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

여행은 일이고 일은 여행이다

TV 취재.촬영/취재 현장 이야기

인도네시아 로미오 쥴리엣

이부김 2012. 4. 4. 10:53
728x90
반응형

 

로미오와 줄리엣

따나-또라자-2

 

 

여행은 어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방법이다. 나는 인도네시아 여러 곳을 여행(??) 다니다보니 각양각색,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잠시 가이드를 만나더라도 제대로 된 안내를 받아 즐거운 여행이었을 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안내로 고행의 길을 수행했을 때도 적지 않다.

 

 

 

 

 

따나 또라자에 갔을 때 일이다. 그들은 시체를 보관하는 무덤의 종류도 다양했고 장소마다 가이드 해주는 마을 사람들도 다양했다.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이가나지 않은 아기들이 죽으면 살아있는 쩜뻐다나무에 구멍을 파고 무덤으로 사용했다. 쩜뻐다나무는 귀하며 오직 한 그루뿐이며 아기들 무덤을 ‘Baby Grave’라고 한다. 거목에 무덤을 만드는 이유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아기들이 나무와 함께 영원히 살아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높고 가파른 절벽에 시체를 둔 곳이 있다. 구멍에 여러 개의 시신을 넣어두는 가족묘이다. 밧줄을 타고 올라가도 힘들 것 같은 절벽에 구멍을 파 무덤으로 만들어 놓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고인이 사용하던 보물을 도둑들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절벽에 높이 더 높이 만들어 둔다고 한다. 절벽을 올려다보면 무덤 옆에 수많은 목각인형들이 손을 들고 있다. 인형들이 손을 들고 있는데 오른 손은 인간의 손으로 축복을 비는 손이며 왼손은 신의 손으로 축복을 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서 있는 나무무덤, 가파른 절벽무덤 그 다음은 동굴무덤이다. 동굴 입구에 도착하니 밝은 대낮에 여러 명의 남자들이 등불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남자친구들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인상 좋고 똑똑한 사람이 가이드 해 주길 바라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청년들 중에 하필 인상은 무표정한 남자가 다가왔다. 머리는 태양빛이 반짝거릴 정도로 빡빡머리와 다리를 절뚝거렸다. 우리 가까이 다가오더니 담배를 한 모금 빼어 물고 연기를 후~ 하고 공중으로 내뿜어버리더니 꽁초가 된 담배도 나무 밑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동굴 속은 어두우니 나를 바싹 붙어서 따라와요.” 하고는 앞장섰다.

 

 

 

동굴입구에서는 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해골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몇 개의 관들 동굴 벽에 매달려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탱한 흔적이 보였다. 관을 매달아 놓은 끈에 거미줄이 잔뜩 쳐 있었고 관모서리는 이미 벌어져 뭔가 흘러내릴 듯 말 듯 했다. 지나가던 심술궂은 바람이 쌩하고 불기만 해도 후다닥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밑으로 지나가는데 관이 떨어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동굴은 왜 그리도 어둡던지 하긴 어두우면 동굴이 아니지, 일행들 중에서 나는 맨 앞 등불 가까이 걸어가고 있었다. 꼬불꼬불한 통로를 여러 번 엎드려 들어갔다. 그 남자가 빨리 와요하기에 굽이를 휙 돌았는데 등불은 있고 그 험상궂은 가이드는 안 보였다.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는데 남자는 해골이 놓인 그 중간에 얼굴을 내밀고 서 있었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내심장이 벌렁거린다.

 

동굴 안에는 퀴퀴한 냄새와 습기들이 옷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유난히 눈에 띄는 두 개의 해골, 나란히 놓인 해골 앞에는 꽃 두 송이와 담배 몇 개비가 놓여 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말했다. “ 또라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말했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하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목을 매고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둘이 결혼 할 수 없는 이유는 사촌지간이라고 한다. 또라자족들은 십이촌 이상이 되어야 결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작진 중 미혼인 남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해골 앞에서 기도를 했다. 주머니속의 동전을 꺼내 놓고 담배 한 개비도 놓아두고 합장하더니 한참 동안 기도를 했다. 기도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의 사랑이 저승에서는 이루어지라고 했지 않을까 짐작한다.

 

 

 

동굴을 한참 들어 온 것 같다. 이따금씩 등불에 비치는 험상궂은 가이드 얼굴을 볼 때마다 동굴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잠시 가이드해 주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데 여행을 함께 할 사람, 더군다나 한평생 동행할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되겠지.

"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려한 추억이 되고 이루어지면 남루한 일상이 된다"고 하던데

글쎄, 내 생각을 말하라 하면 사랑이 좀 남루해지더라도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