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처럼 찢어진 아내의 가슴
별과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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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조금 기운 오후였다. 햇볕을 차단하려고 파라솔 대신 우산을 쓰고 한 여자가 왔다. 그 여자는 이웃집 가정부이며 우리 집 가정부와 친구다. 강렬한 햇볕을 차단하고 싶은 여자의 그 마음, 파라솔이나 비싼 썬 크림 대신에 우산을 쓴다던 이웃집 가정부,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처음 우리 집에 친구라면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던 그때 일이 떠오른다. 우리 집 가정부는 40세다. 말레이시아에 가서 가정부로 4년 일한 경험이 있다. 가정부는 말레이시아에서 받은 월급을 매달 남편과 아들이 있는 인도네시아로 송금했었고, 남편은 보내 준 돈으로 자동차를 샀고 건강식품 판매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고 한다. 가정부는 얼마의 돈을 가지고 인도네시아로 완전히 돌아왔고 그 돈은 은행통장에 넣어 두었다. 가정부가 돌아 온 후 달포가 되었을 무렵 남편이 “이번에는 발리로 가니 한 달 후에나 돌아 올 것 같다.”며 홍콩에서 보내온 돈으로 산 자동차를 가지고 나갔다. 남편은 나가면서 통장에 든 돈을 현금카드로 몽땅 찾아가 가버린 것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고 절망에 절여있던 가정부에게 이웃 사람들은 “남편에게 전부터 여자가 있었다. 며 성황당에 돌 던지듯 던져 준 말들이 가정부의 가슴에는 진짜 돌로 변했던 것이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던가 보다. 빈 털털이가 된 아내는 고등학생 아들과 살아갈 일이 막막해서 옷가게 점원으로 일해서 월급 받아 출퇴근 교통비 빼고 아들 학교 매달수업료와 전기세 내고 나면 쌀 살돈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했다. 몇 달을 다니면서 그래도 가정부 일하면 교통비는 줄일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 이웃집 가정부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던 것이란다. 인도네시아는 아랍, 홍콩, 말레이시아 등등 외국으로 인력송출하고 있다. 아랍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말레이시아이지만 어느 나라를 가도 인도네시아인들이 그리 대우(?)받지는 못한다. 작년 한해 외국에서 사망한 근로자들만 1.095명인데 그 중 말레이시아가 제일 많다. 말레이시아에 학대가 심해 정부에서 인력송출을 중단하려고까지 한적도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4년이나 꿈을 키우며 일했던 것인데 그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그의 남편, 가정부는 남편의 소행은 하늘에서 벌을 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가슴은 오죽하랴.
집안 구석구석 뿐만아니라 대문앞까지 말끔히 청소하는 가정부의 뒷모습을 훔쳐 볼 때마다 나는 괜히 가슴이 찡하다. 정원의 화초 잎을 한장한장 닦아주고 아들이 찢어버린 종이 한장도 버리지 않고 손으로 곱게 펴서 책상위에 두는 그 손길을 보니 모르긴해도 가정부의 가슴도 저 찢어진 종이 같을 것이다. 이젠 빛바랜 일들이겠지만, 80년대의 밤 9시 뉴스들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도 남편들이 해외로 나가서 열심히 일해 돈을 보내주면 아내들은 고마움도 잊은채 바람나서 돈을 탕진했다던 그때의 뉴스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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