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무슨 일 있어요?“
글/김성월
처음 인도네시아로 왔을 때가 7월 7일이었다. 쾌청하고 맑은 하늘은 신성하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했다. 몇 달이 지나자, 날마다 오후 1시가 되면 멀쩡하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아니지,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양동이로 쏟아 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말랑시청 전경
동부 자바에 위치한 말랑 시는 산간지역도시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맑고 좋은 휴양지다. 외곽지역에는 바다이고 높은 산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이며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다. 아무튼 소낙비는 항상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였다.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거리고 천둥도 우르르 쾅쾅 유리창 깨어지듯 하늘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는 번개에 컴퓨터 한 대가 망가진 전 있었다. 컴퓨터가 갑자가 안 켜져 기술자를 불렀더니 머더보드에 붙어 있던 게 손상되었다며 쌀알만 한 걸 보여줬다 그러면서 번개 맞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날, 전기제품이 고장 난 집은 우리 집 주위에 여러 집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천둥과 번개만 치면 가정부들은 전기 콘센트를 뽑는다고 분주하다.
비는 여러모로 변신하여 내렸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지 않으면 바람과 동행했다. 굵은 빗줄기가 바람에 일렁거리면서 내리다 어설프게 놓여 진 기왓장 속으로 스며들기 일쑤였다. 비 오는 날은 한마디로 난리였다. 부엌에 빗물이 가득 고이기도 하였다. 거실 벽으로 그림이나 그리듯이 줄줄이 타고 흘러내렸다. 벽타고 흐르는 곳에는 마른 걸레를 두고 방안 천장에서 떨어지는 건 양동이를 받쳐 두었다. 비는 말랑 시가지와 마을, 집집마다 집 안팎으로 내렸다. 어디 한 곳도 피할 수 없이 비에 젖어야한 했다. 그런 날이면 내 마음속에도 비가 내렸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집 안의 바닥이 타일이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사를 여러 번 했었다. 말랑 시에는 2010년도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없었다. 그러니 이사를 해도 이사하는 집마다 그랬다. 하긴 비가 오는 날에 빗물이 새는 곳은 어디 우리 집뿐이었겠나 새집도 헌집도 거의 다 비가 새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그저 집에서 비 오는 것 감상하면서 비 그치기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이 확 불어 주면 에스자로 굽어지는 빗줄기들에 눈길이 매료되고 약간 들뜬 느낌으로 점점 매료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감성과 영감을 우려내 주기도 했다.
연말이 되면 한국에는 함박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눈싸움도 하고 나 잡아봐라 하고 난리들이었다. 하지만 열대나라 산간지역 말랑에 사는 우리들은 소낙비 때문에 성탄절 예배하러 교회 가는 게 힘이 들 지경이었다. 오죽하였으면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면 목사님 기도제목이 ‘하나님 오늘만이라도 비가 적게 내리게 하여 성도들이 성탄예배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이었을까.
비는 천둥과 번개 그리고 바람을 동반하면서 아울러 수시로 정전도 되었다. 낮에 정전되는 건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이 녹는 일이니 꺼내 먹으면서 그나마 참을 수 있지만 밤에 정전되는 일이 문제다. 그것도 초저녁에 말이다.
어느 날이었던가.
저녁 지을 때 가는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저녁 식사한창일 때 정전이 됐다. 숟가락이 입으로 가는 건 습관이 돼서 잘하는데 반찬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상시에도 눈감고 젓가락질 훈련했을 터인데. 준비해 둔 마지막 몽당촛불로 식사는 그런대로 마무리 했다.
손전등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침대로 가기위해 얼른 핸드폰을 켰다. 눈을 감아도 깜깜하고 눈을 떠도 깜깜하고 세상이 조용했다. 참 희한한 세상이었다.
파푸아 갔을 때 일이다. 원시인 마을 입구 초막집안에서 잠잘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시골에서 느끼는 어둠은 사방에서 밀려와 숨 막히도록 압박하고 꼼짝 못하게 나의 전신을 묶어 버리는 것 같았다. 깜깜하고 조용하다는 건 어둠의 옷을 겹겹이 껴입은 듯 갑갑함이 가슴까지 치밀어 올라와 목을 조여 오는 어둠공포증, 또 그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명상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초저녁인데 잠자려고 하니 잠도 오지 않고, 그렇다고 밤에 촛불 켜 놓고 책 읽자니 그렇잖아도 노안으로 침침해
가는 시력 때문에 낮에 돋보기를 새로 맞추었는데 밤이라 글자가 잘 안 보이고 도대체 할 일이 없다.
창문이 커다란 방 침대에서 나는 정전에도 상관이 없는 핸드폰을 켜 저장된 음악파일을 찾았다. 가장 부르기 쉬운 노래를 선곡했다. 가수와 같이 큰소리로 불렀다. 어둠이여 깨어져라 밟은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실 때 빛을 만드셨던 걸 상상하면서 힘을 다하여 1절 부르고 후렴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때 빛이 한 가닥 비춰졌다. 아 그 신비함, 이어서 벨이 울렸다. 가정부가 대문으로 나갔다. 나는 방안에서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골목길을 순찰하던 경비가 하는 말
“ 집에 무슨 일 있어요?”
문학과 사람들 2014 10
'이부김 일상 > SNS 취재 활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름이 내려 앉은 새벽 (0) | 2014.10.09 |
---|---|
발리 워터붐에서 (0) | 2014.09.10 |
두리안 냄새를 싫어하던 프랑스 여인 (0) | 2014.08.17 |
나의 세 친구 (0) | 2014.08.16 |
발리 꽃게전문 맛집- 바다위에서 먹다 (0) | 201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