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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인도네시아잖아요."
나뭇잎들이 아직 잠에서 덜 깬 이른 아침이었다. 안개가 입술까지 차 올라있는 정원을 내가나서니 어디론가 가려는지 나뭇가지에서 안개를 털고 있었다. 전봇대처럼 생긴 빨럼나무들이무뚝뚝하게 줄 지어있는 거리를 지났다. 빨간색 꽃잎들 너머로 분수가 만발하여도 나는 그저 눈인사만 나눈 채 그 곳으로 간다.
해군 부대 앞이었다. 앞으로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 내가 남편을 따라 이곳 인도네시아 온지 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우선, 정문에서 해군아저씨들과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앞 차가 그러고 지나가기에 나도 따라 해 본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강당으로 갔고, 어른인 나는 큰 강당으로 들어 갔다. 강당 입구에는 여섯 명의사람들과 옆집 아저씨가 주보를 나눠 주고 있었다. 아저씨는 은혜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만날때마다 늘 웃는 얼굴이다. 본받을 만한 일이라 여긴다. 손을 내밀기에 악수도 했다. 손이 참따뜻했다.
예배 드리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앞에서 찬양 인도하는 사람이 권투 선수타이슨과 너무 닮았다. 짧은 머리와 벌어진 어깨 위에 놓인 검은 얼굴, 왼 손은 마이크를 오른손은 위로 향하여 펄쩍펄쩍 뛰는데, 내 눈에는 꼭 선수가 시합 전 링 위에서 소개 받을 때 같은 모습이었다. 찬양 인도자 뒤에는 네 명의 합창단이 있고, 그 배경으로는 시끄러운 드럼과 키보드,
그리고 전자 기타가 있었다. 무대 맨 앞에는 처녀 네 사람이 하얀 드레스차림으로 탬버린을 찰찰찰 돌리며 흔들어 올리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앉았다가 내가 들어 갈 때 일어서서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디아스뽀라 교회는 찬송가 대신 스크린에 적힌 가사를 보고 불렀는데 가사는 낯설었으나 곡은 귀에 익숙했다. 아는 곡이라서 함께 부르려고 한 줄 읽으니 벌써 화면이 바뀌어 버렸다.
목사님과 성도들은 기도를 했는데 나는 그 시간에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릴 적 예배시간에 떠들어 본 기억은 많았지만, 오늘처럼 기도 시간에 두리번거리며 살펴 보기는 드물었던 것 같다. 강당 정면에는 인도네시아 국기가 걸려 있고, 양 옆으로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뒷벽에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시계가 있고, 군함 사진과 어깨에 계급을 단 해군참모총장으로 보이는 사진도 있었다. 급기야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고 궁금하기 시작했다.
옆집 아저씨가 분명히 교회 오라고 했는데, 사이비 종교인가. 설마? 이상하다!
힌두교가 발리 섬으로 들어오면서 정통을 약간 벗어난 '발리 힌두' 가 되었듯이 이 기독교도
그랬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었다. 삼촌들이 교회 다녀왔다고 유교 사상이 강했던 할아버지께 종아리 맞았다는 것도 엄마에게 들었고, 엄마가 교회 다니신다고 효자이셨던 아버지가 성경책을 불 아궁이에 넣는 것도 보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 듯이, 그 때 나는 개방적인 기독교를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또 성가대, 교사 활동도 했었지만 교회 분위기는 늘 거룩하고 엄숙했지 이렇게 열광적인 것은 부흥회 때나 보았다. 그럼 오늘이 부흥회인가,
아니, 좀 삐딱하게 표현하자면 나이트클럽 같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강당 옆면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기도가 끝났다. 나는 목사님이 일러주신 성경 말씀을 이번에는 한국 성경으로 찾았더니 하필, 마태복음 14장 31절이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두 시간의 예배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나에게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 날 나는 그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해 확실하게 알아들은 말은 '할렐루야. 아멘' 뿐이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군부대아저씨들은 차들을 지켜 주고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아저씨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주차비를 지불했다.
다음 날 우리는 키 작은 담 너머로 또 대화를 주고받았다. 교회는 내가 다니던 장로교와 달랐지만 사이비는 아니었다. 개척한지 1년 되었는데 성도들이 600여 명이나 되니 큰 장소도 없을 뿐더러, 아직 형편상 교회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강당은 교회가 마련 될 때까지 빌려 쓴다고 했다. 나는 다그치듯 또 물었다. 그렇지만, 전 국민의 88% 이슬람교인 나라, 더군다나 군부대를 어떻게 민간인들의 출입을 함부로 허용하며 또 예배 장소로 빌려 주는지? 또 숙소가 많이 있는 건물은 호텔로도 대여한다니한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자.
아저씨의 대답이 명언이었다.
“여기는 인도네시아잖아요.”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저씨는 앞으로 살면서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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