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정답을 적어야지
글/별과달
두 달 동안 인도네시아어로 성경공부를 했다. 매주 금요일 밤,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씩
기초반에서 공부하였다. 중요한 일이 있어 시외로 출장 가는 날은 결석하였고, 또 저녁에
가야지 하다가 ‘너는 내 운명’ 시청하는 바람에 깜빡 잊고 가지 못한 날까지 계산하면 나의
출석률은 65% 정도였다.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주일날 예배 시간에 은혜로운 설교 말씀들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시험이라는 거대한 단어가 붙으면 당장 빨간 색으로 줄을 긋고 받아 적어야하는 부담이
동반되었다. 그러니 주일날 성경책은 진리의 말씀으로 꿀처럼 달고 금요일 밤의 성경책은
질리는 시험 문제로 들리기도 했다.
하긴, 두 달 전에 미리 시험 보는 걸 걱정하였더니 맏이가 “ 엄마는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을 터인데, 괜히 시험 보다가 점수가 낮으면 오히려 시험에 들 걸” 하고 말했다.
아들은 “ 이제 우리 엄마도 내 심정을 알겠네.” 놀리듯이 염려해 주는 그 동정 한마디에
기고만장하던 내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솔직히 공감도 갔었고 또 망설임도
없잖아 있었다.
순간 뇌리로 스치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교회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검은 병아리들 속에 노란 병아리 한마리가 있으면 모두들
알게 되고 심지어 이웃집 수탉까지도 아는 것이 세상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리 희끗희끗한 어른들과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 그리고 아주머니......
겉모습으로 판단해서 안 되지만 나는 그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이……. 설마 내가 다 틀리기야 할까, ‘까짓 것’ 한번 해 보자.' 하는 오기가 생겨났다.
지난주에 예고가 있었고 오늘이 바로 시험 보는 날이다. 그러나 시험공부를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 너는 내 운명' 보다가 늦어서 악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갔다. 헐레벌떡 뛰어가
시험지를 받아들었는데 A4 용지로 빽빽하게 두 장이었다. 20문제로 출제유형은 객관식과
O X 그리고 두 번째 장의 반 정도는 빈 공간으로 줄만 가득 그어져 있었다.
성공하려면 줄을 잘 서야하고 슈퍼마켓에서 계산을 빨리 하려면 역시 줄을 잘 서야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비슷한 경우일지도 모르나 기왕이면 우리 반에서 그래도 제일 똑똑해
보이는 사람 옆에 가서 앉았다. 한 두 문제를 묻기도 하고 너무 물어서 답이 똑같으면 그
결과는 차라리 창피 할 수도 있기에 몇 개만 묻고 나머지는 혼자 답을 적었다.
나는 장난기가 슬슬 도졌다. 시험장 분위기도 좀 흩뜨려 놓을 겸 목사님께 손을 들어 문제의
설명을 요구했다. 혹시 설명하다가 목사님 입에서 답이라도 떨어지면 얼른 받아 적으려는
마음에서 그러나 현명한 목사님의 입술에서 절대로 답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 설명해 줬는데도 모르냐는 식의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점수
낮다고 ‘그것도 못하냐?’ 했던 말이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졌다.
시험지는 볼펜 자국으로 채워졌고 나름대로 열심히 적은 시험지를 앞의 목사님께 척, 갖다
내밀었다. 그 목사님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 아들의 친구 아빠였다. 내 시험지를 죽~
훑어보더니 아주 잘했다고 했다. 그 뜻은 시험을 치러서 잘했다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내 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목사님의 웃음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아마도 마지막 논술에서 내가 적은 답을 읽고 웃으시는 것 같다.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체험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적으세요.’ 라는 문제였다.
집에서 컴퓨터로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메일 보낼 때 술술 잘 나오던 문장들이 볼펜 들고
시험지 위에 적으려니 볼펜도 잘 안 나오고 글자도 술에 취한 사람마냥 삐뚤삐뚤하게 적혔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시험지를 앞으로 가지고 나갔고 남은 시간도 촉박했다.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살아 있는 정답을 적어야지하는 신통방통한 재치가 떠올라 나는 이렇게 적었다.
“ 내가 기도한 것 보다 더 많이 응답 받았다.
그 예는 언제든지 간증으로 들려주겠다. 진심으로.”
목사님은 혼자 웃기에 아까웠던지 큰소리로 읽었고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시험지는 채점담당 목사님께로 전해졌으니 여러 목사님들이 또 얼마나 웃을지
그건 나도 모른다.
인도네시아는 학교에서만 시험을 보면 꼭 진급이냐 유급이냐가 결정되는 줄 알았는데
문화의 정착이 얼마나 강하게 퍼졌는지 교회 성경공부에서도 그런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오늘 시험의 결과는 2009년 1월에 발표되며 진급하느냐 유급되느냐하는 결정이 난다.
집에 돌아 온 나에게 시험지에 대하여 아들이 묻기에 논술문제 이야기를 했더니 시험 답을
그렇게 적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며 아들이 거실 바닥에 또르르 굴러가면서 웃었다.
나는 해명을 했다.
"한솔아! 어차피 1등 못하려면 재미있게 적어야지. 그래야 채점하는 사람이 껄껄 웃다가
마음이 즐거우면 점수를 후하게 줄 수도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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