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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거부하는 까장족

이부김 2009. 7. 3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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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거부하는 까장족>

                                              별과달

술라웨시 섬의 중심도시 마까사르 술탄 하사누딘(Sultan Hasanudin)공항에 도착했다. 마카사르는 ‘우중빤당’(Ujung pandang)이라고도 일컫는다.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마카사르(Makassr)시는 향신료 무역장소 센트럴로 활약하였던 곳이다. 16세기경 인도네시아 동부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마카사르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불루꿈바군은 향신료로 사용되는 정향(cengkei)의 원산지이다.

 

불루꿈바에 가면 원산지답게 집집마다 정향나무를 백여 그루씩 가지고 있었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이고 무엇보다도 정향나무 자라기에 기후조건이 아주 좋다고 했다. 그 외 후추와 계피, 코코아, 바닐라등도 많이 있었다.

 

나는 혹시 특이한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고 불루꿈바 사람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까장족(suku kajang)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생활방식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반년이 지난 후에도 까장족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나는 무척 즐겁다.

 

따나또아 가면 검은색 옷을 입어라>

 

까장족의 현주소는 불루꿈바군 까장면 따나또아 마을이다. 지역이름을 따서 까장족(suku kajang)이라 부른다. 까장족은 까장달람(inner)과 까장루아르(outar)로 분리되어있다. 까장루아르는 문명을 조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철저하게 풍습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바로 까장달람이다. 그들은 늘 검은색 계통의 옷만 입고 생활하며 아주 간단하고 한편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한다. 과학기술과 연관되는 모든 물건들을 거부한 채 살아간다. 과학기술은 자연을 해치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에 부정적인 면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뚜리엑 아끄라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중재자이며, 세상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믿는다.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따나또아 (tanatoa), 즉 가장 오래된 땅, 이라고 부르며 가장 처음 인간이 살았던 땅이라고 믿는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서 드디어 그렇게 그리워하던 따나또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검은색 옷 입은 사람만이 들어 갈 수 있다며 빨간옷을 입은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인도네시아말로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러니 들어가게 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못 알아들었는지 설명도 해 주지 않고 들어가려는 나를 밖으로 떠밀어냈다. 물론 카메라도 나와 함께 쫓겨났다.

등 떠밀려 나오면서 나는 지난 밤 숙소에서 만난 까장족 아가씨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인 꼰조어(Bahasa Konjo)를 사용하고 있으며 내가 사용하는 표준 인도네시아어로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어야만 들어 갈 수가 있다고 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걸 알면서도 정말 그런지 아니면 외국인이라고 하면 혹 예외가 될까, 그런 상황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실험을 해 보았던 것이다.

 

따나또아 마을 촬영 시에는 족장(ammatoa)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족장을 만나러가기 전에 마을의 동장을 찾아가서 인사도 나누고 부족들에게 대한 정보를 얻을 겸 찾아갔다. 동장이 미리 알려 준 것은 족장 집 이층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족장의 얼굴이 사진에 찍혀 밖으로 노출되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예전부터 전해내려 왔고 확실한 이유는 직접가서 물어 보라고 했다.  

오지로 가면 갈수록 할머니에게서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들이 들려주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어느 시대에 와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아 신나고 즐겁기도 하다.

                                                 suku kajang sumah adat ☞

 

따나또아에 검은색 옷을 입어야 들어 갈 수 있다니 그렇게 따라야지.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미리 준비 해 온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입구에서 마을까지는 약 1km 정도 걸어가는데 돌길이었다. 그들은 숲을 존중한다고 하더니 마을이 온통 숲으로 되어 있어 삼림욕이 저절로 되었고 아무리 태양이 내리 쬐어도 선선했다.

하지만 마을 골목길에는 말똥과 소똥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 냄새도 퀴퀴하게 났고 대낮인데도 집집마다 여러 마리의 수탉이 울어댔다. 소타고 지나가는 아이도 만났고 등에 짐 실은 말이 지나갔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네들도 만났다.                           

 

족장(암마또아)집에 도착했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거실에는 마을의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족장과 악수로 인사를 나누면서 족장의 얼굴을 자세히쳐다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가무잡잡했는데 족장은 얼굴이 나처럼 흰피부였다. 아마도 바깥 출입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보통 현장에 가면 느슨한 분위기와 원활한 촬영을 위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농담을 몇 마디 건네 본다. 그런데 암마또아 족장과는 거의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는 높아지게 되는 것을 누구나 다 경험했을 것이다. 그럴 때 차라리 손짓발짓이 더 쉬웠다

 

분위기 파악이 어느 정도 되었으니 신호를 보내고 카메라가 들어왔다. 족장은 카메라를 보더니 안 된다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통역자에게 카메라맨이 인도네시아 처음으로 왔어 잘 이해를 못해서 그렇다고 족장에게 설명하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능청을 떠는 동안 어쩌면 피디의 카메라에 족장의 얼굴을 촬영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카메라 촬영을 금하는지 물어 보았다. 족장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얼굴이 밖으로 퍼져나가면 다른 부족들의 관심을 모으게되고 또 자신들만이 지켜 나가는 풍습이 파괴될까봐 라고했다.

 

 ☜ 천을 짜는 아낙네

 

모든 집들의 대문방향은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울타리는 대나무나 돌담으로 되어 있었고 대문은 없었다. 제주도에 가서 본적 있는데 대문에 긴 막대기 서너개를 걸쳐 놓았듯이 이 마을에도 같은 방식이었다.  대문 앞에는 긴 나무의자가 있어 아마도 이웃집과 정담을 나누기 위한 것 같았다. 그들의 집은 나무로 지어졌으며 이층집이었다. 이름도 루마빵궁(Rumah Panggung) 말 그대로 ‘무대의 집’이다. 일층은 사방이 굵은 기둥으로 2m 간격마다 땅에 묻혀 있었다. 일층은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이라 허드렛일도 하고 가축들을 가두기도 하고 방아를 찧거나 색실을 사다가 검은색으로 물들여 직접 천을 짰다. 검은색으로 물들여진 천은 자신들의 옷감으로 쓰이지만 시장에 가서 내다 팔기도 한다고 했다.

 

이층 부엌과 침실, 거실은 생활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창문이 필요한 곳에는 적당한 크기로 문들 만들어 놓고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부엌을 엿보니 아궁이가 두 개뿐이었다. 저 아궁이 두 개가 발달하여 지금의 가스레인지도 화구 두 개로 사용될까 하고 생각해 봤다. 거실은 마룻바닥이고 주로 돗자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마을에는 전기가 없기 때문에 밤에는 호롱불을 사용했다. 밤에 어두워서 어떻게 마실 다닐 수가 있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했다.

 

< 까장족의 장례문화/suku kajang kematian adat>

 

긴 이별은 죽음이다. 까장족의 장례문화에는 장례를 치룬 후 100일째 되는 날에 당앙(Dangang)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죽은 이가 사용하던 물건을 가족들이 샘물가에 가져가서 깨끗하게 씻었다. 기도를 한 후 성수 러루깡(lerukang) 이마에 발랐다. 입에는 러꼬(leko)를 물었다가 버렸다. 그것은 죽은 이에게 남아있는 자들을 지켜 달라는 뜻이라고 했다.

 

 

비석을 세우는데 업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석이 크다. 족장의 비석에는 오두막을 만들어 두고 마을의 장로들 무덤에는 큰 비석을 세운다. 비석을 세워 놓고 물로 씻는 것은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고, 비석에 이끼가 끼는 것을 막기 위해 야자유를 발라 준다. 또 비석 주변에는 바다의 작은 돌을 깔아 주는데, 그건 개미들이 다가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슬퍼도 통곡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영혼이 떠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흐느낀다. 그리고 여자들이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는 것은 조의를 표하는 예라고 했다.

 

비석을 세운 후 마을 사람들은 꺼르바우(소)을 잡고 여러 가지 음식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눠 먹는다. 꺼르바우를 잡을 때 닭도 함께 잡는데 혼자는 외롭기 때문에 함께 갈 영혼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음식으로는 러후러후(Rehu-Rehu)가 있다. 야자로 만든 설탕과 찹쌀가루를 물에 풀어 조청 만들듯이 오래 고아서 채로 걸려낸 것이다. 쫄깃쫄깃하여 잡채 맛이면서 문방구에 파는 쫀득이  맛 같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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