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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10년 8월호

이부김 2010. 7. 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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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왕국의 제 13대왕 시누훈 빠꾸부워노

 


 * 한국인삼을 맛본 솔로왕국의 시누훈(sinihun)


 2010년 7월 8일은 중부자바의 솔로 왕궁(Keraton_Surakarta_Hadiningrat) 제 13대왕 시누훈빠꾸부워노(SINUHUN Pakubuwono XIII) 즉위 6년째 기념식이 있는 날이다.

 

 

 

 

그 행사를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과 입궁하려는데 문지기가 왕실의 가족이 아닌 사람과 특별손님은 사미르(Samir)노란색 바탕의 빨간색 줄을 목에 걸고 사룽을 꺼내주면서 걸치고 입궁하라고 했다. 입국에는 비자가 있고 왕궁에는 법도가 있으니 당연히 따라야지. 하체를 칭칭 감은 사룽은 걸어도 제자리걸음하는 것 같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촬영협조로 공문서는 미리 보냈건만 MOU까지 작성해 와서 사인하라는데, 에어컨 잘 돌아가는 멀쩡한 사무실 놔두고 하필 왕궁 마당 고목아래 앉아서 하자고 했다. 구두를 신어 발이 아팠고 사룽 걸쳤다는 생각을 잊고 땅바닥에 앉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런, 실수를 아름답게 하려고 내가 먼저 소리 내어 웃으면서 “어떻게 앉아야 하나요?” 물었다. 왕의 여동생이 사룽을 입고 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아야 넘어지지 않는다고 일러주었다. 그날 난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공손하게 무릎 끓고 MOU에 사인했다.  


MOU를 마친 뒤 왕을 언제 쯤 왕을 만날 수 있냐고 물었더니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고 한다. 분명히 된다고 했어왔는데. 이것 속 터지는 일이면서 낭패다. 3년 전 TVRI와 KBS가 합작으로 3주 동안 다큐멘터리 제작한적 있었다. 그 당시 족자왕궁(Keraton jogja)의 술탄(왕)과 인터뷰 시간을 이십 여분 밖에 얻어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합작이기에 내 책임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왕을 만날 기회만 알려주면 내가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 바로 오늘 오후다. 정복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정복에 배지가 가장 많이 달린 분과 인터뷰를 했더니 그는 재인니 말레이시아대사관Minister Counsellor(education)였고 그들은 과 즉위기념축하 겸 온 사절단원들이었다.

 


행사 끝나고 왕을 만나려고 얼쩡거리니 왕비가 나서서 왕은 바빠서 안 되고 어떤 남자와 이야길 하라고 했다.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왕의 남동생이란다. 그 말에 기분이 싹 나빠지네, 그와는 볼일이 없다고 말하며 왕 앞에 가서 내 소개하고 제작진이 준비해 온 인삼을 내밀었다. 푸른 이끼 속에 점잖게 누워있는 인삼을 들고 나는 인삼장수가 되어 한국인삼효능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잔뿌리 하나 뚝 잘라 씹으면서 왕에게도 권했다. 왕은 나를 쳐다보더니 인삼을 받아 씹었다. 옆의 사람들은 아주 신기한 듯이 웅성거리면서 인삼한번 쳐다보고 왕 한번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은 인삼을 만지고 싶어 손을 가까이 대기도 했다. 그때 말레시아 사람이 왕에게 어떤 맛이냐고 묻자 ‘쓴 맛이긴 한데 뒷맛은 달콤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말레시아 사랑은 한국인삼을 들어만 봤지 실제로 보진 못했다며 실뿌리라도 한번 씹어봤으면 하는 눈빛으로 껄떡거렸다. 그 껄떡거림이 유난했던지 왕은 인삼이 든 통을 닫아 비서에게 건넸다.


내 마음에선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어떻게 6년근 인삼을 대가없이 건네줄 수 있단 말인가. 입을 쳐다보다가 입안의 인삼을 다 삼키기 전에 나는 사적으로 만나 취미와 여러 가지를 취재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왕은 입안의 마지막 인삼을 삼키면서 이틀 후, 즉위기념식이 끝나고 집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나는 그 약속을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두 번이나 확인하면서 그곳을 나왔다.


 

 

그래, 내가 이틀만 궁녀가 되어주자


오늘은 왕궁비서실에서 나에게는 궁녀 옷으로 입혀 주고 제작진에는 남자복장을 입혀줬다. 그러면서 내일도 차림이 같다고 말했다. 제작진과 내가 왕궁의 옷으로 입은 이유는 궁내에서 촬영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손님이 아니라 잠시 궁의 식구가 되는 것이란다. 그래, 로마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솔로 왕궁의 법도를 따라 이틀만 궁녀가 되어주자. 나는 궁녀로 변신했다.

 

궁녀 옷은 치마처럼 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으로 둘둘 말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복부에 붕대를 여러 번 감았다. 그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했다. 가슴에는 궁녀들의 계급을 드러낸 천으로 한 번 더 둘렀다. 다 드러낸 어깨위에 일반인은 끄바야(kebaya) 걸치지만 솔로왕의 궁녀들은 입지 않는다. 궁녀 옷이라고 입혀 주기에 입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수리들이 입는 옷차림 같다. 괜찮다. 무수리면 어떻게 상궁이면 어떤가, 이 나이에 왕궁에서 양어깨를 드러내고 수천 명 사이를 활보한다는 건 여자로서 아름다운체험(?)이 아닐 수 없다. 


기념일 아침이 되었다. 검은색가방을 둘러멘 남자가 앞서가고 우리는 뒤따르고 있었다. 왕궁으로 들어서 네 번째 문을 통과하니 하인(Abdi Dalam) 문지기가 말했다. 다섯 번째 문을 통과해야하는데 그곳은 귀빈들만 드나드는 왕의 접견실이라고. 그건 맞는 말이다. 우리가 귀빈이니까 이렇게 드나드는 것이 아닐까. 왕과 덕담 나누는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도 어깨와 가슴에 훈장이 더덕더덕 달려 있어 왠지 귀빈 같았다. 가무잡잡한 남자들은 병풍처럼 둘러서서 그저 사진만 찰칵찰칵 찍어대고 있었다. 
 

왕, 부모만 잘 만나면 저절로 되는 왕, 만인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왕!

우리아버지는 생신날 커다란 케이크 앞에서 손자들이 노래만 불러도 집안에 즐거움이 가득하다고 하셨는데, 오늘 같은 날 왕은 얼마나 부푼 심정일까. 친지와 자녀들, 하인 천여 명들이 엎드려 축하드릴 것이고 외국에서 사절단도 왔었으니........ 귀빈들과 덕담을 나누고 있는 왕을 주시해 보다가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왕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 시누훈(왕)! 축하드립니다. 지금 어떤 기분이세요?"

" 으....... Merasa sedih sepi(슬프고 외로운 느낌)"

푸념을 털어놓듯이 슬픈 느낌이라는 참으로 의아한 대답을 들고 솔직히 나는 흥미로웠다. 왕의 이런 인터뷰는 귀한 것이니까, 아주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한발 더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 왜? 슬퍼요.......?"

" 이렇게 큰 행사가 일 년에 여덟 번이나 있는데, 러바란,........ 그때마다 난 혼자........"

“ 네....... ”

참깨 털어내듯 술술 털어내는 가슴속의 언어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때론 밝은 표정으로 더러는 호기심 많은 얼굴로 들었다. 시누훈(Sinuhun)은 4년 전 쓰러져서 지금은 회복되었지만 발음이 약간 어눌했다. 나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어떤 분이 왕과 뺨을 비비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남자끼리라서 그런지 좀 어설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탁, 하더니 왕의 안경오른쪽이 조금 깨어지면서 안경다리가 떨어졌다. 왕의 접견실을 나오면서 ‘슬픈 느낌이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왕을 알현하러 천여 명의 하인(Abdi Dalem)들이 마당에서부터 왕의보좌까지 앉아서 걸어갔다. 사룽 걸치고 저렇게 앉아 걷다가는 넘어질 수도 있는데 그들은 잘도 했다. 왕궁행사의 모든 순서를 궁녀들이 주관했다. 왕이 등장하는 문 앞에서 창을 들고 대기하는 것도 향을 피우는 것도, 오늘 이 한 시간을 춤을 추기위해 열흘을 날마다 춤춰 온 것도 궁녀들이다. 남자하인들은 그저 무릎 끓고 앉아서 궁녀들이 하는 것 쳐다보고 박수나 쳤다. 우리조상들도 그랬을까?


행사가 마치자마자 사람들은 왕과 함께 사진 찍으려고 엄청 몰려들었다. 피디는 행사직후 소감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가 봐도 왕이 너무 바빴다. 피디는 왕비에게라도 듣고 싶다며 나에게 졸랐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왕비에게 접근하여 말을 건네자 한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했다. 거절도 그냥 거절이 아니라 손사래를 쳐가면서 거절했다. 기분이 많이 상하더라만 촬영 중이니까  참았다. 드디어 행사가 완전히 다 끝났다. 이제 왕은 손님들의 왕도 하인들의 왕도 궁녀의 왕도 왕비의 왕도 아닌 우리 ‘VJ특공대’ 제작진의 왕이다. 굳이 설명을 하라면 인삼을 씹으면서 왕이 내게 해 준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아침과 같이 왕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춤추던 궁녀(Tari Bedoyo Ketawang)들과 왕은 정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 시누훈(왕/62세) 오늘 피곤하시겠지만 전 약속 지키러 왔습니다.”

“ 아참, 약속을 했었지요.”

어제 대화중에 취미가 키보드 연주하는 것과 자동차 정비와 꾸미는 것이 생각났다.

“ 우선 키보드로 음악을 먼저 들려주세요.“

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철망 문을 열고 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에는 CCTV가 화면이 보였고 넓고 둥근 방이었다. 한쪽 벽면에 키보드 일곱 대가 놓여 있었다. 연주는 좋아하는 민요 끄론쫑(Keroncong)중의 벙아완 솔로(Bengawan Solo)를 들려줬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훌륭하다며 박수를 쳤다.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자동차가 일곱 대였다. 그 일곱 대는 모두 선물로 받은 차였는데 낯익은 국산차는 한대도 없었다. 차고 앞에서 왕자를 직접운전해서 등교시킨다며 끔직한 사랑을 자랑을 듣다가 아무도 없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 후계자를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 내(62세)가 죽으면 내 아들(8세) 저 아이가 후계자가 될 것이요.”

하면서 우리를 따라다니던 왕자를 가리켰다. 이제 왕과의 촬영이 끝났다.


그때 문밖으로 왕비가 나오더니 왕자를 부르고 우리에겐 끝났으면 돌아가라는 식으로 마치 이웃집수탉 쫒아내듯이 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궁녀들만 대하더니 내가 궁녀 옷 입었다고 궁녀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반발심이 생겼다. 나는 왕에게 왕자와 잠시 놀아도 되겠는지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주와 인터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눈 후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옆에 앉아있는 왕비를 힐끔 훔쳐봤다. 그리고는 왕비에게 그 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걸 말했다.

“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 네 무엇입니까?”

“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여기에 온 이유는 솔로 왕이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다는 걸 한국시청자들에게 알려주려는데,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세 번이나 적군 쫒아내듯 했나요?”

“ 오, 제가 언제? 그랬다면 상당히 미안합니다.”

“ 그럼, 지금 인터뷰 할 수 있어요? " “ 네 그러죠”

GRM.Suryo Aryo Mustiko / 왕자

 

 

                                                                   공주 G.K.R Timoer Rumbai Kusuma Dewayani

 

인터뷰 조금 받으려는데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하는지 안 시켜줬으면 섭섭할 뻔했다는 표현을 이럴 때 하는가보다. 보통 인터뷰가 길어질 때 피디와 주고받는 코드가 있는데 사인을 줄려고 카메라 액정화면을 보니 배터리가 다 되어 꺼지려 했다. 난 피디에게 카메라가 꺼져도 이야기 멈출 때까지 들고 있자고 하는 동안 카메라가 먼저 꺼졌고 한참 있다가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인터뷰 응해줘소 고맙다고인사하면서 농담 한마디도 함께 전했다.

“ 당신은 두리안처럼 처음엔 날카롭더니 마음을 열면 이렇게 좋은 분이군요.”

이런 연유로 왕비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번째 문부터 나오기 시작하면서 왕궁을 빠져나왔고 나는 이틀간 입었던 궁녀 옷을 벗어 내던졌다. 아니다, 고이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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