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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김 일상/SNS 취재 활동

나의 세 친구

이부김 2014. 8. 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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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세 친구



                        글/ 김성월

1 란하늘 친구

나에게는 특별한 친구 세 사람이 있었다. 모두 다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아는 친구였다.

태어난 날도 나보다 먼저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넓은 인맥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상식과 지혜를 겸비한 지식인이었다. 마음 씀씀이도 넓고 따뜻하였다. 힘겨운 일이 있을 때 어두운 골방에 가서 두 손 모으고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외쳤다.

그 친구는 감성이 맑고 예민하여 시도 잘 썼다. 나를 위해 시도 써 주고 자기가 적은 시를 항상 나에게 먼저 보여 주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수화기 속에서 전해오는 친구의 목소리 파란 하늘을 너무 파랗다. 너와 함께 보고 싶다했던 말 그리고 일주일 후 그 친구는 너무 파랗다던 그 하늘로 떠나갔다. 친구는 떠나가면서 나에게 파란 하늘 남겨 주고 떠났다. 그 친구는 하늘나라에도 카카오 톡이 있을까, 카카오톡 프로필에 영정사진이 남겨 둔 채 파란 하늘로 떠나갔다.

 

2 란나비 친구


이 친구는 가을날 낙엽 태우듯이 파르르 하는 성격을 가졌다. 자존심이 강한 나에게 직선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촌각을 다투듯이 급한 내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설전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믿고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무슨 허물이라도 털어 놓을 수 있었던 그런 친구. 항상 나를 먼저 챙겨주었던 인정이 많은 친구였다.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친구였기도 한다.


내가 살던 동부 자와 섬의 말랑 시내가 보고 싶다며 아니지 내가 사는 환경이 어떤 환경인지 궁금하다며 왔었다.

서늘한 오후 친구와 함께 산책했다. 사탕수수 밭을 지날 무렵 바람이 뒤에서 불어 앞으로 사라지면서 사탕수수들을 전부 흔들어 놓았다. 사각사각 대구니들의 소리를 냈고 가을에 하늘에 잿빛을 띠고 흰색으로 피어난 사탕수수 꽃들이 하늘하늘 거렸다.

경남 화왕산 갈대밭이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이 보다 더 아름다울까, 사탕수수들이 토론하듯이 여기저기서 사각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걸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전달하려니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언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잠자리와 나비들이 날아다니다가 원뿔형 꽃 이삭위에 나비가 앉았다. ‘나비다!’ 하고 내가 잡으려는 시늉을 하자 친구는 공포를 조성하지 말고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놔두라면서 나를 말렸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비가 좋고 다시 태어나면 나비가 되어 세상을 날고 싶다고 말했다.

 

                                               사탕수수밭(말랑시의 공항 옆의)


바람이 또 한 차례 불었다. 사탕수수들이 우리의 대화를 방해라도 하고 싶은지 아까보다 더 시끄럽게 서걱거렸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봤을 때 사탕수수가 갈대인줄 알았다는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갈대와 억새를 멀리서 보면 구분이 힘들다. 우 리도 사람을 언뜻 만나보면 심성을 알기 어렵듯이 그러나 갈대는 늪에서 자라고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서 자라는걸 보면 구분하듯이 그 사람이 어떤 환경과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지를 보면 그나마 그에 대하여 알 수 있다며 조언을 해 주었다.

친구와 한참 걸었고 하늘은 물들고 있었다. 친구는 하늘을 보더니 말랑에서 보는 일몰은 한국에서 보는 일몰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내가 한마디 했다. 태양은 하나뿐 언제나 같은 모습인데 뭐가 다르겠나, 다만 지금 네 옆에 내가 있고 그리워하던 친구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겠니. 그렇게 말해 놓고 둘이 바라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 친구는 시와 드라마를 썼다. 노란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다던 그 친구, 무작정 떠나고 싶다던 그 친구는 작가답게 마지막까지 시를 써 놓고 나비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하늘을 쳐다볼 때 나는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난다. 하늘에서 잘 지내리라 믿는다 . 그 친구가 나를 만났던 날이 바로 광복절 오늘이다. 오늘은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가 쓴 책을 꺼내서 읽어야겠다.



3 낙엽 친구


나에게 그림자 같은 친구가 있었다. 그림자 같은 친구는 오래된 친구가 아니라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하는 정오에 만난 친구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정오 무렵에서 잠시 만난 친구다. 예수님이 우리가 힘들 때 업어주듯이 이 친구는 나를 업어 준 친구다. 내가 뾰족한 가시의 두리안처럼 성질을 부리면 그 친구는 반죽덩어리처럼 묵묵히 나의 화풀이를 다 받아들였다. 함께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해변을 거닐었고 내 발의 묻은 모래를 털어 주며 내 땀을 먼저 닦아주던 그런 자상한 친구였다.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면 나에게 햇살처럼 맑고 멋진 하루를 보내라고 메일 보냈고, 오지로 다닐 때 너는 덜렁대고 잘 넘어지고 다치니 다른 것보다 항상 길바닥의 돌멩이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친구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갔을 때 나는 가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아프고 쓰렸다. 길을 걸으면 온통 길바닥에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친구의 얼굴을 도저히 밟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팔랑거릴 때마다 친구가 말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영영 못 일어나면 어쩌나 하면서 나는 태산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가 만든 계란말이가 아주 맛있다고 칭찬했다. 주부가 계란말이 잘 만든다고 칭찬 듣는 일이 우습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다. 꽃보다 남자에서 홍준표는 금잔디가 만들어 준 계란말이의 맛을 깊이 알듯이 그 친구도 내가 만들어 준 계란말이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을이 되면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낙엽이 되듯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친구도 내게서 떨어져나가 낙엽이 되었다. 한때는 곱게 물든 단풍잎 내가 따서 책갈피에 끼워 넣고 책을 펼 때마다 보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름답고 좋은 친구였는데 이제는 나무를 떠나 낙엽이 되어 버렸다. 단풍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떨어진 햇살이 받쳐 들고 있을 때가 제일 빛난다. 나무는 새 잎을 피울 수 있지만 나무에게서 떨어진 낙엽은 다시 나뭇가지에 매달리지 못한다.


낙엽은 가을날 공원벤치에서 연인들이 나누는 속삭임이나 들어야 한다. 아니면 꿈 많은 여중생이 지나가다가 낙엽을 주워 줄까, 혹여 환경미화원이 그 낙엽을 쓸어 모아 태워버릴까 노심초사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쓸쓸한 가을날 뒷골목 웅크리고 앉아 아무도 반겨주지 않을 칼바람의 계절 겨울을 맞게 된다.

그림자가 키보다 길어지는 어스름한 저녁, 텅 빈 거리 무뚝뚝하게 서 있는 가로수 아래 낙엽 하나가 바람에 돌돌 굴러가고 있다가지에 매달려 햇살을 받을 때 그토록 영롱하던 단풍잎이 낙엽이 되면서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에 빛바랜 이 낙엽처럼 혼자 쓸쓸히 방황하고 있진 않을까.


                                              문학과 사람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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