)를 떠나 발릭빠빤(Balikpapan)으로 가고 싶어
항공편을 알아보니 내일 하루 종일 좌석이 없다고 한다.
렌터카 알아보니 비행기티켓 값보다 두 배로 더 비싸며 내일 새벽에나 되어야 출발할 수 있는 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Travel(승객들 개개인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장거리 운행 승합차)을 타기로 했다.
Travel의 승객으로는 남자대학생 3명과 박PD와 나였다. 버라우에서 Travel 타고 출발할 때 이미 어둑어둑한 저녁 7시였다.
자정이다.
숲길로 달리고 달려 한참을 왔다.
어둠속에 뭔가 출렁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강을 건너면 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이고 했다.
한밤중에 강을 건넌다는 건 왠지 으스스한 느낌 투성이다.
차에서 내려 뗏목을 탔다. 뗏목에는 엔진이 달려 있었다.
뗏목의 널빤지들은 너무 낡아 강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금방이라도 우지직거리며 부러져 강물에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강을 건너 차를 탔다.
어제 새벽3시에 집을 나섰고 오늘 자정까지 이동하니 피곤할 수밖에 창문을 전부 열어놓은 밤바람을 맞아도 차가 덜컹거려도 잠은 쏟아졌다.
갑자기 갑갑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차는 한적한 곳에 세워져 있고 승객들은 모두 쿨쿨 자고 있었다.
창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운전기사는 운전석에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들을 차에 두고 운전기사가 잠자러 간 모양이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창문도 모두 닫혔고 운전석에만 5cm정도 열려 있었다.
승합차에 다섯 사람이 잠자고 있으니 텁텁한 공기로 가득하여 질식할 것만 같았다.
맨 뒷좌석에 앉는 난 창문을 열 수 없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웠다.
창문을 열수가 없으니 자동차문을 열라고. 깊은 산속 깜깜한 밤에 비는 내리고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잠자는 것밖에 없었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저쪽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나더니 운전기사가 왔다.
나는 창문을 꼭 닫아 놓고 그냥 가버리면 잠자는 우리들을 죽일 셈이냐며 따지듯이 말했더니 기사는 미안하다며 말했다.
그리고 또 몇 시간을 자동차로 갔다.
빗방울 떨어진 창문
아침이 되었다.
밤새내린 비로 열대우림속의 황톳길은 눈길처럼 미끄러웠다.
갯벌에서 스키 타는 것처럼 자동차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횡단했다.
태양이 머리위에 떠 있을 무렵 도로변 허름한 식당 앞에서 운전기사는 배가 고파 도저히 못 가겠다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학생들은 따라 들어가고 나와 박PD도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흰밥과 튀겨진 메기 한 마리를 손으로 뜯어 맛있게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지만 우리는 먹을 만한 게 없어 생수만 마시다가 나왔다.
저녁 무렵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부터 나는 이스라엘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발릭빠빤에서 버라우까지 비행기 타고 45분 걸렸다. 그런데 그 거리를 23시간 자동차로 달렸으니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열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걸려서 갔던 일과 뭐가 다른가,
인도네시아에서 살다보면 공식도 변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가끔은 이상한 용기도 생기고 사람들을 차에 두고 혼자 잠자러 가버린 운전기사의 일도 그렇고,
뻔히 알면서 23시간 자동차 길도 마다하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하게 만드는 나라 인도네시아,
뭐든지 인도네시아로 들어오기만 하면 인도네시아식으로 바꿔지는 것 같다.
23시간 자동차 타고 가면서 아주 소중한 걸 얻었다.
그건 다음에 밝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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