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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웨시 문명을 거부하는 까장족2

이부김 2009. 8.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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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라웨시, 문명을 거부하는 까장족

 

[ 까장족 노인 ]

 

사람과 사람이 말이 통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기쁜 일이다. 그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알아듣고 전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교수. 학습하는 과정이며 교육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에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활동이다.


콩을 안에서 키우면 콩나물이 되고 밖에서 키우면 콩나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 더 나은 교육을 받으려면 지금 있는 곳에서 학습한 후 더 넓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가정에서 마을로, 학교로, 사회로 그 다음 나라밖으로.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살고 있는 나라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평생을 동구 밖으로 나간 적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었다. 술라웨시 불루꿈바에 가면  숲속 마을에 살고 있는 그들을 외부사람들 ‘까장족’(suku kajang)'이라고 불렀다.

돌로 쌓은 낮은 담벼락에 앉으니 내 고향 경북 의성의 풍경인가 했다. 매미들은 죽어라고 떠들어대고 닭들도 그리고 골목길을 지나가는 허리구부정한 노인들의 헛기침소리까지 같았다.


지나가는 노인에게 인사를 나눈 후 말을 건넸다. 그 마을 사람들은 거의 자급자족이었다. 노인은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마을 밖, 도시로 나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라는 내 말에 ”싫어한다.“ 했었다.

 

내가 학생 때 일이다. 아이스크림콘을 먹으면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는 늘 ‘싫어, 너나 많이 먹어라’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억지로 아이스크림콘을 어머니 입에 넣었고 어머니는 ‘아이구 이거 입에 살살 녹는 게 참 맛있구나!’ 그 후로 어머니는 아이스크림을 즐기셨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은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아이스크림 맛을 몰랐던 어머니처럼 노인도 어쩌면 바깥세상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대답으로 덮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에 걸린 카메라로 얼른 노인을 찍어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 라고 하자,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 나야 나(자신)” 라며 정말 내가 맞다는 듯의 강조로 가슴을 툭툭 두드리기까지 하셨다. 카메라를 본적 있냐는 물음에 ‘오늘 처음’이라고 하셨고 나는 카메라에 동영상을 담아 노인에게 또 보여 드렸다. 노인은 이런 세상도 다 있나, 신기한 듯 허허 웃으면 동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마을 밖에는 높은 건물도 있고 자동차도 많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이 밖으로 나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 라고 했더니 그제야 차도 타보고 도시로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


모퉁이를 돌아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으로 갔다. 카메라에 찍힌 노인을 보여주면서 이 분이 누군 줄 아세요? “ 하고 물었다. 수군덕거리더니 ‘누구다’며 말하자 옆에서 어디 나도 보자 하면서 몰려들었다. 여럿이 함께 보았다. 그 중에 젊은 남자가 ”그것(카메라) 선물로 나에게 주세요. “하고 말했다. 아니 카메라는 내 밥그릇인데 달라고 하다니 열쇠고리 정도만 되어도 내가 하나씩 다 나둬주겠구만 아이구 미안해 하고 싶어라. 이럴 땐 그저 못 들은척하는 것이 최고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닭, 매미소리가 약해지고 마을은 조용해지면서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졌다. 두껍게 내려깔리는 어둠을 호롱불들은 감당하지 못한 채 나자빠지자 마을은 점점 어둠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 카메라가 무서운 아이]

 

교복 입은 초등학생들이 무더기로 등교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초등학생교복은 전국적으로 똑같다. 국기가 상 메라뿌띠(Sang Marah Putih)라 하며 빨강과 하양의 2색으로 빨강은 용기를 하양은 결백을 상징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모양새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우리 집 아이 셋 모두 저런 교복을 입고 다녔다.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교복을 통일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라의 국기들이 등교하는 그 모습을 촬영하려고 피디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2학년쯤 된 여자 아이가 울상이 되어 언니 뒤로 숨었다. 피디가 가까이 다가서자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굳어지면서 허겁지겁 도망갔다. 아이가 정말 무서워 도망가는 것을 보니 내 초등학교 시절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죽은 뱀을 들고 나를 따라오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잔인한 것 같아 ‘더 좋은 장면을 연출해 줄 테니 그만해요’라고 했다. 피디는 “이런 걸 찍어야 되죠.” 하면서 그 아이를 계속 따라갔다.

그랬다.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카메라를 들이대는 습성이다. 찍지 말라고 하면 더 적나라하게 찍고 싶고 방송에 내보내지 말라고 하면 모자이크해서라도 내보내고 싶은 마음, 나도 똑같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가 식겁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학생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따나또아초등학교(SDN 351)로 들어갔다. 전교생 대부분이 운동화가 아닌 산달을 신고 등교했다. 교무실로 들어갔는데 어두컴컴했다. 92년도에 학교가 설립되었지만 까장족들의 반대로 전기설치를 하지 못했고,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컴퓨터 한 대마저 학교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 교장선생님 집에 모셔 놨다고 한다.

그런 환경이다보니 교육율은 자연히 낮을 수밖에 없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률이 40%도 안된다고 한다. 방과후에 숙제보다는 주로 집안일을 돕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농번기에는 며칠 씩 방학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 과반수 이상이 농삿일 거든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까장족들도 자녀들에게 교육은 중요시 해다. 현대식 교육보다는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미풍양속을 후손들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집안의 경조사가 생기면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 보름이든 한 달이든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라마단 금식기간 한 달 동안 그 지역 학교들은 모두 방학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지 요즘은 경조사도 간소화되어지고 학생들이 일주일에서 사일정도만 결석을 한다고 했다.

 

현장에 가면 나는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어 늘 입이 근질근질하다. 어느 교실을 들어갔다. 여자아이들에게 ‘네 이름이 뭐지?“ 하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라서 부끄러워 그러는가보다 하고 그 옆의 학생에게 또 물었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옆에 선생님이 아이들이 아직 인도네시아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며 통역해 주셨다. 수학 수업하는 교실로 갔더니 아까 도망가던 여자아이가 제일 앞에 앉았네. 얼마나 반갑던지 있었다. 아까 왜 도망갔는지 선생님께 질문을 부탁드렸더니 시커먼 카메라를 처음 보는데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까장족들도 바톤섬(P.Buton) 바우바우시(Baubau)의 찌아찌아족들이 모어(母語)만 있고 문자가 없어 우리 한글을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까장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바하사 꼰조(Bahasa Konjo)라고 한다. 까장족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국어인 바하사(語) 인도네시아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그들은 국어를 배우면서 방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 전 과목과 국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까장족들에게도 우리 한글이 공식 언어로 사용된다면 제일 먼저 나는 그 따나또아학교로 가서 국어 시간을 참관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곰 세 마리’ 동요를 가르쳐 주고 싶다.  또 마을 모든 노인들에게 자동차를 태워 시내구경을 시켜드리고 아이스크림을 사 드리고 싶다.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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