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머리를 걸어놓고 하는 성인(Irau)식
롱란욱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어제는 다른 마을에서 이 잡듯이 잡았어도 못 찾은 부족을 오늘은 롱란욱에서 만났고 모든 걸 취재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심부름도 많이 하고 할머니에게 구구단을 배워서 그런지 노인들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노인들은 인사만 해도 반가워해 주고 당신들이 살아오신 생활에 질문하면 얼굴에 미소를 척, 묻히고 아주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신다. 오지로 다니면서 언어가 통하고 대화가 되는 노인을 만나면 나는 횡재한 기분이 들고 그 노인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 듣길 즐거워한다.
날이 어둑해지던 밤 롱란욱에서도 노인 한분을 만났다. 내가 부족들에 대하여 궁금해 하자 노인은 강신의 조상들은 아주 자랑스럽고 지혜롭다며 이마의 주름살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기 시작 되었다. 우리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삐걱거리는 빗장을 열더니 뭔가를 끄지어 내셨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였고 조그마한 부적이 달린 옛 물건(?)들을 가져와서 약장수보다 더 신명나게 입담이 슬슬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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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첫 월경 이전 그들의 계산은 12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했다. 어린 여자 양손등과 발목에 문신을 새겨야 한다. 그 문신이 있어야먄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을 수 있으며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딜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고 인정해 준다고 했다.
문신을 새길 때는 부족들의 특성이 담긴 문양이 그려진 모양을 손등위에 두고 그 둘레를 바늘로 찔러가며 그리듯이 한다. 그 찔린 자국으로 장작을 태운 숯가루를 넣는다. 멀쩡한 정신,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라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몸부림치면 여러 사람이 붙잡고 억지로라도 문양대로 문신을 다 새겨 넣는다고 했다.
노인의 말씀대로 정말 대단(?)한 부족이었다. 문신을 새길 때 남자는 전혀 도우지 않고 여자들만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라 한다. 쁀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귀에 구멍을 뚫고 귀걸이를 하게 된다. 귀걸이는 성인이 되고 결혼식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를 더 달게 된다. 귀걸이의 갯수가 많을수록 무게가 무거울수록 덕망과 위엄, 장수를 상징한다고 했다.
남자는 17세부터 성인식을 치르며 20세에 결혼을 한다. 우선 성인이 되려면 가족들을 부양할 능력이 되어야 하며 그 능력의 척도는 사람의 머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팔공산 순환도로 지나다니면서 새로 찬 승용차에 돼지머리 놓고 고사지내는 건 봤어도 사람 머리를 걸어두고 성인식 한다는 건 난생처음 듣는 일이다. 그것도 경험했던 그 부족들로부터 생생하게, 직접 들으니 날이 밝는 대로 빨리 보따리 싸서 이 마을을 떠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남자는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8일이 걸린다. 그 8일 동안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물로 사용하는 것은 무조건 금했다. 목욕을 하면 안 되고 손을 씻으면 안 되고 밥을 먹을 때 소금 없이 먹어야 한다. 그 8일 동안 남자는 저 멀리 가서 누구의 목이든 베어 와야 한다. 그런 자만이 가장의 자격이 될 수 있으며 성인식 날 사람의 머리를 걸어 놓아야만 성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에 이를 지키지 못했거나 어겼을 시에는 요절하거나 집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부모나 자식이 큰 병에 걸린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할아버지도 사람의 머리를 가져와서 성인식을 했나요?"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아주 겁먹은 듯 표정을 짓자 지금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 이전 정령 신앙이었을 때 이야기라면서 두려워 말라 식으로 전래동화 이야기 하듯이 하셨다. 그래도 난 사람이 사람의 머리를 놓고 성인식을 했다는 건 토템과 휴머니즘을 나물 무치듯이 무쳐놓은 그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부족의 특성과 마닉(Manik)
그들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과 그 당시 가장 보물로 여겼던 것은 마닉(Manik)이었다. 마닉은 돌로 된 형형색깔로 만들어 진 것 그들의 가보와도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일부일처도 되고 일부다처제도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다처제였을 경우 재산상속권인 마닉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때문에 형제들 간의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아 가능한 일부일처로 살았다고 한다.
마닉은 색깔별로 상징하는 것이 다르다. 빨강은 삶의 의미를 강하게 상징하고 파랑은 어떤 일에 쉽게 굴하지 않는 정신과 노랑은 거룩함과 흰색은 믿음과 녹색은 우주를 의미하는 색깔이라고 한다.
그들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과 그 당시 가장 보물로 여겼던 것은 마닉(Manik)이었다. 마닉은 돌로 된 형형색깔로 만들어 진 것 그들의 가보와도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일부일처도 되고 일부다처제도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다처제였을 경우 재산상속권인 마닉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때문에 형제들 간의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아 가능한 일부일처로 살았다고 한다. 마닉은 색깔별로 상징하는 것이 다르다. 빨강은 삶의 의미를 강하게 상징하고 파랑은 어떤 일에 쉽게 굴하지 않는 정신과 노랑은 거룩함과 흰색은 믿음과 녹색은 우주를 의미하는 색깔이라고 한다.
노인은 마닉으로 된 왕관을 들어 보이고 자신들의 전통 옷도 꺼내놓고 나보고 자꾸 입어보라고 했다. 가는 곳마다 전통 옷을 입혀주는 곳이 많았다. 가끔은 귀찮을 때도 없잖아 있지만 호기심이 그 귀찮은 마음을 덮어 버리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입고 그들 앞에 서 보일 때가 많다. 마닉을 족두리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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