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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상/인니 종교

젊은 신부와 늙은 신부

이부김 2009. 1. 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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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신부와 늙은 신부

                                                  

                                              별과달

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3분짜리 전화를 걸어오는 젊은 신부가 있다. 그는 수도원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인데 수도원의 전화는 시내통화만 가능하고 통화 중 ‘뚜우~ ’ 하는 신호음이 1초 간격으로 3번 나다가 저절로 끊기게 되어 있단다. 그 시간이 3분이다. 대화 동중에라도 “다음에 또 걸게요.” 하면 그것이 곧 헤어짐의 인사말이 된다. 얼마 전 마지막 인사말은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용건만 간단히. 3분이라는 시간은 길수도 있지만 아쉬울 때가 더 많다.


나는 인도네시아 와서 처음으로 신부님들을 만났고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신부님들은 호칭이 두 가지였다. 성당에서 미사 하는 신부님을 빠스토르(Pastor)라 불렀고 가톨릭재단이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신부님들을 프라터르(Frater)라고 불렀다.

프라터르들은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의 규칙은 혼자 외출금지에서부터 모든 것이 엄격하다고 했다. 그리고 스케줄대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군대생활(?)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부들만 생활하는 수도원으로 가서 나는 인도네시아 말을 배운 적 있다. 나에게 시를 가르쳐 준 시인은 곱슬머리에 아프리카인 비슷한 신부(프라터르)님이었다. ‘외국인’이라는 꼬리표가 외부인 여자와의 만남을 금한다던 수도원의 원칙을 깼다. 그건 아마도 나를 소개 시켜준 그 교장선생님과 수도원장님의 신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나는 6개월을 그렇게 남자들만 생활하는 수도원을 들락날락거리다가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서거한 이후 그 신부님도 바쁘고 나도 바빠서 공부는 그만 두었고 신부님은 두 해전 병환으로 61세였지만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이따금씩 3분짜리 전화를 거는 대학원생 신부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안 계셨기에 어머니날은 종일 눈물만 흘린다고 했고 자신은 다 같은 신부의 길이지만 프라터르(Frater)가 보다는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빠스토르(Pastor)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 젊은 신부와의 인연은 작년 이맘때 교도소에서 성탄절 축하예배 드리며 만났으니 꼭 일 년이 된 셈이다. 수많은 죄수들 앞에서 “여러분은 보이는 창살 속에서 생활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생활합니다.” 하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1월 5일 어제는 공식적인 2008 성탄절 축하예배가 있었다. 교도소가 아닌 신학대학교에서 크리스천 경찰, 공무원, 군인들과 함께 신부(Pastor)님과 목사(Pendata)님이 설교와 기도를 번갈아 가며 이슬람교인 시장도 참석했다. 그 곳에서 이 젊은 신부와 또 만났다. 내년 성탄절 예배 때는 어디에서 만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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