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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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취재.촬영/취재 현장 이야기

모래와 꺼지지 않는 불

이부김 2008. 11.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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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두라 섬 사람들

       < 모래와 꺼지지 않는 불>

 

                                         글/별과달

나에게 있어 멀리 새로운 곳 오지로 떠나는 일은 아이가 최신형 로봇을 사러 Mall 가는 날처럼 즐거운 일이다. 아이가 신형 로봇을 조립 할 때의 열심을 쏟아 붓고 나도 현장에 있을 때가 더 힘이 솟고 열정적긴 하지만 어찌 순조롭기만 할까?

그러나 조립이나 촬영이나 성공적으로 완성하였을 때 느끼는 그 행복함은 한마디로 무지개를 미끄럼틀로 타는 기분이다.

 

마두라 섬에는 아직 공항이 없다.

수라바야에서 항상 배를 이용해야 하므로 시간을 경제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많았다.

현재 방깔란에서 수라바야 간의 2 km의 수라마두교(Jembatan Suramadu) 공사 중이고 2009년 초에 완공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배를 타고 가면서 허리가 연결되지 않은 수라마두교를 볼 수 있었다.

배 안에서 선장에게 " 언제쯤이면 저 다리가 완공이 되겠어요?"

선장은 나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밖으로 쭈욱 내밀고 팔을 뻗어 가리키며

" 공사는 다 되었습니다. 아직 덜 된 부분만 빼고……."

" 네 다 되었어요?"

" 네, 덜 된 부분만 빼고 다 되었어요……."

그의 재치 있는 대답에 한참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나는 자와 사람들과의 선입견을 벗어나서 마두라 사람들과는 왠지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한마디 내던졌다.

" 그럼 지금 우리는 마두라 섬에 도착한 셈이네요. 여기서 저기 섬까지 바다만 없다면……."

 

마두라 섬에는 4개 군이다. 그 중에서 남쪽 끝에 위치한 수머넙(Sumenep)으로 가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조상 대대로 모래와 더불어 사는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말랑에서 차타고 배타고 또 차타고 바땅바땅(Dusun Tenggina, Desa Dapinda,

Kecamatan Batang- batang) 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총 8시간이었다. 그 곳의 전경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자연 그대로의 멋이 살아 있었다.

오래 전부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쌓인 모래들이 만리장성처럼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그걸 그들은 ‘모래산’이라고 말했다. 모래산에는 풀들이 나 있었고 붉은 흙들과 흰 돌들이 언덕처럼 산처럼 그렇게 이루어져 있었다.

솔직히 말해 마두라 사람들이 난폭(Keras)하다는 말을 자와 사람들에게 하도 많이 들어 긴장을 풀지 않았다.

낯선 곳으로 무작정 가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안내 해 줄 사람을 찾았더니 마침 빠머까산 군내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연결 되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그 교장 선생님은 내일 전 교직원 회의가 있는데 한국 손님이 와서 중요한 일 때문에 바쁘니 회의를 글피로 미루자고 하셨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 그 분에게는 너무 고마웠다.


마을로 들어섰다. 집집마다 마당 한 모퉁이에 모래밭이 만들어져 있었고 골목길도 전부가 모래였다.

밟으면 서걱 서걱거리는 모래가 아니라 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의 감촉이 살며시 와 닿는 부드러운 모래. 게다가 빛깔도 누르스름했다.

초라한 집 담벼락을 끼고 도는데 멍석도 안 깔린 마당에 채로 뭔가를 걸려내는 할머니와 손자가 보였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뭔가를 채로 걸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더 가까이 가 보았다. 할머니는 손자와 놀아주면서 마당에 있는 모래의 찌꺼기들을 채로 걸러내는 일을 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놀면서 틈틈이 걸레로 방 닦는다는 생각을 떠 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모래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할머니가 채로 걸리는 모래가 너무 곱고 부드러워 바람에 날려가는 걸 쳐다보다가 뜨거운 햇살에 아지랑이가 아롱거리자 이젠 정신이 몽롱하기까지 했다. 그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나에게 신기한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여자와 젊은 남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리저리 찍어대자 마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더 신기한 존재였는지 우리 뒤를 우르르 몰려 다녔다. 


모래는 마당, 부엌, 심지어 안방까지 놓여 있었다. 거실이 사방으로 트여진 부자 집으로 들어갔다. 매트리스 침대 옆에 모래 침대를 놓아 둔 것은 무슨 이유인지, 그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모래는 조상대대로부터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었으며 자신은 출산을 모래위에서 셋이나 하였는데 산모에게나 아기에게 아무런 탈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질문을 했다.

“아기의 탯줄이나 온 몸에 모래가 묻잖아요?” 

“모래를 이불로 생각하면 되고 손으로 이렇게 툭툭 털면 다 없어지는데 뭘...??“

내가 주부이다가 보니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방송 일을 하면서 뻔히 아는 것도 질문을 할 때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실험하는 습관이 생겼다. 너무 다른 문화 차이에 혹여 내가 잘못하여 시청자들이 잘못된 문화를 기억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에서 질문을 할 때는 항상 실험도구를 사용한다. 그날도 마시라고 준 컵의 물을 모래 위에 부으면서

“ 아이들이 오줌을 싸면 어떻게 해요? “ 

“ 이렇게 손으로 퍼 담아 밖에 버리면 되지요.”

뚱뚱한 몸으로 앉았다가 일어서기도 귀찮을 것 같은데 삽으로 흙을 뜨듯이 두 손으로 젖은 모래를 담아 밖으로 들고 나가는 아주머니의 엉덩이가 참 예뻐 보였다.

    

 

나의 이런 모습이 이제 취재진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취재당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외국인을 처음 본다는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신기했을까?

아무래도 괜찮다. 그들의 삶을 나는 파고들어야 하니까, 한아이가 칭얼거리자 내가 가방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내 주었다. 녀석은 내가 이상한지 가만히 쳐다보더니 얼굴을 엄마에게 파묻으면서 아까보다 더 떼를 쓰자 젊은 엄마는 아이의 등에다가 모래를 쓱쓱 문질러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금방 사르르 잠이 들었다.

어느 마당에 할아버지는 신경통에 좋다며 모래를 무릎에 끼얹었고, 알레르기에 좋다며 팔 다리에 가지고 가서 문질렀다. 서늘한 오후만 되면 사람들은 마실 다니는 것처럼 어느 한 집에 모여 모래 마당에서 뒹굴고 있었다. 행사도 모래 위에서 하였다. 그들에게 이건 더 이상 모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을의 간이 식당/ 모래위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

 

신식으로 집을 짓지 않는 사람들 마당에는 조상대대로의 무덤이 있었고 그 옆에서 나무를 땔감으로 양은솥에 밥을 짓고 있었다.

허접한 호텔에서 주는 아침은 빵 반조각과 홍차 한잔이라서 먹지 않았고 근처에는 점심 먹을 곳이라고 없어 보인다. 배고플 때 밥 짓는 연기를 보면 더 허기가 지는 것은 왜일까?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파란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그 마을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 왔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발길을 옮기는데 목과 등줄기에서는 땀들이 스멀스멀 기어 내려가고 있다. 모래. 부드러운 모래. 이젠 허기가 지자 입자가 부드럽고 색깔가지 같은 모래가 미숫가루로 보인다. 저 시원한 바닷물에 한 그릇 타 후루룩 마셨으면 갈증이 좀 없어지련만......  

마을의 구멍가게에 들러 시원한 음료를 주문했는데 주인은 망치로 포대기를 툭 치더니 주먹 만 하게 깨어진 얼음 두 덩어리를 들고 와서 이가 빠진 컵에다 넣고 사이다를 따라 부어 주었다. 뜨끈뜨끈한 사이가가 톡 쏘면서 목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나는 잠시 여유를 가졌다.

마을 사람들이 교장 선생님께 우리가 누구냐며 말은 알아듣느냐고 마두라 사투리로 물어 보는 것 같다. 한 사람은 할 수 있고 한 사람은.... 그러자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건네려고 내게로 오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면서 밤새 연습한 말, 고맙다는 말을 “사깔랑꽁/ Sakallangkong" 이라고 했더니 마두라 말을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바땅바땅에서 맞이하던 노을은 그야말로 황금빛이었다.


빠머까산에는(Larangan Tokol, Kecamatan Tlanakan) 꺼지지 않은 불/(API TAK KUNJUNG PADAM )이라는 곳이 있다.

다음 날 빠마까산(Pamekasan)으로 이동 하였다. 그 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Api Kunjung Tak Prenah Padam)이 있다. 그 불의 전설은 이렇다. 젊은 청년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나무를 주워서 불을 피우려고 했다. 그런데 물고기가 자꾸 도망을 가니 못 가도록 땅을 파고 넣어 두려고 땅을 팠더니 불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그 때부터 불꽃이 피어 지금까지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말했다.

내가 도착한 오후에 하필인지, 덕분인지 소나기가 심하게 내렸다. 우기철의 소나기는 정말 양동이로 갖다 붓듯이 내리자 씨름판만한 곳에 여기저기 피어 있던 불꽃들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런데 물이 얇게 고인 곳에서 뽀글뽀글 수포가 피어올랐다. 그곳을 막대기로 파 보라고 청년에게 시켰다. 그리고 성냥불을 던지니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내 실험 방법이었지만 나름대로 검증하고 나서 그들의 전설을 떠 올렸다. 그들은 그 불꽃을 ‘지옥의 불’이라고도 하며 그 이유는 지옥에 가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지 않을까, 라고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늘 다짐한다고 교장선생님답게 말씀 해 주셨다.

 

불꽃이 피는 땅 속에는 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여기든 저기든 땅을 파면 파는 대로 가스가 피어올랐다. 그 곳은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었고 주위의 상인들은 아침마다 그 불에 밥을 짓고 커피를 끓여 팔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활활 타오르는 화력이 나는 아깝기만 했다.

밤이 되면 저 불꽃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고 고구마와 옥수수 한 포대기를 샀다. 마침 놀러 온 청년들을 모아 캠파이어를 하고 또 옥수수와 고구마를 마음대로 구워 먹으라고 했다. 기왕이면 손뼉도 치고 노래도 부르자며. 여러 군데의 불꽃과 청년들의 노래 열창 그리고 상인들의 도움으로 그날 밤은 푸짐하게 보냈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면서 오토바이 소리도 사라져 갔다.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던 마두라 청년들, 사실 촬영 잘 할 수 있어 오히려 고마운 건 나인데, 누가 마두라 사람들을 Keras 라고 하였던가, 묻고 싶다.

Pamekasan 있는 호텔은 그래도 좋았다. 야자수가 그늘 진 호텔 창문을 내다보며 나를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는 별과달이 졸고 있으니 방안에도 있는 별과달도 졸음이 퍼져 오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 : 한인뉴스/11월호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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