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사기
신선한 아침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움직이는 응접실(자동차)에서 깜빡 졸았다. 덜커덩거림에 깨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빗으려고 가방 속의 빗을 꺼낸다는 것이, 손가는 대로 집어 들다 보니
거울을 들었다. 꺼낸 김에 거울 한 번 보고 넣었다. 이번에는 빗을 꺼내려는데 옆에 놓인 핸드 폰이 진동한다.
자카르타에서 걸려 온 낯선 번호였다. 졸다 금방 일어났고 낯선 번호라서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어 받았다. 하긴 그래 봐야 허스키한 내 목소리지만, 그런데 상대방은 맑은 목소리의 낯선 남자였다.
『 축하합니다. 저는 ㈜ XL(이동통신회사) 고객 센터 담당자 핸드라 입니다. 당신의 핸드 폰
번호가 국제 전화 많이 사용한 고객으로 방금 당첨이 되었어요.』
『 국제 전화를 많이 사용?』
그들의 말을 따라 하면서 맞아, 지난 달에도 엄청 많은 요금을 지불했었지 하며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 지금 전화 받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성함을 알아야 저희들이 당첨자 명단에 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에는 핸드 폰 요금을 월말에 지불하는 것과, 카드를 사서 사용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원래 내 핸드 폰은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는데, 새 카드로 사 넣어도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국제 전화 조금만 통화하다 보면 요금이 바닥나서 저절로 끊어져 난처한 일을 몇 번 겪었다.
더군다나 시골 같은 데는 카드 살만한데도 찾기 힘든다. 그래서 작년부터 월말에 지불하는
제도로 바꿨다. 지난 달에는 이동통신회사(XL)에서 한정 금액보다 초과 사용하였다며 여러 번 연락이 오더니만, 결국 이런 행운도 얻게 되나 보구나 하며 연신 신났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행운 권 추첨이 상당히 많다. 길을 가다가 보면 대부분 은행 앞에 자동차가
한 대씩 놓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자동차는 해당 은행에서 계좌번호 추첨해서 고객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자동차이다. 그런 나라에 사는 내 입장에서 보면 전화 많이 사용한 고객과 그들이 말하는 당첨이 맞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달 사항처럼 계속 물었다.
『 혹시 통장과 ATM(현금지급카드)을 가지고 계십니까?』
『 네,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왜?' 하며 내가 물을까 하는데 그 남자는
『 계좌 번호와 은행을 말씀해 주면 지금 저희들이 상금 오십 만 루피아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송금 하겠다는 데 계좌번호 가르쳐 주는 것이 그리 문제는 되지 않겠다 싶어 스스럼없이
『 BCA 은행 01108xxxx kim…”』
또박또박 가르쳐 주었다. 남자는 받아 적는 듯 하더니
『 송금 확인은 꼭 ATM으로 해야 하는데 고객님이 은행까지 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까? 』
『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
『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한 시간 후 ATM에 도착해서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저희들이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이 묻는 말에 그저 대답만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물어 보았다.
『 송금은 상대방이 통장으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ATM 카드로 왜, 지금 확인을 해야 합니까?』
『 네, 그것은 통장으로 보내면 지방세를 지불하셔야 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고객님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남자는 지역 번호와 회사 전화번호라며 알려주고 나의 전화를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순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전화 사기 때문에 얼마의 돈이 현금지급기로 통해 빠져나갔다던 사건을 인터넷과 뉴스로 본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그건 한국에서 일어 난 일이지.
설마, 이곳까지 그런 바람이 불었을까?
아니야, 내 모든 것을 다 가르쳐줬으니 폰 뱅킹이니 뭐니 해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덜컥 걱정이 되었다. 만약 그 전화가 그런 종류의 사건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그날은 한국에서 가구 한 컨테이너 값으로 송금된 돈을 찾는다 기에, 아침에 내 통장과 ATM
카드를 남편에게 주고 나는 시외로 취재 나가는 중이었으니.
거래 은행(BCA)에 전화를 걸었더니 하필 아이 친구 엄마가 받았다. 반갑다며 또 아는 척을 하기에 방금 전화 받은 사실을 이야기 하려니 속된 말로 쪽 팔려서 통장의 잔고를 물어 보았다.
끊으려다가 그래도 하는 생각에
『혹시. 저.... 』 이런 일이 하면서 말했더니 은행원이 물었다.
『네 요즘 그런 문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옵니다. 그런데 아까 ATM 사용하신 적 있으세요?』
『 아니. 난 지금 이동 중이라서 그럴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어요.』
은행원은 이미 다 안다는 듯 한 박자 느리게
『 네 그러면 괜찮아요. 그들이 송금 확인 방법이라며 똑같은 시간에 ATM카드 사용 방법을
일러주는데 따라 하면 돈이 빠져나간답니다. 』
휴우~ 다행이다.
그 카드가 만약 나에게 있었다면, 성질 급한 내가 공짜 상품에 눈이 멀어 근처 은행이나 ATM
사용 할 수 있는 곳으로 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내 전화 통화 내용을 다 들은 기사가
『사모님 ..그런 전화 받으셨어요? 우리 친구들도 그런 전화 많이 받아요.』
하면서 허허 웃었다.
그날은 바쁘고 좋지 않은 일이라 잊어버렸는데, 오늘 아침에 기억을 상기시켜 주듯이 문자
메시지 하나가 들어 왔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천만 루피아 당첨되셨습니다. 아래 번호로 문의를.....』
나는 말한다.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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