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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김 일상/SNS 취재 활동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와 두 곳의 동상

이부김 2024. 3. 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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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산모퉁이 돌고 돌아 내가 찾아간 곳은

대전 중구 어남동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입니다

 

단재 신채호 동상 비교

중구 어남동 생가지 (왼쪽)      서대전공원 (오른쪽)

 

 

입구에 들어서면 기와집이 있는데 단재홍보관인데

문 입구에는 방문객을 환영하듯이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어요.

 

 

홍보관 안에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는

대한협회회보 3, 1908년 6월 25일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라고 적혀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이곳에서 태어났고

8세까지 살다가 청주로 이주했고 그 후 성균관 박사가 되었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제의 강압에 맞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고취를 위한 언론 활동을 하였습니다.

 

http://www.instagram.com/sungweol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이와 같은 견해가

그의 역사 연구에도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단재 홍보관에는 연도별 신채호 선생의 흔적을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작은 모형으로까지 아주 깜찍하게 제작해 두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오직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1928년 일본 경찰에 잡혀 뤼순 감옥에서

1936년 2월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홍보관을 나와 생가지로 갑니다.

나무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산수유꽃이 피고

개울가에는 물 흐르는 봄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곳은 봄이면 온 사방이 벚꽃으로 꾸며진다고 합니다.

 

 

 

단채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는

1992년 대전광역시에서 정비와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했으며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생가의 지붕 모양은 초가지붕의 전 형적 형태인 우진각 지붕이며,

생가의 구조는 안채와 곳간채입니다.

안채는 안방, 건넌방, 부엌으로 총 5칸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 입구에는 ‘단재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안방에는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형상이 있으며

건넌방 앞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유년시절 형상이 있고

뜰 앞에는 단재 선생이 연 날리면서 쓴 시가 적혀 있습니다.

 

 

 

생가지를 나오면

광장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왼손에는 책을 펴 들고 오른손은 주먹을 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독립운동에 애쓰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언론이었던 선생은 항상 책을 가까이하였고

손에 든 책은 역사서 '동사강목‘이라고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를 나와서 

단재 신채효 선생의 동상이 있는 서대전공원으로 갔습니다.

왜냐고요?

 

서대전공원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 앞에는 비둘기들이 여유롭게 놀고 있습니다.

동상 하단에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 동상은 2019년 12월 서대전공원에 세워졌습니다.

 

서대전공원은 서대전역과 가깝고 대중교통이 편리합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틈새를 찾아 좀 자유롭게 사는 게 행복이지 휴식을

위해 서대전공원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을 보면서

경의도 표하고 산책도 하고 한 번쯤 들러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대전공원의 산책로 

메타세쿼이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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