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星) 걱정
최원현 누가 들으면 정말 걱정할 게 어지간히도 없나보다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다반사로 오가면서 그 때마다 앞에 펼쳐져 있는 대형 화환들을 눈여겨보며 갖는 생각입니다.
축하나 위로를 해 준다는데 거절해야 할 명분은 없겠으나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는 화환들은 마치 ‘나는 이만큼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만큼 사회에 공헌을 한 사람이다’ 하는 과시로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화환 몇 개로 그 사람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내가 일을 치르게 되어도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도 참 웃기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살이란 게 내 생각에만 맞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얼마 전 문단의 존경하는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밤 세울 사람이 많을 거라고 부러 장례식장까지 옮겼건만 밤 10시도 안되어 텅 비어 버리던 것을 보면서 문단의 선배와 세상인심 운운하며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인심 또한 자기 유익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일 것입니다. 허례니 허식이니 하며 몰아세우던 내가 이러는 것을 봐도 환경이나 형편 뿐 아니라 자기 입장이란 것이 참으로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구나 생각되어졌습니다. 막상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달라져 버리는가봅니다. 나 또한 그런 나를 보며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나 스스로도 놀라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별 걱정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겐가 그런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나도 몰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하기야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놓여있는 화환 수를 세고 잇을 사람도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으면 욕할지 몰라도 또 없어도 욕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단지 내 체면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부모를 하찮게 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깔려있는 것 같아 또 한 번 부모 자식간에도 체면을 내세우는 나를 발견합니다. 여하튼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동물이 바로 사람인가 봅니다. 그 걱정이란 게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것이요,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아이아코카는 자서전에서 ‘지난달에는 무슨 결정을 했을까? 작년에는? 그것 봐라, 기억조차 못 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거야. 잊어버려라. 내일을 향해 사는 거야.‘ 라고 하며 자신이 그토록 걱정했던 것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못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걱정이란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정말 불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며 그 날의 걱정은 그날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좀처럼 그 덫을 벗어나지 못하나 봅니다. 그렇고 보면 사실 그런 걱정들이야말로 정말 ‘별 걱정’일 것 같습니다. 땅 위에서 수만 광년 밖에 떨어져있는 별의 일을 걱정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위한 걱정이라면 염려하는 마음이요, 그 마음은 곧 사랑일 수 있지만 오직 자기 체면만을 생각하는 그런 걱정은 오히려 비생산적 걱정으로 ‘별(星) 걱정’이라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혼자 다 맡아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참으로 걱정 도 아닌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걱정거리들을 저 하늘 멀리 있는 별에게나 보내어 진짜 ‘별의 걱정’이 되게 하고, 아이아코카의 말처럼 내일을 향해서만 산다면 그거야말로 제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싶습니다. 걱정은 걱정일 뿐 온갖 세상 걱정을 밤 새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니 그게 다 소용없는 ‘별나라 걱정’ 아니겠습니까? 걱정하는 것만으로 무엇을 달라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즐비하니 늘어선 화환들을 보며 거기다 내 체면과 자존심을 대입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저렇지 못할 텐데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러워할 것도 참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별 걱정 다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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