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달래려다 만든 방송국
까서뿌한족-마지막편
96 - 97년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 라는 노래가 인기몰이를 했다. 정말로 공주는 외로운 걸까? 그렇다면 외롭다면 얼마나 외로운 걸까? 여기 공주 못지않게 외로운 왕자가 있다. 그가 바로 인도네시아 서부자바 첩첩산중에 살고 있는 아바 까서뿌한족장이다. 아바족장은 아주 젊다. 거느리는 부족수가 많고 족장을 만나기 위해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문턱이 닳도록 분주하지만 그는 친구가 없다. 그리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내가 아침 일찍 족장아바를 만나러 간다고 서둘렀더니 어떤 분이 그랬다.
“아침 일찍 가도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그 족장은 오후에 일어나기 때문에 오후가 되어야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나는 미리 출발하여 족장 집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정오가 되었으나 소문대로 족장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밤에는 뭐하는 걸까?
기다림이 지루하여 동네를 둘러보았다. 아주머니 수십여 명들이 벼를 길쭉한 절구통에 넣고 쿵덕쿵덕 찧는 소리가 요란하면서도 리듬이 잘 맞았다. <"FSPAN>절구통 옆에는 아주머니 두세 명이 키로 까불리자 보드라운 겨는 풀풀 날아다니고 쌀만 골라졌다. 그야말로 분주한 산골정미소였다. 예전에 디딜방아 찧던 엄마와 숙모가 생각났다. 그때는 해보고 싶어도 내가 어려서 못해보았기에 지금 해보고 싶었다. 아주머니들에게 힘들지 않는지 나도 해보고 싶다며 홍두깨를 받아 들었다. 아주머니는 벼를 한 뭉치 넣어 주었고 찧었다. 재미있었지만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이마에는 땀도 났다. 키로 까불리고 있어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더니 숨이 가빴다. 다음 달 마을에 있을 혼인잔치에 사용할 쌀인데 떡도 만들 것이라고 젊은 아주머니는 ‘떡’이라는 말을 할 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아주 맛있게 말했다. 잔치가 있다며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여 벼를 쌀로 만드는 작업은 이런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이다, 산골마을의 풍경을 한 바퀴 돌고 방아도 찧고 왔는데도 아직 안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커피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족장이 일어났으니 만날 수 있다고 비서가 말했다.
족장아바는 이십대 초반이지만 긴 턱수염과 옷차림새가 중후해 보였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족장이 매일 새벽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나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보건위생학과 졸업하고 족장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를 이어 족장이 되었다. 젊은데 친구들도 못 만나고 산골에 있으니 외롭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제품 수리나 만드는 것이 취미로 하다 라디오방송국도 TV방송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산골에 사는 부족들이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산속에서 핸드폰이 울려 받으니 괜히 합격소식 받는 것처럼 마음이 들뜨고 즐거웠다. 전기도 없는 이 마을에 라디오, TV방송국까지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족장비서이자 찝따글라르방송국 책임자인 요요에게 말했다.
“ 방송국 구경시켜 주세요.“
“ 네 따라오세요.”
이층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한 평도 안 되는 반 평짜리 공간이었다. 허름한 앉은뱅이 탁자 앞에 쪼그리고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방송 장비는 탁자위에 노트북 한 대와 소형캠코더 한 대 그리고 자동차용 중고 TV 모니터 하나가 전부였다. 자동차용 모니터는 화면이 흐리고 잘 나오지 않아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었다. 어떻게 방향이 잘 맞으면 화면이 보였다. 요요는 너무 미비한 장비들이라 부끄럽다고 했지만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족장의 재주에 박수를 쳐주었다. 라디오는 2004년에 부족들이 청취하기 시작했고 TV는 2008년도부터 시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TV는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전파되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4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이 중요한 일이 있어 찝다글라르에 왔었다. 그런데 와서 생각해 보니 마굿간에 집에 있는 염소들에게 풀을 주지 않고 왔었다는 것이다. 걸어서 왔는데 돌아 갈 수도 없고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방송국책임자가 그곳에서도 TV를 시청하는지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바 시청한다고 하였고 방송국책임자는 그 아저씨를 방송 모니터에 앉게 하였다. 아저씨는 “ 아무개야 아버지가 염소 풀 주는 걸 잊어버리고 왔으니 어서 풀을 주도록 해라”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건 생방송이었다. 그때 TV를 시청했던 그 마을 주민들이 그 집으로 달려가서 염소에게 풀을 주었고 그 아저씨는 이틀 동안 볼일을 잘 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행사가 있으면 핸드폰이나 캠코더로 촬영하여 찝따글라르 TV로 방송한다.
찝따글라르에는 모든 것이 다 자급자족이다. 수도가 없다. 산꼭대기에서 흐르는 물에 집집마다 호수를 묻어 집까지 연결하여 생활수로 사용한다. 반찬으로 소와 염소 닭을 키우며 논고동과 논에서 키운 물고기들과 여러 가지 채소들을 재배하여 먹는다. 손님들이 오면 먼 길 왔다고 잠자리와 식사를 공짜로 대접해 주었다. 식후 재배한 생강을 개미설탕과 푹 끓여 후식으로 내놓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사용하며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는 한 달에 전기세 0.2$을 지불한다. 산을 깎아서 만든 산길은 비가 오면 미끄러워 다닐 수 없기에 돌로 메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닦았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서 목욕할 때 나무로 물을 데워 목욕했다.
젊은 족장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전기로 이것저것 만들다보니 만들었다는 방송국. 사람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 덕분에 일하면서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어 좋고, 밤에는 TV 시청하면서 자신이 TV에 나왔다면 너무 신기해하며 행복해 했다. 마을의 일이라면 TV에 더 많이 나오려고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봐도 마을소식을 알리는 아나운서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방송국 모니터가 너무 어설펐다. 모든 장비가 중고 제품들로 된 찝다글라르방송국, 장비가 좋지 않다고 좋은 소식 못 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상에 약간 문제가 있을 뿐이지. 찝따글라르의 방송 인도네시아 공중파로 채널로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촬영마치고 돌아오면서 자그마한 텔레비전을 하나를 방송국 모니터로 사용해달라며 선물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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