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삐가 되면 쇠고기 먹어요.
발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즐기고 쉬었다가는 곳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종교는 ‘발리힌두’이다. 우리가 아는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고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일 년에 한번, 녀삐에는 소를 잡아 맛있게 요리해 먹는 발리힌두 원주민들이 있다.
덴빠사르에서 차를 탄다. 동쪽으로 두 시간 가량 가는데 어느 지점부터는 바다의 입술로 달린다. 그곳은 분주하던 발리시가지와는 또 다른 볼거리들이다. 그 풍경이 끝날 즈음에 왼쪽 오솔길을 만난다. 그 길을 따라 한참 숲으로 들어가면 산으로 만든 그릇에 담긴 마을이 나온다. 조상들이 터 잡아 살아온 그 마을은 떵아난(Tenganan)이라 불린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가 힌두교이며 일 년에 한번 소를 잡아 쇠고기를 먹는 발리원주민들이다.
그들이 쇠고기를 먹는 날은 바로 힌두교의 가장 큰 명절인 녀삐다. 같은 발리힌두이지만 녀삐를 보내는 풍습은 다르다. 발리 시내는 녀삐를 맞이하기 위해서 삼 일전부터 발리의 안녕과 더러워진 세상을 정결하게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첫날은 멀러스띠/Melestarikan 의식으로 둘째 날은 발리 남자들만의 춤, 께짝/Kecak의 흥겨움으로 저녁까지 달군다. 마지막 녀삐 전날은 오고오고(OGOH-OGOH) 행진축제를 벌어진다. 오고오고는 사람들이 메고 빙글빙글 도는 것이 특징인데 쫓아 낸 악귀가 빙글빙글 돌릴 때 어지러워서 다시는 못 돌아오도록 길을 헤매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녀삐(Nyepi)이다. 녀삐를 새해(ςaka)라고도 한다. 녀삐는 스삐(Sepi)에서 가져온 조용하다는 뜻이다. 그날은 동서양인 막론하고 발리에 있다면 꼭 지켜야 할 사항이 불사용, 일하는 것, 시끄러움, 외출을 금해야한다.
그날은 발리 섬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멈춘다. 스사지(Sesaji) 먹으러 다니던 골목의 개들도 거리를 다니지 않는다. 버스 터미널도 항구의 선박들도, 국제공항이지만 이착륙하는 비행기도 없고 공항 안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되었다. 믿기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을 볼 때 난 지구가 멈추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꾸따의 파도는 여전히 철썩거렸고 하늘의 새들도 날아다니고 거리에는 뻐짤랑(문화 순찰대)들도 다닌다. 밤이 되어도 아무도 불도 켜지 않는다. 눈을 떠도 감아도 눈앞이 깜깜한 세상이다. 이쯤에서 ‘그런 발리시내를 넌 어떻게 그리 잘 아니?’ 하구 질문하고 싶은 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꾸따 지역의 뻐망꾸를 만나 발리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자며 녀삐날 촬영허락을 부탁했더니 뻐짤랑과 함께 다니고 사룽을 걸쳐 달라는 조건이었다. 물론 공항에 가서도 KBS‘ 놀라운 아시아’ 프로그램의 특성을 설명하고 촬영협조를 부탁하여 아주~ 어렵게 허락받았다. 번화하던 발리시내, 모든 문들이 닫힌 가게들, 아무도 없는 거리 먹고 버린 과자봉지만 이따금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조용한 시내와는 달리 한편 떵아난에서는 우사다 달람(Usada Dalam)이라 하여 이 날은 제단(Pura)에서 소를 잡아 받치고 놓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의식을 치루며 잡은 소의 고기를 다 같이 나눠먹는 날이다. 그들은 왜 쇠고기를 먹는가, 이유는 ‘신성시하는 소의 기운을 받아먹음으로 더 건강해지고 한해를 화평하게 지낼 수 있다’ 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마을의 풍습이란다. 쇠고기는 주로 훈연으로 익혀먹는데 이걸 ‘댕댕(deng-deng)이라한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주렁주렁 매달아 부엌의 연기가 올라오는 곳에 걸어두고 연기에 그을려 익힌다.
떵아난에는 아직도 베틀로 천을 짜서 생계를 꾸려가는 여인네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젊은이들은 시내가 나가고 있다. 그 마을에는 웃통 벗고 가시달린 선인장으로 싸움하여 피가 나는 전통풍습도 있다. 어께에 파기 철철 흐르면 꾸닐을 발라준다. 된장보다 더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르면 상처가 쓰라린 자국에 소독되어 빨리 아문다고 한다.
다음 이야기 = 발리 아벤 마살(합동 화장식)
한인뉴스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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