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숲으로 옮겨 사는 족장
(까서뿌한족-2)
“ 까서뿌한족이 사는 찝따글라르(ciptagelar)에 간다구요? ”
“ 네 ”
“ 지금 출발하면 그곳은 산골이라 가다가 무서운(?) 것들을 만날 수 있어요.“
“ 무서운 것이라면 Hantu ? ”
“ Hantu는 아니고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어요. ”
“ 위험한 일? ”
햇살이 조금 기운 하오쯤 보고르에서 만난 NGO 사람이 말했다. 그가 보고르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길 권유하자 빨리 가보고 싶던 나의 호기심은 종이 구겨지듯 구겨지고 갑자기 목숨이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호텔을 찾으러 가자고 말하면서 속으로 말했다. 작년 전까지만 해도 위험한 걸 경험해보는 것도 스릴 있고 괜찮다며 우기면서 갔을 텐데 이제는 모르면 몰라도 알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출발하여 수십 개 마을이 지났을 때 거목으로 이루어진 숲이 보였다. 그곳에서부터는 돌덩이로 만든 스무고개길이며 일반 자동차로 갈 수 없다기에 미리 예약해둔 지프를 타고 갔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 돌덩이가 박힌 길로 가는 지프는 계속 덜컹거렸다. 엉덩이가 의자에 놓여있는 시간보다 덜컹거려 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가는 도중에 젊은 부부가 벼를 수확하여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와인들처럼 볏단 아래쪽을 베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에 족집게를 끼고 벼이삭만 싹둑 잘랐다. 그렇게 모아둔 누런 벼이삭을 보니 금싸라기가 달린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에게 이 정도 추수면 가족들 양식으로 넉넉한지 물었더니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다는 그 말에 아주머니와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그렇게 달려 스무고개 중 열 고개를 왔을까, 운전기사는 차를 세우더니 찝따글라에 사는 노인이라며 태우자고 했다. 노인은 야자 5통을 들고 지프에 올라탔다. 지프 뒷좌석 내 옆에 앉으면서 들고 있던 야자 5통을 발 앞에 내려놓는데 보니 맨발이었다. 나무껍질처럼 거친 발등이며 손가락처럼 벌어진 발가락을 보면서 먼 이곳까지 왜 왔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이 마을로 시집온 누이동생 집 부엌을 고쳐주러 왔다고 했다. 누이동생 손자가 다음 달에 결혼하는데 큰일을 치르기에 부엌이 너무 좁아 넓게 고쳐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노인의 진한 구릿빛 얼굴에는 불편함이 없도록 부엌을 잘 수리해주었다는 듯이 아주 흐뭇하다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나는 또 말을 걸었다.
“ 찝따글라르에서 이곳으로 오실 때 뭐 타고 오셨어요?”
“ 걸어서”
나는 노인의 맨발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 걸어서 몇 시간 걸려요?”
“ 새벽에 출발해서 낮에 도착했으니 반나절 쯤”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은 것도 아니고 산달도 아닌 맨발로 반나절을 걸었다는 걸 노인은 찡그림 하나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찝따글라르(ciptagelar)로 들어섰을 때 날이 어둑어둑 해졌다. 하지만 NGO 사람이 말하던 그 무서운 것들을 서운하게도 길에서 만나지는 못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꾸역꾸역 연기가 날 때 나는 찝따글라르에 도착하였다. 싸늘한 저녁바람이 내가 걸터앉은 족장 집 마룻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여기가 까서뿌한족 제 9대 족장 아바 우기(Abah Ugi)가 사는 곳 까서뿌한족들은 모두 타잔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조상대대로 숲에서 숲으로 더 울창한 숲속으로 터전을 옮겼고 지금도 이런 숲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겠지. 이런 숲속에 사람이 산다는 것도 신기하고 이런 곳을 취재하겠다고 찾아오는 나도 신기하고 이런 곳에서 핸드폰에 WI-FI까지 연결되는 것도 신기했다.
족장 집은 높은 곳이라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마당에 내려와 있었다. 마당에 서성이자 족장비서가 나에게 부엌으로 가자고 했다.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모였고 식사 전 커피를 나눠마셨다. 아침식사는 족장부부와 함께 부엌에서 먹었다. 부엌에서 식사를 하는 건 바깥이 춥고 밥 짓느라고 불 피우는 아궁이가 있어 부엌이 따뜻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반찬이 자연산이었다. 논에서 자라는 다슬기와 버섯과 나물과 마당에서 놀던 암탉의 계란 등 푸짐하게 차려졌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는 생강과 붉은 설탕을 넣고 푹 끓인 생강차였다. 우리는 생강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생강차 한 모금 꿀꺽 마시자 족장 아바 우기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더니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검은 두건을 두르고 콧수염과 긴 턱수염 때문에 옷차림새로는 꽤 잘 어울리는 약간 근엄해 보이는 족장의 모습이었다.
까서뿌한족은 왜 옮기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바우기(Abah Ugi)는 어느 날 갑자기 조상들로부터 옮겨가라는 명령을 받으면 지금까지 조상들이 그랬듯이 자신도 미련 없이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령을 어떻게 받는지 언제쯤 내려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비록 조상대대로 여러 번 터전을 옮겼지만 자신이 족장으로 있는 한 찝따글라르에서 터전 옮기는 일이 없으면 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했다. 족장 아바우기에 속하여 있는 마을 110 desa 314 kampung이며 약 28.000명이나 된다. 그렇다면 터전을 옮길 때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옮기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족장의 친척들인 일곱 가족만 옮긴다. 왜라고 물으니 어느 깜뿡을 가더라도 모두 나의 부족이기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까서뿌한족은 원래 16세기경 반떤(Banten)왕궁의 빠자자란 왕과 전쟁 후 숲으로 도망 와서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산을 개간하여 화전민으로 살면서 순환농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뚬빵사리(Tumpangsari)”라고 한다. 그들이 산비탈에 땅을 일구고 밭농사를 짓고 살아가는데 그런 곳을 가라빤(Garapan)이라 한다. 미래를 위해 두는 보전하는 숲, 다시 말하면 조상들이 후손이게 맡겨둔 숲을 띠띱빤(Titipan)이라고 부른다. 숲 중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숲이 있다., 까서뿌한족장이 지금 찝따글라르에 살고 있지만 조상이 터전을 옮기라는 명령을 하면 당장에라도 옮길 숲까지 준비해 두고 있다. 그 숲은 아위산(Awisan)이라고 한다.
숲에서 더 깊은 숲속으로 옮겨 살아가는 그들은 나무 심어 가꾸는 걸 상당히 소중한 일이라 여겼다. 그들이 심은 나무를 필요에 의해 베기도 하지만 지정된 곳의 나무들은 절대로 베서는 안 되며 나무를 베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당해도 족장이 눈감아 준다는 무서운 관습법이 적용된다. 그들은 숲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기에 묘목에서 식목까지 어릴 적부터 배우며 자랐다. 족장 아바우기는 세 살배기 아들에게 나무 심는 법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숲을 떠나서 살아 본적도 없고 살아 갈수도 없기에 나무 심는 법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어릴 적부터 배워야 한다는 족장 아바우기가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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