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인도네시아 일상/인니인.한인

함께 먹던 그때 그 밥맛

이부김 2009. 1. 24.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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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먹던 그때 밥맛

       

                                              별과달

      “ 너희들 무엇 먹을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주문해라.”

      세 사람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아가씨가 신중하게 메뉴판을 넘기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 전 아무거나 먹을래요.

      마치 숙제를 마치고 공책을 덮듯이 메뉴판을 덮었다. 그 옆의 아가씨는 메뉴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 응……. 저도……. 아무거나 시켜주세요."

      “ 괜찮아. 너희들이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마음껏 주문해”

      나는 조용히 메뉴판만 넘기던 청년에게 물었다.

      “ 그러면 아판디 넌 뭘 먹을래?”

      “ 저도 아무거나 먹을래요.”

      “ 그래, 그러면 여기에 그런 메뉴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주문을 받아 적으려고 준비하고 서 있던 종업원에게

      “ 여기 ‘아무거나’ 라는 음식 있으면 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들과 내가 함께 했던 송별파티가2년 전 이맘 때였던가 보다. 지금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여자 둘과 남자 한명인데

       지난주에는 내 생일이라고 문자를 보내주더니, 다음 주에는 한국 설날이라고 찾아 온 나의 옛 직원들이다.

      이곳에 살면서 항상 내가 먼저 찾아가고 선물을 배달시켜 주다가 이렇게 나를 찾아 온 이들을 만나니 반가움과 고마움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지 나는 구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세상은 살아 볼만하다는 행복감이 가슴 한편에서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나는 6년 전 PC방을 열어 4년 동안 운영한 적 있다. 그 때만해

      도 이곳에서 컴퓨터로 게임이나 인터넷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PC방 직원만 되면 인터넷을 공짜로 마음대로할 수

       있기에 직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문에 구인광고를 냈다가 300여명 이력서를 받는 엽기적

      일도 있었다. 고르고 골라서 면접과 실기 테스트를 거쳤고

      열 명 정도의 직원을 채용했었다.

      그 중 가장 마음이 갔던 직원은 지금 내 앞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아판디’라는 남자 직원이다. 아는 분이 추천해

      준 사람이 바로 아판디였는데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대기업에서나 작은 가게에서나 훤칠하고 용모 단정하며 똑똑한 인력을 찾으려는

      은 경영자의 같은 심정일 것이다. 아판디를 보는 순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피부는 고사하고 얼굴은

      검은 초콜릿빛이었다. 종교는 기독교인이었지만 학력도 국졸이고 팔뚝과 손등 손가락마다마디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학력은 그렇다고 치지만 경험이라고 동네에서 이웃집 집짓는 일을 도와 준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연락을 하겠다는 말만 해주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몇 명의 직원들이 속된 말로 돈을‘삥땅’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카리스마 성격이나 왔는지 모르지만 열 명의 직원 중 한명만 놔두고 전 직원을 삼일 동안 새로운 직원으로 교체 시켰다. 그때 아판디

       생각이 났고 또 추천한사람의 성의도 있고 해서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출근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직원이라고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과 손님들까지도 그를 경계했다. 손님들은 회사원,

       기자, 교사들도 많았지만 주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음료를 주문하여 아판디가 아무리 친절하게 서비스 해 주더라

      고 음료를 내미는 순간 손님들의 시선은 화려한 문신을 보면서 꺼려하더라는 것이다. 전 직원이 반팔 유니폼인데 혼자

      만 긴팔을 입힐 수도 없고. 나는 며칠을 고민했고 몇 주일을 갈등하며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아판디는 어릴 적 부모님은 이혼하여 엄마도 아버지도 재혼하였으며 오갈 데 없는 자신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아주 성실하게 일을 했다. 처음에는 컴퓨터 켤 줄도 모르던 그가 손님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상당히 엄한 사람이었다. 인도네시아인들 특유의 근성 놀기 삼아 일하는 태도 용납하지 않았다.

      짓궂을 정도로 혹독하게 일을 가르친 덕분인지 우리 직원들이 다른 PC방에서 반 이상이 매니저로 채용되었고 다른

      곳의 직원들보다 우선으로 받아 주었다고 한다. 깐깐하게 굴었던 그런 나와 뭔 인정들이 묻어 있었는지 내가 PC방

      폐업할 때 직원들 모두가 울었다.

       

       

      나이 많은 여직원은 작년에 결혼하여 주부가 되었다. 밥 한 접시 다 비우고 이렇게 맛있는 새우튀김은 난생처음

      먹어 본다며 새우를 아귀아귀 깨물어 먹고, 양념으로 만들어진 꽃게도 너무 맛있다며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전에 못 보던 용감한 행동인걸 보니 아줌마가 되었다는 증거인 것 같다.입속에 든 양념이 다 넘어갔는지 말을 이었다.

      십년 동안 여러 군데서 일하였고 지금은 중국인 PC방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 생각이 자주 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합창하듯이 말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생각나더냐고 묻자. 그건, 매달 한번씩 4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했던 미팅,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때 가라오케로 간 것, 미팅이 끝나고 직원 한 사람이

      식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순간 이미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였던 일. 출출하던 저녁 때 동료직원들과 함께

      둘러 앉아 먹는 그 때 그 밥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고 그 때 가장 그립다고 말했다.


      역시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함께 음식을 먹여야 정이 돈독하게 깊어지는가 보다. 다른 사장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함께 음식 먹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나눠먹는 인정어린 우리 한국인들의 음식과 회식문화 탓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마주보며 식사하고 있는 이 순간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이들에게는 얼마나 값진 추억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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