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환율 때문에
글/별과달
환율 변동이 있으면 어느 나라이든지 가장 먼저 수출업계에서 느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해외 소식을 제공하는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에도
적지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비가 많이 드는 해외 프로그램 제작보다는 국내로,
국내에서도 현장으로 가는 것 보다는 이미 준비 된 스튜디오에서 토크 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 한 예로 텔레비전 해외 프로그램 제작 경비 절감으로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으로
'지구촌 VJ 특급' 프로그램이 11월을 마지막 방송으로 없어졌다. 프로그램이 없어지게 될
무렵 그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일로 맺어졌지만 그 관계가
돈독해지면 인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오래 전 없어진 KBS 2 TV의 ‘놀라운 아시아’ 제작팀 중의 유독히 생각나는 피디가 있다.
그는 국내 방송만 하다가 어제 입사하여 오늘 인도네시아로 출장 왔습니다 하던 피디!
해외 프로그램은 내가 코디 해준 발리 섬 힌두교의 녀삐(Nyepi)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또 전화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여 놓던 작가는 어떻고 그런 연유로
정이 들어 서울에서 만나 두 작가와는 서울 홍대 앞에서 '전복삼계탕도 먹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커피를 들고 길거리를 걸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메일을 주고 받고 있으며
또 어떤 작가의 마지막 애절한 전화 목소리까지도 나는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 내리는 수요일 오후였다. 차라리 우요일이 더 어울리겠다.
수라바야 상습침수지역인 근처 맥도날드에서 약속을 했다.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가 아니라 부담이 없어 마음이 편해지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잠시 쏟아져 내린 것 같은데 시내 길바닥에는 마치 양동이로 퍼 부어 놓은 듯하며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물들이 어디로 흘러나가야 될지 몰라 이리저리 첨벙거리며
난리들이다. 외길에는 차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네거리는 금방 주차장으로 변했다.
그 때문인지 십오 분 후에 도착한다던 친구가 한 시간이 십 오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고
아직도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기다림이 지루해서 맥도날드 건물에서 목을 쑥 빼내고 도로를 내다보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한다. 받으니 한참 후 가느다란 목소리
“선생님 저 민주입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교편을 잡은 적이 없어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런데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애교스런 그 목소리는 작가였다. 나중에 인도네시아로 여행가고 싶은데 가도 되냐고 물었다.
인도네시아 전체가 내 집도 아닌데 나에게 물어 것은 나에게 오고 싶다는 것이겠지. 당연히
되고말고.
“ 민주씨 갑자기 프로그램이 없어지게 되어서 정신이 없겠네요?”
“ 네, 개편 때도 무사히 넘겼는데....” 환율의 벽을 못 넘었다는 것이다.
“ 없어지는 프로그램 대신에 다른 프로그램들이 생길 것이니 빨리 찾아야겠네요.”
“ 선생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시사프로그램 토크쇼에 관한 것을 맡게 되었어요.
선생님께 메일도 보내고 꼭 여행 갈게요.”
“ 축하해요. 역시 애살스런 민주씨는 실력뿐만 아니라 인맥도 풍부한가 보군요.”
친구가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기다림이 나에게는 정말로 지루했다.
사방이 두꺼워지고 있다. 비가 그친지는 한참 지났는데 도로에는 아직도 물이 흥건하고
차들이 밀려 있다. 소나가기 잠시 쏟아져도 도시 자동차들의 흐름을 이렇게 막아 놓는데
하물며 환율의 파도는 세계 시장에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겨 놓을까?
내가 친구를 기다렸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제의 회복을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