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텔레비전
글/별과달
예전에는 신문과 라디오세상이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라디오는
뒷전으로 밀리는 신세가 되었고 신문 역시 인터넷에 밀려 제 이름값을 할 기회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나는 오늘 라디오 방송을 녹음했다. 라디오 방송 녹음은 정말 방송 중에 제일 쉬운
것이라고 말하면 그 관계자들에게 돌 맞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얘기를 끄집어내려고하는 것이니 혹여 오해는 말길 바라는 맘이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사람이 무슨 방송이냐고 할지 모르나 [KBS 한민족] 채널인데
정오에 방송되는 강준영 교수가 진행하는 [한민족 하나로]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9월 3일이 방송의 날을 맞아 재외동포 3명과 전화로 담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출연자들은 모두 2년 전 재외통신원으로 보낸 글이 당선 되었고 그 수상작품이
두 달 전 성우가 낭독하여 방송 되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나에게 허락을 부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또 초청하여 자신의 그 글을 읽고 진행자와 함께 서로 의견을
말하기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늘 방송 프로그램 만든다고 사람들 섭외만 하다 직접 섭외를 받아 출연한다니 조금
긴장 되었다. 너무 오랜만의 출연이라서 그럴까? 말을 조리 있게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편견이란 것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연예인이 쓰는
사투리는 구수하고 개성 있고 보통 사람이 사투리 쓰면 촌스럽다고 하는 세상인데.
표준어를 사용해도 투박한 사투리로 들릴 수 있는 내 허스키한 목소리에 약간 부담
스러움 느끼며 차라리 텔레비전이었으면 좋겠다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독백을
하고 있었다. 막상 방송을 하면서 들어보니 나보다 목소리가 더 쉰 소리도 있다는
걸 알고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방송의 기쁨을 누렸다. 사실 마음 한편에는 '제작진들이
잘 알아서 편집하겠지 뭐,'하는 직업적인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감이 살아있는 방송을 나는 여러 번 출연한 적 있다. 한 십오 년 전 일이다.
그 때는 어떻게 그렇게 떨리지도 않고 사회자에게 농담까지 해 가면서 했는지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무지의 용기였는지 아니면 무한한 가능성의 젊음을 지녔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의 과거는 그렇게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으로
여러 번 출연한 경험이 있다.
그 중의 기억나는 일 두어 가지만 말한다면 그 당시 인기프로그램 MBC[세상사는
이야기]황인용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방송
출연 때문에 난생처음 서울에 가 보았다.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날 알아 보는 그
눈썰미들, 방송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담당 피디가 다른 프로그램 한다며 또 섭외가 들어 와 김홍신씨가 진행하는 생방송
MBC[아침의 창] 출연하기도 했다. 생방송 마치고 김홍신(인간시장)씨가 방송국
식당에서 아침을 사 주는데 그날 나는 내가 촌사람인 걸 거듭 확인했다.
식사 후 물 마시려는데 식탁에 물이 없었다. 사람들이 어느 곳에 가서 종이컵을 갖다
대니 저절로 물이 흘러 나왔다. 나도 그곳에 가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대고
있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분이 답답했던지 아래 있는 것을
발로 밟고 대신 물을 받아주는데 나는 그 물을 코로 마셨는지 입으로 마셨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디 그 뿐인가, 일 년이 지난 후 대구 KBS라디오 여성시대 특집방송 출연하러 갔다.
라디오 들을 때마다 군더기 없는 목소리 꾀꼬리 음색 아니 토란잎에 물방울 굴러가는
목소리의 아나운서, 나와 만나서 인사를 나눈 후 나를 훑어보더니 아나운서는 한참
웃었다. 예쁜 음성은 웃음소리조차도 예뻤다. 웃음을 멈추더니
『 오늘 출연자의 모습은 라디오보다 텔레비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왜? 오른 쪽 발에서 무릎까지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갔으니 말이다.
하긴 방송에 관한 주제가 구민 체육대회에 관한 이야기였다. 또 내가 달리기를 너무
잘한다며 3번을 대표 주자로 뽑혀 달렸고 마지막에는 너무 무리한 결과 넘어져서
발목에 인대가 늘어났던 것이다. 구민체육회 구경 간다던 사람이 절며 집으로 돌아
오자 기가 막힌 남편은 허허 웃기만 했다.
그날 밤 나는 아픈 발을 만지며 나 스스로 생각해도 참 부지런한 망아지 주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듣는 사자들>
지금 생각하면 나 같이 별난 인물이 방송용으로 여러 번 우려먹기에 안성맞춤이었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려먹는다고 하니 정현축님의 ‘행복한 바보’라는 책에서 읽은 글이 생각나서 옮겨 본다.
양주동 박사가 대구에서 특강을 했다. 워낙 명강의였기 때문에 그 다음해에도 또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자 한 학생이 일어나 질문을 했다.
『 작년 강의하고 토씨하나 안 틀리는군요.』
그러자 양주동 박사는 말했다.
『 이 사람아 소 뼈다귀도 세 번은 우려먹는데 국보 양주동 강의 겨우 두 번 듣고
뭘 그러나? 』
http://www.kbs.co.kr/plan_table/channel/scr/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