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몸밖에 없는 내게로 시집 와서 이 날에 이르도록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이다. 딸 넷에 아래로 아들 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던 때 어린 나이로 서울로 올라와 고학으로 공부를 했었다.
그러나 먹고살기가 더 급했던 삶 속에서 더 이상의 공부는 엄두도 못 냈었는데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지금에 와서 공부를 하겠다니 말릴 수도 허락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작은아이가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철부지로만 여겨지던 아이인데 학교를 휴학하고 지원 입대를 하자 아내는 아이가 군에서 고생하는 동안 자기도 의미 있는 일을 하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와 직접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같이 한다는 의미도 갖고, 또 자신도 하고 싶으나 하지 못했던 일을 하면서 아이가 제대를 했을 때 엄마도 무언가 하나 내놓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였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집안일과 직장 일에 휘몰리면서도 틈만 나면 책을 붙드는 아내를 보며, 어느 해였던가, 겨울 속에서 피어나던 장미꽃이 생각났다.
인생은 끊임없는 공부의 연속이라지만 30년 넘게 생각조차 접어두고, 그저 먹고사는 일과 자식 키우고, 집안 일 하는 것, 거기에 직장까지 나가며 참으로 숨 가쁘게 살아왔는데 또 하나 만만치 않은 일을 더 시작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대로 아내는 지금까지 1인4역을 상당히 잘 해내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 집은 전 가족이 학생이 된 셈이다. 딸애는 특수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아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만년 학생이라 자부하는 입장이고, 아들 녀석은 학교를 휴학하고 군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가장 큰 공부를 하고 있으니 우리 가족 네 식구는 분명 모두 학생인 셈이다.
나도 학교를 참 어렵게 다녔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한 나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유교적 교육을 받으면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그러나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비롯하여 딸 셋을 모두 출가시켜 버렸고, 아들이 없어 양자(養子)를 들인 형편에서 외손자까지 키운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남의 눈을 더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를 위해 두 분은 모든 것을 감내하고 따로 집을 내셨다.
양자(養子)에게 있는 것 모두를 내어주고, 그렇다고 수입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데리고 나오신 외조부모님의 심경과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 시절엔 시험을 치러야 중학교에 갈 수 있는 때라 삼십리 밖에 있는 중학교에 많이도 시험을 치렀지만 나와 친구 하나만 합격했고 그렇게 유난히 추운 겨울 날, 새 학기에 맞춰야겠다며 언 땅을 파고 집을 짓기 시작하셨다.
그 해 봄에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늘 말씀 하셨었다. "저놈이 중학교 입학하는 것만 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기야 그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해 오시던 말씀이기도 했다. 그만큼 당신의 가슴속엔 세상을 헤쳐 나갈 힘도, 힘이 되어줄 무엇 하나도 없어 보이는 외손자가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고, 그래서 당신께서 그나마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면 더욱 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한 심정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기술학원을 하시는 작은아버지와 쉐터 공장을 하시는 큰아버지 댁 일을 도우며 한 해를 쉬고 다음 해에 사촌동생과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서울생활이 어느덧 30년을 넘었다. 이제는 이곳 서울이 진짜 고향이 된 것 같다. 모판의 모는 모종을 해야 하는 것처럼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땅에 서게 된 것이니 고향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군에 가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간외에는 우리 가족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일에 몰두한다. 그렇게 각자의 방에서 자기 일을 하다보면 훌쩍 12시가 넘기 마련이다. 큰아이가 달그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먹을 걸 찾는 모양인데 어쩔 땐 내가 출출함에 바람잡이가 되기도 한다.
근자엔 큰아이가 더욱 바빴다. 운전면허를 딴다고 새벽 일찍 나가 연습을 하더니 그걸 마치자 또 무슨 자격증을 딴답시고 근무가 끝난 다음 늦은 시간까지 학원엘 다니는 것 같다. 작은아이도 어느덧 상병이 되었다. 아내 또한 힘들어하면서도 늦공부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공부는 평생 동안 해도 다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집의 향학 열기는 상당히 꾸준하고 뜨겁다.
그 바람에 요즘은 하나뿐인 컴퓨터를 서로 쓰겠다. 하여 애로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급하면 PC방으로 냉큼 달려갈 수 있는 큰애가 한없이 부럽다.
작은애도 상병이 되더니 이젠 틈이 나면 볼 수 있다며 읽을 만한 책을 보내달라고 해서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에서 10여권을 뽑아내어 어제 소포로 보내주었다. 얼마 전에 휴가를 다녀갔는데 얼마나 늠름하고 의젓해 졌는지 결코 학교 교육으로는 받을 수 없는 교육을 잘도 받고 잘 이겨내고 있었다. 키도 더 자랐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단다.
공부는 때가 있다고 했다. 아니 꼭 공부뿐이랴.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란 말도 있잖은가. 뒤늦게 부산을 떠는 것 같아 겸연쩍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그것을 쉬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용기와 의지는 비단 그것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된다고 하더라도 동기나 과정만으로도 가상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한참 공부하고 싶을 때 중단하고 생활전선에서 힘들게 뛰어야 했던 아내가 늦게나마 어렵게 시작한 공부에 뒤늦은 후원이지만 아끼지 말아야겠다.
그러면서 나 또한 '이제 와서 무얼 더 시작하겠느냐'고 포기했던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현기증이 날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 속에서 늦었다고 그냥 있다면 그나마 우리의 설자리는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을 것 아닌가.
젊은 애들과는 어차피 세대 차가 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저들은 저들의 세계를 살고,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따로 따로 살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저 아이들이 지나온 우리 세대를 이해하기는 어차피 어려운 일일 테고 우리가 저들 세대를 이해해야 할 텐데 그럴려면 저들이 접하는 세계에 대한 공부를 어렵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없고, 저들이 즐겨 추는 춤을 따라 출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찾아뵈었던 원로 수필가 선생님은 말씀 하셨다. 왜 등단만 하면 공부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공부는 오히려 그 때부터 더 해야 하는데 등단만으로 좋은 글이 그냥 써지는 줄 아나 보다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의 시도는 참으로 보기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이라고도 하겠다. 자칫 포기하고 체념하기 쉬운 나이, 새로운 것을 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두려움이 먼저 생기는 우리 나이에도 분명 변화는 오고 있고, 종내는 그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해야 할 우리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세상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커다란 집합이 아닐까. 그러나 가르치기 보단 배우는 사람들의 세계일 것 같다. 쥐뿔만큼도 아는 것 없으면서 무시하기 일쑤고, 끄떡하면 핀잔만 주던 나였는데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엄숙하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여 나의 처사가 새삼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내가 그랬나 보다. 나도 그런 무식한 용감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
넘어가는 저녁 해가 아파트 꼭대기에 걸려 또 하루가 다 갔다고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은 쉬임없이 배우는 일에 열심일 때 발전할 수 있으며, 겸손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랑스런 늦바람 난 학생 가족이다. 모르면 금덩어리도 돌인 줄 알고 버린다지 않는가. 그렇게 용감하게 무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야겠다.
하지만 이 늦바람이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 신선한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겨울 속에서 피어나던 어느 해의 장미꽃처럼 우린 지금 향기로운 늦바람을 피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2000.7. 한국수필 2000. 7.8월호>
최원현 수필문학가 홈 http://essay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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