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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인.한인

병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이부김 2009. 2. 1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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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별과달

자신이 앓고 있는 병, 낫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나라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절실함 일 것이다. 작게는 아무리 먼 거리를 가서 오래 기다린다 할지라도 진료 받아 나을 수만 있다만,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수하려 할 것이다. 심지어는 희망과 사망이 반반이라 해도 희망에 도전해 보는 이들도 있지 않는가.

 

요즘 인도네시아에서는 생수만 마셔도 낫는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 뽀나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경찰들과 마을 사람들의 경계가 삼엄했다. 마치 나라의 높은 양반이 머무는 곳처럼. 그래서 함께 놀았다던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그날 놀다가 생긴 일을 눈이 커다란 바구스(초등3)에게 물어 보았다. 뽀나리가 갑자기 소리 질렀어요. 머리에서 연기가 났고 그 때 노란색 돌멩이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그 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다음날 또 뽀나리를 만나서 놀았니?” 바구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날부터 뽀나리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뽀나리는 머리에 맞은 돌을 가지고 왔다. 그 후 온 몸에 열나기 시작하였는데 어머니는 머리에 맞은 돌 때문이라며 그 돌을 버렸다. 조금 후 돌아오니 버린 돌이 그 방에 다시 와 있었다고 한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서 설사 한다 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돌을 컵에 넣고 물을 마셨더니 설사가 멈췄다. 중풍인 사람의 다리를 돌로 문지르고 같은 방법의 물을 마시자 걸을 수 있었다고 뽀나리 아버지가 말했다. 직접 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식을 쌓아 둔 내 머리통이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소문이 보름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마을에서 도시로 퍼져 나갔다. 벼락맞은 돌을 담근 물을 마시면 무슨 병이

든지 나을 수 있다는 말은 인도네시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진료 비는 거의 공짜다. 공짜라는 말과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는 그 루머는 질병의 늪에서 갈팡질팡하는 환자들에게 더 없이 희망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빨리 나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떤 환자는 자전거를 한시간이나 타고 와서 두 시간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었다. 또 많은 사람들의 밀고 당김 속에서 힘없는 오십대 중반 여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백배는 강력하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사실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그저 뉴스에 나오는 남의 일이지만 병이 나았다는 소문은 곧 나의 병도 나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일까.

 

환자들은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수천을 넘어 몰려 들기 시작하였다. 논으로 둘러 쌓인 마을에 갑자기 그렇게 많은 방문자들이 생기자 여기저기 도로가 파손되었다. 경찰서에서 도로 복구 작업하는 삼일 동안도 진료 중단시켰고 그 동안에도 사람들은 몰려 들었다. 마을에서는 대책위원회가 생겨나고 관내의 군인 경찰 백여명이 동원되었다. 생수만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위생상 문제도 있고 또 사람들의 몸씨름으로 사고가 생기자 관내 보건소 직원들이 나와 앰블란스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기 전날 미리 와서 민박하는 이들도 많았다. 현지인들이 민박이라면 내가 보았을 때는 노숙이나 다름 없었다. 공사 중인 사원 바닥이나 비를 피할 수 있고 돛자리 펴서 누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밤을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타지에서 왔는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틀을 기둥만 세워진 사원 바닥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진료 받을 수 있는 번호표를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자카르타에서 온 아주머니에게 좋은 병원 놔두고 왜 하필 시골로 왔느냐는 짓궂은 물음에 병고침 받으려고 한다는 당연한 대답을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 현장으로 갔다. 진료 받는 곳에는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중에 운 좋은 이들은 하룻밤자고도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물을 담은 통을 들고 있었다. 그 물통 속에는 주민등록등과 운전면허증 또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선 보기에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은 코팅이 잘 되어 있어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았지만, 식구 수대로 담긴 사진의 색깔은 이미 물속에 용해되고 있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하고 있었을까.

돌을 담근 물만 마시면 낫는다기에 이웃집 환자들이 물까지 받아가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물 담긴 통을 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는지 물은 반 가량 남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한번만 더 부딪히면 다 쏟아 질 것 같은 물컵을 들고 있었다. 땀냄새 질펀한 인파 속을 뚫고서 기왕이면 큰 통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지 그들의 융통성에 내가 안타까웠다.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조용하다. 어머니 품에 안긴 소년 뽀나리가 나타났다. 작은 손에 그 신비의 힘을 가졌다는 노란색 돌멩이를 들고 사람들의 들고 있는 물통 속으로 첨벙 적셨다가 꺼냈다. 이런 방법으로 5분만에 육십 여명의 의자를 지나갔다. 그리고는 경찰 아저씨는 뽀나리가 아파 더 이상하지 못한다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 가 버렸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빛은 상상에 어떠하였을까.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빚어진 교통 혼잡 때문에 마을 입구에서 왕복 3 km나 걸어 다녀야 했다. 멀쩡한 나도 피곤하였는데 환자들은 컨디션은….

 

이틀을 그 현장에 갔었지만 병이 나았다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다만 ‘낫았단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지. 그러나 오전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삼일을 기다리다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 국내 신문에서도 '나은 사람은 미스테리하지만 죽은 사람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종일 있으면 별별 이야기 다 들었다. 얼마 전에 죽은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소문에 빨리 낫고자 블리따르에서 한 시간 자전거 타고 와서 두 시간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한 시간을 달린 환자, 성한 사람도 견디기 힘들 터인데....

내가 마을을 떠나 올 때 기다리고 있던 보건소 앰블란스가 세 번째로 푸른 들판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 일면에 그곳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이제는 총 네 명이다

 

뽀나리 마을에는  오일 장터 같으면서도 잔치 분위기였다. 아니 시골 사람들에게 경사가 났다고 해야 되겠다. 전에 없던 와룽들이 잔뜩 들어 서 있었고 알맹이 세개 띄운 멀건 바소 한 그릇에 12.000 루피아까지 했다. 바소 한 그릇에 그 정도는 싼 값일지도 모른다. 시골 도로변에 잠시 몇 시간 주차해도 7천 루피아를 받으니 말이다. 각지에서 몰려 든 환자들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왔다고 했는데 그곳에 머물면서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돈도 작지만은 않았다. 구름 떼처럼 모인 사람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낫고자 하는 소망이 이루어지길 나도 바란다.

 

벼락 맞던 날처럼 한창 뛰어 놀고 싶을 나이의 뽀나리, 신비의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지내야만 하는 뽀나리. 그의 친구들은 면역성이 강한 알몸으로 구정물 흐르는 개울에서 가무잡잡한 알몸과 하얀 이를 드러 내놓고 멱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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