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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김 일상/SNS 취재 활동

스님(비구니)과의 동행

이부김 2014. 2.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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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비구니)과의 동행

설날 아침 내 잠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받으니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인터넷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 온 어느 스님(비구니)이었다. 스님(비구니)은 족자카르타에서 버스를 타고 자카르타로 오고 있는 중인데 비행기 표가 구해지는 대로 방콕으로 갈 계획이라 했다.

며칠 전에 분명히 일주일 후에 자카르타로 오겠다고 하였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스님이 타고 있는 버스 기사를 바꿔달라고 해서 통화를 하며 상황을 파악하니 이미 자카르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06시가 조금 넘었다. 아니 엊그제만 해도 일주일 후 자카르타에 하루 이틀정도 머물다가 방콕으로 갈 계획이라더니 예고도 없이 설날 새벽에 이렇게 오다니, 만약에 내가 자카르타에 없었더라면 어찌할 뻔했을까? 어찌되었던 나는 전화를 받고 세수를 하고 겉옷 하나를 걸치고 버스기사가 일러 준 그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자카르타(jakarta)시가지


스님은 내가 인터넷에서 만난 분으로 인도와 베트남, 태국을 배낭여행을 했으며 나의 블로그에서 글을 보고 인도네시아에 족자카르타의 최대사원인 보로부두르사원을 여행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 당신 조카가 사다준 내가 쓴 책인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지!’를 읽고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싶다고 작년부터 내게 메일을 보내왔으며 지난달에도 메일을 보낸 분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을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내가 인도네시아 오지를 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용기 있고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한 분이다.


설날 아침이라 텅 빈 도로였다. 나도 오지로 다녀보니 가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던데 스님도 낯선 타국에서 얼마나 도움이 필요하였을까, 그러기에 낯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겠지. 내 책을 읽었다는 그 말 한 마디에 한 사람의 독자를 대하는 저자의 마음으로 나는 이러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중 아까 통화한 버스기사였는데 버스는 이미 터미널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콧수염이 달린 남자 옆에 승복을 입은 스님(비구니)이 보였다. TV에서만 보던 승복차림의 여인, 이국 땅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스님을 차에 태워 우리 집 근처 호텔로 모셔왔다. 그때가 아침 9시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스님의 모습은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와서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호텔 직원은 이믈렉(구정)때라서 간밤에 손님이 많아 빈 객실이 없으니 당장 입실은 불가능하다며 정오가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보로부두르사원(Candi Borobudur)


식당에 가고 싶지만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식당도 없었다. 호텔 옆 맥도널드로 가서 간단한 요기로 아침을 해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스님은 보로부두르를 2시간 만에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의 여행 스케줄은 무리였다고 한다. 하긴 그 넓은 보로부두르를 2시간 만에 다녔다면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갑자기 스케줄을 취소하고 출국을 위해 자카르타로 올라 온 것이라 설명하였다. 그 외 외국여행에서 늘 동반되는 언어의 소통으로 문제에 부딪혔던 가슴 답답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까지 가까워 둘이 걸었다. 스님은 마음씨가 참 고운 분이었다. 내 딸아이가 맹장염 수술하고 어제 퇴원했다고 하니 포도를 먹으면 수술회복이 빠르다며 딸아이에게 줄 포도를 사러 과일가게로 가자고 나에게 자꾸 졸랐다. 나는 그 말 한마디가 설날의 덕담으로 들렸다. 그리고 내 마음은 고향 언니를 만난 것처럼 즐거웠다.

 

호텔에 도착하였다. 손님들이 이제 막 체크아웃하고 있어 체크인을 해도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입실을 하려면 아직도 두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호텔의 좁은 로비에 앉아 기다리면서 나는 스님에게 출국할 비행기 티켓을 보여 달라고 했다. 스님은 편도로 입국하였기 때문에 출국 티켓이 없으며 사야 한다고 했다. 입국 티켓을 가격으로 봤을 때 방콕에서 분명히 왕복비용을 지불한 게 맞는데 왜 그럴까. 나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각 호텔 창밖 마당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두 세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다. 오늘은 그렇다 치고 내일은 어떻게 하지? 나는 자카르타에 한국인 절이 있는데 며칠 공짜로 묵을 수도 있고 그곳으로 가보지 않겠냐고 스님께 제의를 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받는 것을 한국 사람과 연결시켜 달라고 했다. 연결이 되자 스님께 전화를 건넸다. 한곳은 통화가 되었지만 비구스님이 계시기 때문에 비구니스님이 함께 머물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한곳으로 연락하여 그곳으로 묻고 물어 찾아갔다.


난생처음 스님(비구니)을 만나 함께 아침을 같이 먹고 절로 모셨다. 그 곳은 설날 아침이라 불자들이 모여 불공도 드리고 떡국도 먹고 분주한 구정 분위기였다. 이층에서 스님(비구)이 내려 와 내가 모시고 간 스님과 마주 앉아 서로에게 큰절을 했다. 스님들이 절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보았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절을 마친 후 스님(비구)은 나에게 합장을 한 후 공양은 하셨어요?” 한다.

공양이 뭐지 심청전에 보면 공양미 삼백 섬이라고 했는데 나보고 뭘 하라는 걸까. 나는 불교용어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모르면 그 자리에서 물어야지.

네 공양이 뭐에요?”

식사는 하셨는지요? 설날이라 떡국을 끓여놨습니다.”

! , 스님(비구니를 가리키며)은 아직 아침식사를 못하셨어요.

저는 먹었습니다.”

스님(비구니)이 이층으로 올라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아주머니들에게 이분이 머물 호텔과 출국할 비행기 티켓 예약을 좀 도와 주길 부탁했다. 그런데 흔쾌한 대답보다는 시큰둥하고 잘 모르겠다는                   자카르타시내 분수대(JAKARTA)                                          식의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러던 중에 이층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려오더니 비구니가 절에 머물지 않고 나를 따라 호텔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나는 두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저는 내일 교회도 가야하고, 제가 스님을 도와 절로 모셔왔으면 그래도 절에서 도와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풍채가 넉넉한 아주머니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네 염려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절을 나오는 내 마음은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를 파출소로 데려다 준 것처럼 아주 편안했다.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사원(Candi Borobudur)


집에 들어오니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혼자 왔어? 스님과 함께 온다고 하기에 난 함께 올 줄 알았지

하긴 며칠 전에 내가 딸아이에게 스님을 만나면 허심탄화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우리 집에서 하룻밤

정도 지낼까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승복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니, 내 마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만약에 그분이 승복 만 입지 않았었다면, 우리 집으로 모셔 와서

솜씨 없는 떡국이라도 대접하였을지 모른다. 그분이 무사히 한국까지 잘 돌아가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며칠 전 그 스님(비구니)께서 연락을 주셨다. 이틀 동안 마음씨 좋은 불자의 집에서 머물다가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하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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