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인도네시아 일상/인니 한인뉴스 기고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10년 5월호

이부김 2010. 4. 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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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모기와 움막에서 하룻밤                 

                         

오늘은 마을 입구 움막집 호나이(honai)에서 하룻밤 묵기로 계획했다. 아침에 짐정리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건 선크림, 그러나 더 중요한 말라리아 약을 확인하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파푸아로 오기 전 과로로 입원해 있으면서 일을 추진했고 퇴원하는 날 말라리아 약을 두 알 받아 왔다. 한 알은 그날, 나머지 한 알은 일주일 후 바로 내일 아침이 약 먹는 날이다.


동구 밖 울타리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어제 만났던 윌리우스에게 무슨 일 있는지 물었다. 어른 두 명과 3개월 된 아기가 말라리아 앓다가 지난밤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말라리아에 걸린 걸 어떻게 알아요?”

 그는 답해주기가 머쓱한지 텁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독수리 날개 펴듯이 어깨를 들썩거리던 말했다.

”고열이 나며 덥다고 하다가 갑자기 춥다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어요, 그러다가 죽는데 빠르면 3일에서 일주일 정도 걸려요.”

 수십 년 함께 지내던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무슨 길고양이 죽음을 이야기하듯이 가볍게 들려줬다. 내가 입원했을 때 의사 간호사들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그를 보면서 경험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죽기 싫었다. 그것도 모기에게 물려서 일주일 만에 죽는다는 건 더더욱. 나는 이일이 참 즐겁다. 그러나 내 목숨을 걸만한 일인가, 마음 밑바닥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하더니, 촬영이고 뭐고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맘이 세제거품처럼 부풀어지고 있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걸 윌리우스가 보더니 수로바 마을은 선선한 기후라서 말라리아모기가 거의 없는데 죽은 사람은 다른 지역에 나무하러 갔다가 물렸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 말은 슬픈 위안이지 수로바지역이 말라리아모기들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아니다. 윌리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열어 손으로 더듬거려 말라리아 약을 확인했다. 지퍼를 슬며시 닫으려다가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할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으면서 모기를 만드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렸다. 어쩌든지 모기에게 안 물리게 해 달라고.


움막 지붕은 갈대로 엮어졌다. 지붕에서 지네처럼 생긴 벌레 한 마리가 툭탁 떨어지면서 몸이 움츠러들자 그걸 보는 내 몸과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마을 입구에서 잔다는 것이 두렵다. 원시 생활하는 그들이 혹여 밤에 내 움막으로 쳐들어 올까봐 무서웠고, 앵앵거릴 모기도 무서웠다. 낯선 산속에 혼자 잔다는 것이 무서워 읍내 여고생과 함께 자기로 했다.

한밤중이다. 풀벌레도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난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떴다. 움막 속에서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깜깜하다. 조용한 가운데 멀리서 말라리아로 죽은 이들을 슬퍼하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그건 곡소리가 아니라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였다. 모기가 고추밭에 살충제 뿌리듯이 움막 안에 모기약을 뿌려댔다. 다음날 나는 멀쩡하게 눈을 떴고 모기약 제약회사에게 감사했다.

 

남자의 꼬떼까 여자의 살리와 노겐


와메나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로 가는데 꼬떼꼬 착용한 할아버지가 ‘포토,포토’ 하면서 나를 따라왔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식겁(?)하면서도 그 신기한 차림의 할아버지를 안보는 척 하면서 훔쳐봤다. 할아버지는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 찍길 원했다. ‘포토’한다고 무턱대고 찍었다가는 사진 한 장에 10$도 줘야하므로 찍기 전에 모델료를 흥정하는 것이 좋다. 


남자의 남자의 꼬떼까(Koteka) 여자의 살리(Sali)와 노겐(Noken)이 가장 이색적이었다. 이처럼 꼬떼꼬 차림이 나에게 신기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신기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수로바 마을에서 꼬떼꼬 만드는 방법과 여자들 살리(치마)와 노겐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꼬떼까는 호림(horim)을 심어 오이 굵기의 조롱박이 열리면 그것으로 꼬떼까를 만든다. 잘 익은 호림을 따서 불에 살짝 익힌 후 속을 파내고 보름간 햇볕에 말린다, 그 다음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윗부분은 실을 끼워 허리춤에 묶고 아랫부분은 남자의 거시기를 끼우고 윗부분과 연결된 실로 고환을 묶어 둔다. 그래야만 걸어 다녀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남자들의 정장차림은 꼬떼까와 넥타를 메고 약간의 액세서리로 팔뚝에 새의 깃털을 팔에 하고 다닌다.

 

 

다음은 여자들이 치마로 입고 다니는 살리(sali)이다. 고산의 고목 껍질을 벗겨 잘 말린다. 껍질이 가늘게 말려지면 허리길이에 맞게 단단한 끈을 두고 하나씩 엮어 만든다. 이 살리는 보통 서너 개를 껴입어야 속이 안 보인다. 아주 옛날 그곳의 여자들은 월경할 때 아주 보드라운 갈대를 말려서 기저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여자들은 보면 하나같이 이마에 끈을 묶은 듯 걸고 등에는 망태기 같은 걸  달고 다닌다. 이것을 노겐(Noken)이라고 하는데 노겐(Noken)은 결혼할 때 부모님께로부터 받는 축복의 선물이다. 그런 이유로 머리에서 내려놓으면 안 된다며 머리에다 걸고 다닌다. 노겐의 용도는 여자들에게 핸드백도 되고 시장바구니도 된다. 뿐만 아니라 갓난아기 업는 포대기로도 쓰이고 주식이 고구마인 그들이 밭으로 가면 고구마를 캐 담는 망태기 역할도 한다. 끈은 머리에 띠처럼 두르고 등에는 망태기 같은 걸 하고 다닌다.

 


          훈제 미라(Mummy)


추장이 유언으로 미라를 만들었고 삼백 칠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미라는 훈제 미라였다. 생명이 끊어지자마자 해부하여 뱃속의 장기들을 들어내고 살갗을 꼬챙이로 쿡쿡 찔러 연기에 그을렸다고 한다. 추장은 꼬떼까를 한 채로 미라가 돼 있었다.


            한인뉴스- 별과 달이 비추는 오지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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