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여보
최원현
살다 보면 지나가버린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새삼 미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딸아이가 산후조리를 집에 와서 했는데 이건 숫제 전시 체제였다. 아홉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전문 도우미가 와서 산모와 아이를 돌보고 그가 가면 아내가 도와주었는데 모든 게 아기 중심으로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나보다.
70년대 중반에 딸아이는 태어났다. 아내가 출산예정일을 하루나 이틀 쯤 남겨두었을 때, 수요예배에 가려는데 진통이 왔다. 병원 갈 차비를 하는 중에 이웃의 권사님이 같이 교회에 가자고 들렀다가 내게 빨리 물이나 끓이란다. 아내는 두어 시간의 진통 끝에 지금 아기 엄마가 되어있는 딸아이를 출산했다.
참으로 어렵게 살던 때였고 산후조리의 의미나 중요성도 잘 모르던 숙맥들이었다. 시부모도 안 계시고 친정어머니도 멀리 떨어져 사시는 형편에 아내는 참으로 막막했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산모는 제대로 산후 조리조차 못 하고 바로 생활전선으로 나갔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껏 그 때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준 적이 없다. 한데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보면서 그게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게 평생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깨닫고는 뒤 늦게이지만 내 가슴이 마냥 쪼그라드는 것 같다. 세상 물정에도 어둡고 철도 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가슴이 마냥 싸아해 진다.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하고 아내와 눈이 마주칠까봐 피하게 된다.
30년도 훨씬 지나버린 옛일이다. 하지만 저토록 온 집안 식구가 아기와 산모를 위해 정성을 쏟는 것을 보면서 그런 과정도 도움도 없이 훌훌 털고 일어서야 했던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픈 것은 고사하고 도저히 아내를 바로 볼 수도 없다. 지금의 딸보다도 훨씬 나이 어렸던 아내의 입장에선 얼마나 가슴 답답하고 안타깝고 서러웠을까.
사람은 그래서 겪어봐야만 어려움도 귀함도 안다고 하나보다. 나는 다 잊고 있었지만 아내는 한이 될 만큼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으리라. 우는 아기를 달랠 줄 몰라 안타까워 한 것은 얼마였으며 배가 고파 우는 아기를 두고 젖은 나오지 않지 먹일 건 없어 가슴이 찢어지던 것은 또 얼마였을까.
생각할수록 한없이 죄스럽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런데도 이날까지 아내도 딸아이도 저리 건강하게 잘 지내오며 드디어 할머니가 되어 손녀를 안게 되었고 그때의 아기가 엄마가 되어 아기에게 잘 나오는 젖을 물리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한 일인가. 아내는 아마 그 때 자신의 설움이 생각나서 딸아이에게 더 잘해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틈만 나면 고 앙증맞은 모습을 보고자 나도 수시로 아기를 찾는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생명의 신비함에 나도 몰래 가슴이 복받치고 미소가 지어진다. 누워 자면서 꼼틀대는 모습도 보기 좋고 옆으로 뉘어놓으니 다리를 꼬부리고 자는 모습은 어렸을 때 내가 즐겨 자던 모습 같아 더욱 사랑스럽다.
아기를 본 사람들이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하면 더욱 마음이 즐거워진다.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면 기실 나를 닮은 제 어미를 닮았다는 말일 터인데 그런데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은 내 피붙이란 생각에서의 즐거움이리라. 듣기 좋게 나를 닮았다고 해 주는 말이겠거니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올 5월이면 미국에 있는 아들아이도 아빠가 된다. 나도 외손녀를 본 기쁨에 친손녀까지 보는 기쁨이 더해지니 그 기쁨은 배가 되리라. 아내는 산후구완 핑계로 아들네에게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지켜보고 나니 친정어머니가 가야 할 몫인 것 같아 사부인께 가시라고 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더란다. 하기야 딸 가진 어머니 마음인데 오죽 보고 싶고 사는 게 궁금하겠는가. 며늘아기도 친정어머니라야 편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더 커진다. 사부인이 미국에서 돌아오시면 아내도 바로 손주 보러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어찌 아내에게 미안한 일이 이것 뿐이랴만 이제라도 내 이런 마음을 알면 아내도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싶다.
아내는 오늘 늦게 들어 올 텐데 아내가 없는 틈에 살짝 손녀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와야겠다. 아내는 그러니 아기가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푸념이지만 아내에겐 미안해도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를 보고 눈이 반쯤 감겨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면 그저 세상이 다 꽃밭처럼 아름답게만 보이는 걸 어떡하랴. 여보! 미안해요. 아기의 웃는 모습이 벌써 눈에 아른거린다.
격월간 <수필과 비평> 2009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