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별과달 차타고 어디 갈 때 오는 전화는 무료한 시간을 메워주기 때문에 아주 고맙고 반갑다. 그러나 내가 직접 운전하고 있을 때 오는 전화는 솔직히 번거롭다. 가방 열어야지, 기어 변속해야지. 주위 차들 살펴야지. 이곳은 신호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구걸하는 사람이 운전석 옆에 와서 손 내밀고 서 있다. 그러면 동전을 주든지 아니면 없다고 손 흔들어 줘야 다음 차로 간다. 밤 8시경 딸아이가 책을 산다기에 함께 서점으로 갔다. 서점 근처에는 새학기가 시작되어 그런지 엄청 붐볐다. 거의 서점 앞에 도착하는데 전화가 왔다. 『 할로. 미스 김. 오늘 오후에 너무 심한 소낙비가 내려서 자카르타로 가는 스리위자야항공이 결항되었습니다. 』 『 네......???? 아니 그걸 왜 지금 알려줘요! 』 『 저희도 방금 연락 받았습니다.......』 『 뭐?....... 』 말랑 공항 카르고(cargo) 직원의 전화 한통은 내 말문을 콱 막아주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흩트려 놓았다. 엄마와 함께 책을 사고 싶다던 딸아이를 혼자 서점으로 보냈다. 사실 말랑에 있는 공항은 공항이 아니다. 공군기가 이착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행장, 간이공항 같은 것이다. 시민들의 여러 가지로 편리를 위해 여객기도 사용한다. 스리위자야항공은 지난번에는 물건을 보내지 않았으면 나에게 연락도 해 주지 않아 방송 스케줄 때문에 난리쳤던 일이 떠올라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또 물건이 안 보내졌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인도네시아 직원에게 고함을 질러 버렸다. 차 안에서 호흡을 크게 두 번 내쉬고 자카르타 00서비스로 전화했다. 그곳은 한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상황 설명을 하면 뾰족한 방법은 없으나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뜻이 통한다. 나는 일단 한국으로 연락해 상황 설명을 했다. 한국에서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조치를 취해보라고. 하지만 이곳 시간이 밤 8시면 한국 밤10시다. 그 시간에 뭘 하겠는가. 내가 말랑에서 낮에 비행기로 물건을 보내면 자카르타 00서비스에서 받아 밤 9시 출발 대한항공편으로 보낸다. 다음 날 서울 도착, 제작팀이 받아 편집 녹화하여 방송으로 나간다. 이번 이 취재도 급하게 서둘러서 밤잠도 설쳤는데, 지난 금요일 밤 늦게 눅눅한 목소리 '이모님.......' 다음 수요일 방송분이 없다기에 정말 급하게 서둘러 취재한 것이고....... 어제 하루 종일 눈동자가 피로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내일 모레 수요일 방송은 펑크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우기 철이다. 얼마 전 술라웨시로 갔던 비행기가 날씨가 좋지 못한 관계로 한참 동안 통신이 끊긴 적도 있었다. 천재, 악천후로 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나도 안다. 그러니까 홍수에 관한 소식을 한국으로 보내려는 것이 아닌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가루다는 운행이 되었고 스리위자야만 결항된 것이 바로 내가 소리 지른 이유다.
인도네시아에 오는 비는 얼마나 심하게 와서 비행기가 못 뜨는지는 나중에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을 전체에 흙탕물이 차 있고 걸어 다니는 대신에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다닌다. 그런 집중피해 지역이 지금 9개 군으로 늘어났다. 중부자바에서 동부 자바로 연결되는 지역들이다. 그들은 방안에 흙탕물이 가득하고 마당에 물이 허리춤에 와도 흙탕물속에서 식사 준비를 하며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오늘은 종일 자카르타에서 물건 받았다는 연락을 기다렸다. 자카르타 00서비스도 예전에 물건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하룻밤 재운 적 있어 나에게 쓴 소리를 들은 적 있다. 그래도 그들이 한국 사람이라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하긴 나는 집에서 물건 보낼 때마다 운전기사에게 3번 이상은 당부를 한다. 저녁 때 자카르타로 00서비스로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없다. 조금 전 연락이 왔다. 『 00서비스인데도 우리 직원이 아무리 찾아봐도 오늘 비행기로 온 물건이 없다는데요.』 『 뭐요? 물건이 없어요?????? 』 『 네, 우리 직원이 한참동안 찾아봐도 없다고 합니다. 』 『 뭐? 물건이 없다고요? 진짜로? 』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는 『 한 번 더 놀라라고 장난했습니다.』 『 지금 저한테 맞아 죽고 싶습니까? 』 『 .......... 하하하하……. 』
지금도 밖에는 투닥투닥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걸으면 누가 뒤에서 우산 받쳐주는 그런 낭만적인 추억 대신에, 나는 아주 현실적인 추억을 만들며 살아간다. 한국을 에워싸고 있는 추위가 물러가면 인도네시아 우기도 물러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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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주민들. 금요일 오전 10:40 KBS 2 TV 지구촌뉴스 시청해 보세요.
마을의 도로에 이렇게 많은 물이...... 도로변에서 노를 젓는 아저씨...
멀리서 보니 물에 잠긴 집이 더 잘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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