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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취재.촬영/취재 현장 이야기

내 삶의 블랙박스에 기록

이부김 2011. 8.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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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리만탄 -다약족(가일) -마지막편

 

마지막으로 민박하는 날이다. 인도네시아 집들은 바닥이 거의가 타일로 되어 있다. 내가 사는 집도 시멘트와 바닥은 타일로 되어 있지만 깔리만탄섬 오지의 집들은 모두 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지상 6 미터 높이로 지었는데 점점 낮아지면서 지금은 평균 2미터라고 했다. 강변이 아닌데도 집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우기 때 홍수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집이 높기 때문에 마루로 올라가려면 발자국이 패인 널빤지를 딛고 올라가야 한다.

 


                                                    민박했던 마을의 사람들 모습

 

사다리에 발 올리려는데 운동화는 흙으로 더덕더덕 엉겨 붙어 진흙투성이였다. 운동화는 분명히 하얀색이었는데 진흙으로 두껍게 도배되어 하얀색은 온데간데없었다. 신발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내 얼굴은 썬 크림으로 얼마나 얼룩졌는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저절로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녘까지 도심지로 다녔으면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았을 터인데 산이나 숲속에는 비춰볼 거울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뜨거운 햇살에 송송 맺힌 땀방울들이 흘러내리면 숲속의 솔바람이 얼른 다가와 후후 불어서 말려주었다. 팔뚝을 만지자 거미줄을 만졌던 손처럼 끈적거렸다.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 위해 땅바닥에 앉았다. 흙이 떨어져나갈 때 다약(가일)족들과 함께 걸어 다녔던 흔적들이 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샤워하러 욕실로 갔다. 민박집 욕실은 헛간이나 다름없었다. 물이 담긴 커다란 통들이 여러 개 놓여있고 변기도 있었다. 통 속의 담긴 물은 강물이 아닌 빗물처럼 맑은 물이었다. 강물에서 샤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몰아쉬었다. 변기 바로 뒤에는 집안의 전등불을 밝혀주는 발전기가 있었고 오래된 모터가 매연까지 뿜으며 헉헉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끄러운 저 모터만 없다면 나는 더 즐겁게 샤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대한 꿈(?)과 화려한 생활을 꿈꾸며 지금도 그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풍광 좋은 곳에서 온천수로 목욕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헛간에서 샤워할 수 있는 물 몇 바가지에 이렇게 만족해하다니, 아니 행복해하다니 그것도 뻑뻑거리는 모터소리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런 내가 초라해지고 시시해지는 것 같다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더니 모터가 들었는지 그때 ‘끼이익’ 하며 돌아가던 모터가 멈췄다. 눈을 떴다.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사방이 깜깜했다. 더듬거리면서 바가지로 물을 머리에 끼얹었더니 샴푸 거품이 주르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아휴~ 투덜거리지나 말 걸' 모터를 미워하지 않을 테니 제발 돌아가길 기도했더니 이번에도 모터가 들었는지 '씽~'하며 돌아가고 불이 켜졌다. 정말 감사했다. 비누칠한 후 바가지로 물을 끼얹었다. 내 전신에서 삶의 찌듦과 오만함이 거품 되어 마룻바닥 아래로 흘러갔다. 바닥 사이로 낙수소리가 소나기 빗소리같이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하나님이 쉬라고 주신 밤에 무언가(?)를 한답시고 야행성이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문명이 단절되다시피 한 이 오지의 밤 나는 쉴 수밖에 없다. 일찍이 잠자리에 드러누워 천청을 바라보았다. 천정역시 마구간 천정을 연상케 했다. 대나무로 된 서까래에 거미줄이 군데군데 쳐져 있고 거미줄에 걸린 바퀴벌레가 금방이라도 내 얼굴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눈을 감으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 평화로웠다. 이렇듯 세상일도 가끔 눈을 감아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게 해 주는 기회였다.

 

                              동굴에서 밖으로 내다 본 모양

 


낮에 동굴 갔던 일이 생각났다. 다약(가일)족들은 조상의 시신을 다른 부족이 훔쳐갈까 동굴 속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열대우림, 길이 없는 산등성이 나무숲을 헤치며 가자니 험난했다. 나뭇가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바위를 안고 발을 옮기기도 했다. 비탈진 곳, 낙엽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낙엽을 밟아도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그 낙엽 밟은 소리는 안 들리고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는 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험한 곳에 운동화도 미끄러지는데 다약(가일)족들은 맨발로 잘도 올라갔다. 동굴에 다다랐다. 해골이 여기저기 있었고 카메라불빛이 비췰 때마다 죄지은 듯 박쥐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숨죽이고 있었다.

집이 흔들렸다. 나는 ‘지진 났다’고 옆에 누운 민박집 딸에게 말했더니 나무위에 지은 집이라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때마다 흔들거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며칠 동안 나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하긴 날마다 파김치가 되어 잠들었으니 집이 흔들려도 아니 누가 업어 가도 몰랐던 것이다.    

 

 


 

민박집 딸은 서른이 넘었는데 이혼하여 친정집에서 기거했다. 그 집에는 딸 둘 아들이 있었는데 두 딸 모두 이혼하여 친정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큰 딸과 함께 방을 사용하였는데 이혼한 이유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한 마을 이웃집이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고 부모가 정해준 결혼이라 했다. 초등졸업자와 대학졸업자가 만나 살다보니 남편의 지식수준이 낮고 무식이 충만하여 의견차이로 속 터지는 건 참고 살겠는데 가끔 손찌검도 하더란다. 결국 이혼하여 남편의 집은 맞은 편 집에서 세 번째 옆집이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기에 다 안다고 판단하고 결혼하여 살아보니 그게 안다고 믿었던 것이 빙산의 일각이었더란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 민박집주인은 오리 두 마리를 잡고 있었다.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예로부터 자신들의 집에 묵은 손님이 떠나는 날은 꼭 피 흘리는 가축을 잡아서 대접해야 떠나는 손님에게도 보내는 주인에게도 평안이 깃든다고 믿는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풍습이라고 했다.

 

 

 

 

 

 

오리 잡는 장면


사흘 동안 흰밥과 고추양념만 먹다가 오리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으니 눈물이 어려 고기가 잘 안 보인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이 전해왔다. 그 동안 골병들도록 고생한 것들이 이들로 하여금 아름답게 내 삶의 블랙박스에 기록이 되는구나, 나는 또 이렇게 오지로 돌아다니는 일에 중독이 되고 살아가고 있구나!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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