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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인.한인

사랑은 미스테리

이부김 2008. 12. 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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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미스테리

 

                                           글/별과달

교수 친구와 함께 만나면 가는 단골 레스토랑이 있다. 점심 식사하면서 통째 마시는 야자수를 시켰더니 너무 익은 야자가 나왔다. 물맛은 시금떨떨하며 시원하지가 않았다. 게다가 하얗고 물컹물컹해야 할 야자속살이 단단하게 굳어 숟가락으로 긁어 먹을 수가 없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을 하얗게 보이고 싶어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칠한 여자 종업원에게 좀 덜 익은 야자로 바꿔 주되 야자수는 컵에 담고 야자는 반으로 갈라 달라고 했다. 돌아서 가는 여종업원 뒤통수를 툭, 하고 치면 금방이라도 화장 가면이 벗겨 질것만 같았다.


과일이든 무엇이든 지나치게 익으면 맛이 없지 사랑도 그렇고 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이 교수 친구가 갑자기 대학생 내 딸아이에게 물었다.

“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 전 미스테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랑도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딸아이가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보고도 묻는 것이 아닌가,

“ 사랑은 동전입니다. 공중전화를 걸 때 흠집 있는 동전은 통화가 안 되며 동전 대신 엽전을 넣으면 통화는 될 수 있으나 나중에는 탈이 나겠죠. 온전한 동전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통화가 가능한 것.”

다음은 교수가 “내 생각으로 사랑은 ‘희생’이죠. 상대방이 국수 먹고 싶어 하면 내가 싫어도 함께 먹어 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때 싱싱한 야자가 나왔기에 내가 야자 반쪽을 긁어 먹으라고 교수친구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사랑보다는 믿음이 먼저 아닐까요? 낯선 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면도날을 든 이발사에게 얼굴을 맡기는 것도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하루 종일 밖으로 내 보낼 수 있는 것도.”

그러자 교수친구는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런 사랑도 있다며 이야기 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교 경리과장인데 나보다 미남도 아니며 한쪽 눈은 사팔뜨기인데 부인이 매일 사무실로 와서 사무실 앞 소파에 앉아 있다가 함께 퇴근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앉아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행위는 남편의 앞길을 막는 것인데" 라고 말하였더니 교수친구가 하는 말, “그 사람은 아내에게 ‘회의하러 가니까 꼼짝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하고선 택시를 불러 타고 밖으로 나갔다.” 


그건 삐딱한 사랑이나 온전한 사랑이 유효기간을 넘어서 집착이나 구속으로 변형된 사랑이다. 내 말에 모르지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인지도. 그런 사람은 공처가에 속한다는 내 말에 그는 이해를 못했는지 머뭇거렸다. 나는 공처가란 말을 다시 알려 줬다. 한인사전에 적힌 대로 ‘아내에게 지배당하는 남편(Suami dijajah oleh istri)‘이라고 말하였더니 그는 그런 말이 있긴 한데 여기서는 ISTI(Ikatan Suami Takut Istri)라 표현한다고 했다. 그 말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부인을 겁내는 남편들의 모임’ 이라는 말이 된다. 

인도네시아에는 부인을 겁내는 남편들이 많은가 보다 그런 모임이란 단어까지 표현하게 된 것을 보면,


그때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 왔다. 이 친구는 핸드폰 번호가 두개인데 처음에는 공적인 번호를 알려주다가 언제부턴가 사적은 번호로만 문자가 온다. 단순한 안부인데도 왜 그렇게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앞의 교수 친구에게 두개 번호를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부인들이 핸드폰을 자주 열어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자 보낸 친구도 그런 말을 하였던 적이 있다. 핸드폰 열어 보는 것은 일기장 훔쳐 보는 것과도 같은 일이니까. 이 친구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는 아주 많다. 마치 최첨단의 유행처럼 심지어 Pulsa(요금)가 없어 문자도 못 보냈다는 사람까지 두개의 번호를 사용하니까.


누구든 사랑해서 결혼하였지 복수하려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을 터인데.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여자들이 문제일까? 그 놈의 사랑으로 결혼해 놓고선 사랑의 올무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남자들이 문제일까? 아니면 사랑은 동전도 희생도 아닌 딸아이 말대로 미스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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