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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모집/늘샘최원현수필

딸아이의 눈물

이부김 2009. 1. 28.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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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의 눈물

  

                                    최원현 

딸아이가 전화를 받더니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작은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는 누나 친구의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전합니다. 학교에서도 가장 친하고, 최근에는 교회로 인도하여 함께 교회도 잘 다니고 있었다는데 그 동안 아빠가 오랫동안 몸져 있었나 봅니다.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아이는 금새 눈이 퉁퉁 부어 있습니다.
친구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데 저처럼 슬피 울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저 아이의 슬픔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살그머니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말합니다. 그 동안 친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고.
2 년여 동안 아빠가 아무 일도 못하시자 엄마는 병시중을 들어야 하고, 큰딸인 친구는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살림을 하며 학교엘 다녔고, 새벽에는 토큰 판매소에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린 삼 남매가 새벽 기도회도 나가고 저녁 철야 기도회도 나가면서 아빠를 살려 달라고 애끓는 기도를 했고, 그것을 아는 친구들도 서로 잊지 않고 친구의 아빠를 위해, 그리고 친구를 위해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밉다고 했습니다. 그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정말 밉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딸아이와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같을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크고 깊이 잇는 사랑이라는 것, 원망보다는 감사할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네 친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 위로가 아니라 그 친구 스스로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확인과 그에 대한 믿음이라고.
자칫 잘못 생각하면 영원히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었을 때의 네 친구의 모습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냐고 얘기해 줬습니다.
아이는 친구들이 모두 병원 영안실에 가 있다며 옷을 갈아입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돌아왔을 때 녀석은 상당히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친구가 오히려 감사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빠는 교회에 나가신 지 얼마 안되었는데 막내 동생이 주일학교엘 오랜 전부터 다녔기 때문에 그걸로 해서 아빠의 장지가 교회 묘지로 해결되었고, 도저히 더 살 수 없다고 했었던 아빠가 그로부터 7개월이나 더 사셨다는 것, 그리고 40일 작정 기도가 끝나서 예수님을 온전히 모시고 떠나게 되었으니 정말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녁 예배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나는 독서실에 가 있는 아이를 불러내어 병원 영안실을 찾았습니다.
고인의 명패가 붙어 있는 5호실에는 아이의 친구와 그 엄마와 그리고 바로 밑의 여동생이 영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없는 빈소는 유난히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교회에서 보내온 대형 조화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 있고, 영정 앞에서 지쳐 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문상을 마치고 아이의 친구를 몇 마디로 위로해 주었습니다만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아이는 밖에서 다시 소리 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가엾고, 아빠를 잃었다는 것이 가엾고, 이제 엄마와만 살아가야 할 친구의 처지가 가엾고,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그 친구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보였나 봅니다.
총총히 다시 독서실로 향하는 아이를 보내면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생각합니다.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어린 때에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혼자만 남겨져 버리고 말았던 나.
그런 나를 거두어 길러 주셨던 외할머니, 이젠 그 분들의 기억조차 희미해져 갈 때가 되어 버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잊혀져야 할 기억들이 초롱하고 생생하게 살아나기만 하니 모를 일입니다.
아이의 등뒤로 나의 아린 마음이 그림자처럼 아이를 따르고 있는 것 같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섭니다.
너무나 빨리 죽음과 가까워져 버렸던 나의 어린 날을 생각하면서 아픔조차 느낄 수 없던 때 맞이했던 그런 체험이 아이들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키워 봅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만 삶이야말로 가장 큰 하늘의 은총일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고, 그렇다고 서로 재 볼 수도 없는 목숨의 길이, 누구도 이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침에 누운 채로 눈을 떴을 때 바라보이는 것들이 어제의 그것들이라는 데서 커다란 위안을 받고 사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닐런지요.
그러나 사람에게 주어지는 각자마다의 삶의 길이는 언 것이 짧고 어느 것이 길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딸아이의 눈물 속으로 비쳐 보이는 것이 또 어떤 모습일지도 아이보다 훨씬 많은 날을 살아 버린 나에게는 궁금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녀석이 흘린 눈물의 의미가 나하고는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라온 과정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기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저 안타깝고, 그저 안되어 보이고, 그러면서 아무런 도움도 되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는 아픔, 그런 아픔이 그토록 아이를 서럽게 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눈물이 훗날 녀석의 삶에 상당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눈물만큼 순수한 것도 없다고 했는데, 그런 순수한 감정이 우정으로 길게 고리가 되고, 그 고리는 깊은 사랑이 되어 커다란 어려움도 이겨내고, 고통과 아픔도 이겨내는 큰 믿음으로 자리해주길 빌어 봅니다.

아주 조그만 일에도 곧잘 눈물을 흘리는 아이 같은 나보다는 오히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눈물짓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이 밝아오는 아침 햇살처럼 싱그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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