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핀 개나리꽃 수입할 수 없어 인도네시아 있는 개나리꽃 사촌으로 대신함>
개나리는 근심하지 않는다.
최원현
봄의 전령인 개나리가 노오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내내 그리 떨다가도 어찌 피어날 때를 이리 알고 이 때다싶게 피어나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치 제각각 떨어져 살다가 명절 때면 다투어 찾아드는 자식들 형제들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험악하다 해도,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으로 저희 설 땅이 금시 없어질 판인데도, 개나리는 근심하지 않고 올해도 여전히 피어날 때에 피어났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오직 때 맞춰 꽃을 피워내는 것으로 제 할 일의 범위를 정하며 그 이상의 욕심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개나리꽃을 보고 싶다.’라 하나 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너를 보면 눈부셔/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의 <봄> 중)
그렇게 봄을 몰아오는 개나리입니다. 그러나 3월의 마지막, 개나리가 이리 활짝 피었는데도 오슬오슬 온 몸이 떨리는 것은 강산이 얼고, 인심이 얼었다는 세상 말들 때문일까요? 하지만 개나리가 피면 천지는 한껏 봄 꽃 잔치를 서두릅니다.
복숭아 살구 아기 진달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봄, 따스한 햇살이 내려도 가슴 속엔 여전히 냉기가 도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이기에 이렇게 봄이 더 그리워지는지 모릅니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가슴 힘껏 봄을 껴안아봅니다. 아무런 근심 없이 피어야 할 때에 피어 봄을 여는 개나리처럼 나 또한 근심 없이 봄을 맞고 싶습니다.
최원현/ 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http://essay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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