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어버이날은 더 이상 양보 못한다
별과달
어버이날은 낳아주신 부모님께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꽃을 달아드린다. 그러나 나는 17년째 오히려 어버이날 아들에게 생일선물을 해 주고 있다. 가끔씩은 옆구리 찔러 절 받는다는 기분으로 꽃을 받기도 하지만.
딸 둘 낳고 또 아들을 낳았다. 그것도 5월 8일 어버이날 나는 두 배로 기뻤다. 어버이날 부모님들께 건강한 손자를 안겨드렸으니 효도해서 기뻤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으니 엄마로서 내가 기뻤다.
당연히 챙겨드려야 할 어버이날 부모님께 찾아가면 손자를 안고가고 용돈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갔다. 부모님께서 손자는 아주 반갑게 안아주시고 용돈도 웃으면서 받아 넣으셨다. 그런 후 부모님은 ‘오늘이 한솔이 생일인데’ 하시며 푸짐한 선물꾸러미를 내미셨다. 그런 광경은 아주 흐뭇한 장면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사랑의 장터 같기도 했다.
한국에는 어버이날이 있어 좋다.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꽃을 고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 가슴에도 꽃이 달리곤 했다. 그 꽃이 미술시간에 색종이로 만든 꽃이었든지 코 묻은 돈으로 문방구에서 산 조화였든.
인도네시아로 온 첫해 어버이날 이었다. ‘애들아 어버이날인데 꽃을 사서 엄마에게 달아 줘’ 했더니 아이들이 카네이션이 없어 장미를 샀다며 달아주긴 했지만 그런 코미디 같은 억지는 그해 한해로 끝냈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어버이는 많아도 어버이날은 없다. 인도네시아 살면서 내가 부모님께 꽃 달아드리지 못하면서 내 가슴에 꽃이 달리는 일도 자연히 없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니 어버이날이 그냥 평일처럼 되어 가버렸다.
인도네시아는 사람들은 아이생일잔치를 꼭 하는 편이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은 맥도날드 아니면 피자파티, 중학생은 더 근사하게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17세 때는 성인식으로 아주 거창하게 한다. 좀 산다는 자녀들은 CD에 자기 어렸을 때와 사진으로 담고 초대장은 웬만한 청첩장보다 더 멋지게 꾸며서 고등학교친구와 초, 중학교 동창들까지 초대한다. 주인공은 화려한 화장과 드레스, 심지어 연예인까지 초정하고 경찰 오토바이로 호위 받으며 미용실에서 파티 장으로 간다.
인도네시아 환경이 그렇다보니 존경스러운 한국의 어버이날이 점점 묻히고 있었다. 아니다 어버이날을 아들 생일잔치에 양보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아들의 17세 생일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부터 더 이상 어버이날을 아들 생일잔치에 양보 못한다. 이제 다 컸으니, 그렇게 배 아픈 걸 참고, 코 닦아 주고, 우유 먹여주며 키운 나의 두 딸과 아들에게 나는 오늘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엄마는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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