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달이 있네?
최원현
문학세미나차 광주에서 올라왔던 문우들과 인사동 밤거리를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문우 ㅅ 이 화들짝 놀라는 것입니다.
‘아니, 서울에도 달이 있네?’ 그의 탄성이 약간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도 따라 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왜, 서울에는 달이 없나?’ 하고 반문을 했더니 서울에서 그것도 도심 한 복판 인사동에서 달을 본다는 것이 자못 신기하고 의외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도 참 어지간한 사람들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서울에도 달이 있네?’ 하는 우문에 ‘서울에는 달이 없나?’ 하는 우답밖엔 할 수 없었다니 ‘작가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서울이라고 어찌 달이 없겠습니까. 낮에는 해가, 밤이면 달과 별이 변함없이 떠올랐으련만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노력도 하지 않고 서울에는 달도 별도 없으려니 지레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저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없다고만 투정했던 것처럼 우리 삶에서 그런 오해와 착각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여유 없이 산다는 것이고 무심하게 산다는 얘기입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한강을 물들이는 아침 해의 신비로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빌딩 숲의 서울이라지만 밤하늘의 달과 별을 쳐다보는 여유쯤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서울에도 달이 있네?’ 하던 문우의 놀람은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사는 나를 책망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땅만 보고 사는 삶, 삶의 목표나 의미조차 생각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와 나 모두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을 달도 별도 없는 삭막한 도시로 만든 것은 우리의 게으름이요 무관심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던 아니 보던 달과 별은 떠있었음입니다.
결국 삶의 여유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닌 것입니다. 이제 그와 나는 각기 헤어져도 가끔씩은 하늘을 쳐다보고 살 것입니다. 하늘의 달이 거기에 있음을 우리가 확인해 줄 때 비로소 그들도 있는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