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신발은 왜 던졌니?
별과달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이 파란색으로 된 커다란 책자를 건네면서
『 엄마. 이거 3 학년 1학기 성적표인데 8등 밖에 못했어. 미안하다. 』
『 와~ 성적표 크기도 해라. 무슨 표창장인줄 알았네.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땀에 흠뻑 젖은 교복을 내던지고 아들은 욕실로 들어 가버린다.
펼쳐보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성적표가 다 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공책크기만한 책으로 되어 있었다.
해마다 세 명의 아이들 성적표를 받아 들었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들 공부에 한마디의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를 도와주는 일은 부엌 밖에 나가서 놀아주는 일처럼 나도 아이들의 시험공부를 도와주는 일은 공부방에서 나가주는 일이었다.
반년 동안 공부 농사를 얼마나 잘 지었나 하고 아들의 성적표를 들여다 보았다. 잘 했구나. 그리고 덮으려는데 연두색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이건 행동발달사항이네 아니 그런데 이놈이......
『 수학교실 창문을 깨서 감점 75. 친구에게 신발을 던져서 감점 50 』이라고 적혀 있었다.
창문은 친구들 세 명과 함께 장난치다가 깨서 돈 주고 사서 갈았다고 했다.
그런데 신발을 던졌다니....
갑자기 생각나는 뉴스.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체포되었던 사건이 아직도 인터넷을 주름잡고 있는데. 요르단 신문 <알-가드>의 편집장 무사 바후메는 이날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것은 최고의 이별 키스였다"고 극찬하는 기사를 썼다고 하던 뉴스. 아랍권의 영웅.
신발을 잽싸게 피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동영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나는 공 던지기를 잘한다. 투포환선수도 했었다. 그래서 그 동영상을 더 유심히 살펴보면서 나는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가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아들 성적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욕실에서 나온 아들에게 금방 성적표 받은 입장이라 처음에는 교양과 침착성을 겸비해서 물었다.
『 아들아, 왜 신발을 던졌니? 맞은 학생은 남학생이니 여학생이니? 』
『 니 지금 뭐라카노. 가벼운 입 가지고 말로하면 될 걸. 왜 무거운 신발은 벗어 던지고 난린데......』
이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놈이 여학생 괴롭히는 남학생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나는 당장 아들과 청문회를 열었다.
아들의 말은 같은 반 친구들이 옆 반 여학생을 놀려서 신발 한 짝을 빼앗았다. 아무리 빼앗으려 해도 못 빼앗은 이 여학생, 수업종이 울리고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체육 수업하러 이층에서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운동장에서 이층을 올려다보니 마침 아들이 있어 신발을 좀 내려 달라고 부탁을 했고 아들은 친구들에게서 신발을 빼앗아 여학생에게 돌려주었단다. 그런데 돌려주는 방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아들과 여학생은 신발을 어디로 던지고 받을 것인가를 서로 정했다. 그 때 우연인지 하필인지 운동장에서 이층으로 쳐다보던 여학생이 창문에 비친 햇살에 눈이 부셔 잠깐 손으로 눈을 가렸고 신발은 이미 아들의 손을 떠나서 운동장으로 내려가서는 여학생 머리에 맞았다고 했다. 하필 운동장에서 체육선생님이 그 광경을 보았단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신발을 던진 나쁜 남학생으로 오해를 받아 행동발달사항에 이름이 적힌 것이란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가 봐도 아들이 여학생을 도와주려는 흑기사가 아니고 골탕 먹이려는 나쁜 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좁은 공간에서도 신발을 두 짝을 잘도 피하던데, 그 여학생은 넓은 운동장에서 신발 한 짝을 못 피해서 아들을 지적받게 하였을까.
아들이 행여 학교에서 신발 영웅이나 되지 않을까 염려와 웃음이 나왔던 하루다.
A4 용지 크기의 새로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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