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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모집/늘샘최원현수필

허벌나게

이부김 2010. 1. 6.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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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벌나게

 

               최원현/수필가

내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다. 태어나긴 동란 중 외가가 있는 나주에서였지만 호적상 내 고향은 무안이고 내 가족들의

삶터는 목포였다. 그러나 나는 나주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고 그래서 15.6년을 전라도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내가 쓰던 말은 정감 넘치는 남도의 전형적 사투리다. 그 중에서도 ‘허벌나게’는 왠지 가장 인상 깊게 기억되는 한 마디다.


‘허벌나게’는 예쁜 말은 아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청나게, 혹은 대규모(大規模) 또는 신속(迅速)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전라도 토박이 사투리다.


‘허벌나게’란 말 속엔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안 될 것도 되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허벌나게 비가 왔다’는 동이로 물을 붓듯 엄청나게 많은 양의 큰 비가 내렸다는 말이고, ‘허벌나게 다쳤다’고 하면 만신 창의로 크게 많이 다쳤다는 뜻이다. ‘허벌나게 달려갔다’고 하면 눈썹이 휘날릴 만큼 빨리 달려갔다는 말이고, ‘허벌나게 벌었다’고 하면 자루에

쓸어 담듯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다. 허벌나게란 말 속에선 그래선지 ‘밉지 않은 뻥‘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부담이 가지 않는 넉넉함과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조직적으로 꽉 찬 느낌보다 좀 느슨하고 살짝 넘치는 느낌, 꼭 남도 사람들의 인정, 넉넉한 인심 만큼이다. 급하지 않게 얼마큼 해찰이라도 하는 불성실인 듯해도 왠지 무시 못 할 거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말이 ’허벌나게‘인 것 같다.


’허벌나게 인심도 좋소이‘ ’아따 허벌나게 맛있소‘ ’오메 허벌나게 좋당게‘ 허벌나게는 그렇게 수더분한 뚝배기 같이

만들고 그러면서 인정은 고봉으로 넘치게 하는 전라도 말다운 말이다. “참마시로 허벌나게 반갑소이“

 

2009.10/문학의집 서울/전라도 사투리
2009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그리움의 말을 찾아서> 200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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