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우물
보물이 가득한 땅 보조너고로
별과달
누군가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어떤 나라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많은 나라 사람도 언어도 자연재해도, 그리고 땅위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고 땅 아래는 보물(?)이 잔뜩 쌓여 있어 한번쯤 여행해도 좋은 나라다’고 말할 것이다.
땅 아래 보물이 있는 그곳은 자바 중부와 동부 경계지역이 보조너고로지역이다. 그곳에 가면 온 산들이 자띠(jati)나무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자띠나무는 무겁고 단단하여 조각하기는 힘들지만 질이 좋아 고급가구를 만든다. 나는 자띠(티크)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산들바람이 이마의 맺힌 땀방울은 닦아주었으나 내리꽂히는 햇볕을 걸러주지는 못했다. 이런 귀한나무들 아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 재주껏 땅을 파고 그저 보물을 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축복된 마을인가.
나는 다시 걸었고 산꼭대기쯤 다다랐을 때 우물 하나가 보였다. “와 이런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네.” 뚜껑을 열어 돌 하나 던져보니 ‘퐁당’하고 소리가 났다. 나는 갑자기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고 혹여 우물에 나쁜 짓한다고 혼나지는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뒤돌아보는데 아저씨들이 양동이가 달린 지게를 짊어지고 오가는 것이다. 양동이속에는 황토색물이 출렁이고 있었는데 여쭤보니 물이 아니고 원유란다. 약 80kg 이상의 무게라고 한다.
원유 양동이를 메고가는 아저씨
산비탈 길이었는데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다니던 아저씨들을 보니, 어린 시절 냇가로 물 길러 다니던 오빠와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빈양동이와 지게를 한번 져 봤더니 삶의 무게가 담겨서 그런지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나는 아저씨들이 져 나르는 원유가 정말 원유 맞는지 불을 붙여보자고 했고 깡통에 조금 덜어 불을 불이네 세상에 불이 붙어 활활 탔다.
허름한 움막 아래 한 노인이 땅속에서 올라오는 파이프를 작대기로 고정시키는 일을 하였다. 파이프는 땅속의 원유를 가득 머금고 밖으로 나와 ‘왈칵’ 토해냈다. 파이프가 들어갔다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 걸렸고 파이프에서 원유를 토해낼 때 양은 약 10리터라고 했다. 한 구덩이에서 하루에 퍼 올리는 양이 약 2~3천 리터 정도라고 했다.
갑자기 소나가기 내렸다. 기름이 잔뜩 깔린 흙바닥에 비가 내리자 물방울들인지 기름방물들이 또르르 굴러다녔다. 얼마나 미끄러운지 넘어지려는 날 노인이 붙잡았다. 내 하얀색 잠바에 노인의 시커먼 기름때 손자국이 묻었다. 이제 더러워질까봐 조심하던 마음이 사라지니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세상도 이렇게 살면 편할까 나는 노인이 들었던 작대기를 함께 잡고 파이프를 여러 번 고정했다.
주민들의 재래식,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원유
보물이 묻힌 곳은 있으면 반드시 보물지도가 있다. 원유가 묻힌 이곳 보조너고로에도 원유우물지도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를 350년이나 지배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물러가면서 우물은 막고 보물지도는 가져갔다고 한다. 조상대대로 해오던 일이라서 후손들이 이리저리 파서 찾아 낸 원유 우물은 주민들 개인소유라고 했다.
산 전체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오두막이 있고 중간에는 예쁜 색깔로 방아깨비처럼 돌아가는 기계도 수십 개가 있었다. 그것도 원유를 퍼 올리는 곳인데 정유회사 것이라고 한다. 멈춘 기계들도 있었는데 그곳은 이미 원유가 고갈되었다고 했다.
함께 간 사람이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있다고 알려줬다. 남의 나라 땅이지만 보물은 보물이다 그래서 더 탐이 난다.
원유 퍼 올리는 기계식
비도 그쳤고 산을 거의 다 내려왔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그들은 데모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스회사(Exxon+지방군)가 마을에 들어선지 몇 년이 지났고 처음에는 사회적인 책임으로 마을의 길을 고쳐주는 둥 약간의 보상을 해주었으나 기간이 다 끝났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는 소음, 공해와 가스가 독해서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매달 진료비를 보상해달라는 것이었다. 5개 마을 주민들이 요구하는 보상금은 매달 한가구당 25만(28$)루피아였다. 지방의회에서는 데모할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나서주겠다는 대답뿐이고 현재 데모를 여러 번해도 아직 가스회사 측의 대답을 듣지 못해 소송중이라고 주민대표가 말했다.
보조너고로 지역에 나는 두 번째 왔다. 3년 전에는 원유 판매가격이 너무 싸서 주민들 생계가 어렵다고 데모를 했다. 그들의 판매가격에서 동력기에 사용되는 경유 값이 원유판매금액에서 약 70%가 지불되기 때문에 나머지가 인건비로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라면서 데모를 했었다.
귀한 자띠나무 숲을 가지고 원유 우물도 가진 주민들이 부자일거라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주민들은 재래식으로 정유회사는 기계식으로 외국회사는 가스채굴 자동화,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사는 세상. 도대체 돈들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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