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미용사의 눈물어린 이야기
별과달
꿈을 업그레이드하고 기분을 세탁하고 싶은 날 나는 미용실에 간다.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푸른색깔이 짙고 맑았다. 구름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이동하기에 나는 바다를 뒤집어 하늘에 걸어 놓은 줄 알았다. 하늘만 쳐다보며 가도 나는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미용실에 다다랐다.
손님들 머리 만지고 있는 수많은 미용사들 중에 내 단골미용사를 찾았다. 한쪽 구석진 곳에 여자꼬마를 안고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꼬마는 피곤해 보였고, 감기에 걸렸는지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들이마시고 있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가 타지로 결혼식 가버렸기에 돌볼 사람이 없어 어제와 오늘 꼬마를 미용실에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꼬마를 안고 있는데 표정이 어두웠다. 하긴 일터에 아이를 데려올 만한 이유자체가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
미용사와 내가 알고 지낸지는 사년이 넘는다. 원래는 얌전한 남자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겼는데 멀리 이사하는 바람에 지금 이 여자미용사와 만나게 됐다. 맨 처음 내 머리 손질할 때 미용사 얼굴은 참 밝았다. 머리에 염색되는 동안 내 어깨도 주물러주고 한국으로 일하러간 남편이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동료들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주면서 행복한 멀굴로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 후 남편이 한국에서 올 때 사온 미용가위라며 얼마나 자랑하는지, 가위를 만지고 있으면 오는 손님들에게 공짜로라도 커트 해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싹둑싹둑 잘 드는 가위 뽐내면서 자르다 내 머리를 좀 짧게 자른 적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났지만 얼마나 신났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온 적도 있었다.
어제는 내 머리 커트를 마친 후 귓가에 속삭이듯이 한국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랑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단어들이 ‘감사합니다. 사랑해. 오빠. 비빔밥.......’ 그러려니 했다.
이어지는 말이 남편이 한국에서 어떤 여자와 찍은 사진에 적힌 글자가 있었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사랑해” 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용사는 손에 들었던 가위와 빗을 내려놓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파 많이 울었어요.” 하며 국기에 대한 경례하듯이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내 머리 속에서 위로가 될 만한 단어들이 프라이팬에 잘 익은 팝콘 튀어나오듯 내 입술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언어들이 단절 될까봐 나는 프라이팬 뚜껑을 닫듯이 내 감정을 꼭 닫으며 계속 들었다.
이번에는 미용사가 신기한 걸 봤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남편이 노트북으로 화상 채팅하는데 여자가 양치질하면서 한국말로 미용사 남편과 대화하더라는 것이다. 미용사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본 화상채팅이 신기했다는 건지 인도네시아 남편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이 신기했다는 건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 손질이 끝났을 무렵 꼬마는 손님들 머리 손질하는 빈 의자에 앉아 잠자고 있었다. 굽어진 자세를 미용사가 교정해 주자 깨어났다. 아까 훌쩍거리는 콧물이 잠자는 동안 말랐고 아이는 귀찮은 듯이 깨어났다. 나는 꼬마에게 엄마 쉬는 날 엄마와 바뚜에 있는 놀이공원에 다녀 오라며 미용사에게 늘 주던 팁의 몇 갑절을 꼬마 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하니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바뚜 놀이공원
미용실 앞 마켓에 들렀다. 아이가 우유 달라기에 사러 왔다며 미용사와 마주쳤다. 아까 이야기를 그리도 많이 했는데 아직도 더 쏟아낼 말들이 많이 남았는지 미용사는 이야기를 또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서른 초반인 미용사 어깨를 감싸면서 다독거렸다. 봉화선 같은 그녀,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떨어졌다. 나는 그 미용사에게 아주 중요한 말 한마디를 해 주고 초콜릿이 잔뜩 묻은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서 하나 사 주고 하나는 내가 먹으려고 들고 마켓을 나왔다.
다음 달에 저 미용실에 또 가야하나. 어쩌지?
그 한국인 유부녀는 한국인 애인이 따로 한 사람 더 있더란데, 도대체 애민이 몇명이나 필요한지, 멋진 한국 남자들 놔두고 뭣하러 가무잡잡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애인으로 만들어서 저 가난한 미용사 눈에 저렇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어제는 평상시에 달달하던 초코아이스크림 맛이 달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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