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에덴동산
(따나 또라자족 - 1)
최초의 연인 아담과 하와가 살았다던 에덴동산, 비록 아담과 하와는 없었지만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계단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 인도네시아에도 있다. 그곳이 바로 술라웨시 섬 남부의 따나 또라자 지역이며 “인도네시아 에덴동산(Pegunungan Eden Indonesia)”이라 불린다. 따나 또라자(Tana Toraja) 어원을 살펴보면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라자족을 떠올리면 금방 연상되는 것이 집모양이 특이한 전통가옥 통꼬난, 그 다음 장례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물소이다.
또라자지역은 원래 정령신앙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1900년대 네덜란드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았다. 기독교신앙을 가지되 그들의 전통장례의식은 그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또라자족들의 신분은 또라자, 평민, 노예 세 계급으로 나눠지며 또라자가 아니면 거대한 장례식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당장 장례를 하지 않고 이무가잇(향신료/포르말린)를 사용하여 집안에 시체를 두고 함께 지내다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12월을 성스러운 달로 여겨 12월과 1월에 장례의식을 행한다. 하지만 도심지로 나와 생활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현대생활에 맞춰서 자녀들의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고향으로 갈 수 있는 7월에도 장례식을 많이 한다.
얼마 전 또라자족이 장례식에 다녀왔다. 아니다 장례식에 다녀온 것이 아니고 그곳에 갔더니 한 마을에서 장례의식을 하고 있었다. 장례의식을 취재할 수 있었다는 건 나에게 대단한 행운이었다. 며칠 동안 또라자족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관습법에 대하여 나는 “왜?”라고 많이 묻기도 했고 “아~!”라는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걸 경험하고 배웠다.
자, 그럼 그 유명하다는 또라자족의 장례의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들의 장례의식(Upacara Adat Kematian)을 또라자 언어로는 람부솔로(Rambusolo)라고 한다. 람부는 ‘연기’ 솔로는 ‘해가 지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해가 떨어지니 슬프다는 뜻으로 장례는 항상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부터 시작한다. 그런 반면 결혼식이나 경사스러운 일은 람부뚜까(Rambutuka)라 하며 해가 떠오르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행사를 시작한다.
또라자족들은 아무리 사랑했던 가족이라도 죽자마자 하루를 넘기지 않고 묻어버리는 내 이웃의 사는 자와 이슬람교 인들과는 아주 다른 장례풍습을 가진 부족들이었다. 람부솔로는 마을(집안)마다 종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참석했던 그 집안의 장례의식은 세 개의 관이 7일 동안 똥꼬난(Tongkonan)이 있는 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통꼬난을 가진 집안은 장례식 때 최소한 물소 24마리 이상은 잡아야 하는 게 그들의 관습법이다. 몇 해 전 플로레스 섬 베나(Bena)에 갔을 때 집들이 의식으로 물소 7마리와 돼지를 약60마리 잡는 걸 보았다.
이번 토라자 장례식에는 물소를 56마리 그 외에 돼지, 말, 사슴도 한 마리 잡았다. 나무에 묶여 있는 사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는 걸 나는 보았다. 세상에는 많은 기술자가 있지만 백정들의 기술도 참 대단하였다. 그들은 소를 닭 잡듯이 쉽게 잡았다. 소의 오른쪽 앞 발목을 줄로 묶고 백정이 칼로 식도를 잘라버리니 커다란 몸집의 소는 한마디 항의도 못하고 꺼꾸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소들은 열 마리, 스물 마리 오십 마리씩 무더기로 죽어갔다.
아버지가 소가죽 벗기고 있는데 남자꼬마가 옆에서 칭얼거리자 함께 가죽 벗기던 아저씨가 물소발목 하나를 뚝 잘라 던져 주었다. 남자꼬마는 그걸 노끈에 매달아 자동차처럼 이리저리 핏물이 흥건한 마당으로 끌고 다녔다. 그걸 보자, 내 유년 시절 시골마을에 잔치가 있을 때 돼지를 잡으면 돼지오줌보에 바람 넣어 축구하던 동네 남자아이들이 생각나서 물소발목 끌로 노는 아이를 한참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당에 상여 세 개가 나란히 놓인 후 발인예배가 시작되었다. 또라자족들은 성경말씀은 인도네시아어로 읽고 찬송은 또라자어로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신자들이지만 동시에 조상을 신성시하며 섬기는 것 같았다. 살아생전의 모습과 똑같은 크기로 조각한 따우따우(tau-tau) 동상에 옷을 입히고 머리카락과 액세서리를 치장하여 놓은 걸 봐도 그렇고, 방부제를 사용하여 죽은 자를 집안에 고이 모셔두고 함께 생활하는 것도 그러했다. 게다가 마당 한 구석에는 대나무들이 자랐는데 신성한 그곳에는 후손들을 돌봐주는 조상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이 정도에서 호기심 많은 내가 그냥 있을 수 없어 솔직하게 물었다.
“ 기독교신자들이죠? 십계명 제일은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조상을 섬기세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장례의식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뿐입니다.”
통꼬난이 있는 장소에서 발인예배를 마치고 기독교 상여는 곧바로 떠따누로 가지만 가톨릭 상여는 성당에 머물렀다가 떠따누로 간다. 상여가 통꼬난을 떠나 떠따누로 가면서 재미난 광경들이 있었다. 상여를 헹가래 치듯이 높이 쳐들었다가 낮추고 노래부르는 걸 보고 있자니 발리 힌두인들이 녀삐 때 메고 다니던 오고오고(ogo-ogo)가 같기도 했다. 오고오고는 험상궂은 형상을 만들어 악귀라며 불에 태운다. 불에 태우러 갈 때 함성도 지르고 오고오고를 빙빙 세 번이나 돌려가면서 길을 떠난다. 이유는 악귀가 길을 잃어 되돌아오는 길을 못 찾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토라자족들이 상여를 흔들며 가는 이유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떨쳐 버리기 위함이요. 무거운 상여 멘 상여꾼들에게 힘을 더하기 위함이요 그리고 오늘 떠나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하면 기뻐서 함성을 지르는 것이라고 한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빗길이다. 상여를 저렇게 흔들리면 관속에 누운 고인이 어지럽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무거운 상여를 들고 흥겨운 마음으로 고인을 배웅해주는 젊은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통꼬난을 떠난 상여는 빠따너로 들어갔다. 빠따너는 집처럼 지은 현대식 집안무덤이다. 그 안에는 이미 조상들의 관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새로운 관들도 그 위에 놓아두었다. 그때 또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미처 우산을 준비 못한 나는 밭둑에 심어진 커다란 토란잎을 하나 뜯었다. 빗물을 토란잎으로 받쳐 들고 상여를 바라보니 고인은 흔들거리는 상여를 탄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흔들어주는 요람에서 무덤으로 그리고 내세로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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