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새 날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한 해의 시작에서 손을 모으는 것은 행복하고 신나는 일이 많이 있게 해 주소서 하는 기도일 것이다. 더욱이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달에는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요즘같이 전 세계가 어둠의 터널에 들어간 것처럼 어려워진 상황에야 말해 무엇 하랴.
살다보면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게 다일 수는 없다. 살다보면 너무도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또한 계속 그렇지는 않다. 삶이란 때로 너무 힘들 때도 있고 아주 신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오늘이야말로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 아니던가. 삶은 그렇게 각양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 ‘광화문 글판’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있는 건 오로지/새 날/ 정현종 시인의 시 <아침>에서 따 온 문구란다. 그렇다. 아침은 새 마음 새 정신으로 다 같이 희망찬 출발을 하자는 신호다. 잘 해보겠다는, 잘 될 거라는 그리고 멋지게 해내겠다는 포부와 결단과 힘이 넘친다.
아침은 아기의 웃음과 같이 신선한 느낌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밝은 영상을 만들어 낸다. 펼쳐지는 그림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발걸음이 가볍고 손이 의욕적이고 눈이 빛난다.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아침을 맞는 우리, 새해 새 날을 맞는 우리의 마음들도 그러했으면 싶다. 어떤 어려움도 사람이 이겨낼 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너무 욕심내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설계하고 바랐으면 싶다.
얼마 전 20억 원이 넘는 로또복권 당첨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그 엄청난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현재 노숙자라고 한다. 돈만 달아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도 자식도 가족도 다 잃고 남은 건 텅 빈 가슴의 자신뿐이란다. 자신의 분에 넘치는 너무 큰 복이 들어오면 복이 못 되고 화가 된다고 했다. 내 그릇에 맞는 담을 것을 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해엔 조금씩만 욕심들을 덜어냈으면 싶다. 그리고 덜어낸 만큼만 내 이웃을 생각했으면 싶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주어진 내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내 것보다는 우리 것으로 서로를 생각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신은 나만의 신이 아니라 모두의 신이다. 그 모두의 신이 나에게만 복을 쏟아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은 버렸으면 싶다.
아가들을 보면 눈앞에 아무리 많은 것이 놓여 있어도 하나만을 집는다.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집으려면 가졌던 것은 놓아버리고 새 것을 집는다. 하지만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자기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손으로 안 되면 팔로 가슴 안에 끌어안고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남의 것도 못 되게 하면서 자기 것도 되지 못한다. 일어서려면 기껏 두 손에 잡은 것뿐이다. 우린 살면서 그런 경험을 얼마나 많이 하던가.
이 해엔 나도 욕심부터 덜어내는 훈련을 해야겠다. 세상은 모든 게 ‘제로 섬’이 아니겠는가. 내가 많이 끌어오면 그만큼 어디선가 부족한 쪽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욕심에서 조금씩 해방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해방을 맛보지 못하고 더욱 구속당하는 사람들을 본다. 얼마 안 가 참으로 허망한 일을 보고야 말텐데 그걸 깨닫지 못한다. 나누지 못 하면 지나친 욕심이라도 삼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일 것 같다.
다들 어렵다고 힘들다고들 할 때 슬그머니 내가 집었던 것을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서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다. 아는가. 내가 물러서 나온 그 걸음 뒤에 참으로 내게 필요한 소중한 것이 내 비어있는 손을 기다리고 있을지.
사람은 모르는 것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빈손이 되면 무언가 집을 기회도 쉬 만나게 된다. ‘덥석’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생각하며 무엇이 진정으로 내게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잘 분별하여 은혜롭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참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받는 것이기 보다 그가 원하는 것을 갖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닐까.
아침은 새날의 시작이다. 아름다운 삶을 펼치는 나섬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두근거림이다. 이 기대와 감격으로 한 해를 사는 사람이고 싶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광화문 글판에 걸려있는 원문 시 <아침>(정현종)을 큰 소리 내어 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